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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의 장풍

현아의 장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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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10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384g | 145*215*20mm
ISBN13 9788963193267
ISBN10 8963193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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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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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는 두 차례의 장풍 사건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장풍은 맛이 고약한 미역국 대문이었으리라. 유난히 텅 빈 것 같던 식탁에서 생일 미역국을 잘못 먹은 여자아이는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상처받은 소녀에게서 돌연 괴력이 튀어나온다는 설정은 소설과 영화의 단골 소재가 아니던가.
그리고 우연한 능력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으리라. 나름의 결론에 도달했는데도 현아는 속이 후련해지지 않았다. 외려 일주일 전에 먹은 미역국 맛이 혀끝에 감돌면서, 17년 인생이 평소 체감하던 것보다 더 외로웠다는 자각에 이르렀다. 지난 인생에 얼음 결정처럼 촘촘히 박혀 있는 알갱이들이, 그 차갑고 자잘한 이물질들이 오늘따라 현아를 잠 못 들게 했다.
--- p.30-31

“아무튼 장풍은…… 내 품에 쏙 들어온 꽃다발이야. 저번에도 말했잖아. 이 힘 때문에 힘이 난다고. 제이엠 오빠들 해체하고 삶의 의욕이 바닥났었는데 요즘 다시 살맛이 난다니까.”
“다시 말하지만 그 힘은 네 것이 아니야.”
“오케이, 오케이. 그 힘이 하느님, 알라, 아툼 그분들만 소유할 수 있는 힘이라고 말하려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신들만 가질 수 있는 힘을 내가 소유했다면 나도 신이네? 신도 별거 아니구먼.”
“강현아! 넌 지금 우연히 주운 걸 네 것이라고 우기는 어린애랑 다를 바 없어.”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것……. 그런 게 어디 한두 갠 줄 알아? 내가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것도, 강현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도 다 우연히 얻은 결과물들이야. 우연의 다른 이름은 운명이거든, 그리고 내가 쥔 우연들 중 가장 맘에 드는 게 이거야!”
--- p.67-68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해도 현아의 선택을 아마 같을 것이다. 한문 선생은 인간이 인간에게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으니까. 하지만 한문 선생을 응징한 게 정말로 홍익인간 강현아의 일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예나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선생은 현아의 인생까지 들쑤셔 놓았던 것이다. 예나를 찌르던 선생의 말마디에 외로웠던 여덟 살의 현아가, 열두 살의 현아가, 열다섯 살의 현아까지 움찔움찔했으니까.
--- p.120-121

찬바람을 뚫고 신나게 달리던 현아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무도인 최배달이 나오고 싶어 해. 이 바람이 무도인을 불러낸 거야. 무도인의 고향 와룡산에서 맞던 바람이 떠오른대. 내가 비켜 줘야 할 것 같아. 미카야, 나 지훈이한테 데려다줘.”
“여기서 그 자식 이름이 왜 나와?”
“지훈이는 날 잘 아니까, 날 다시 꺼내 줄 거야.”
“강현아, 나도 널 알아. 나도 널 안다고. 까먹었어? 최배달 상태의 너를 세 번이나 제자리로 돌려놓은 게 누군지. 최배달이 네 의식을 지배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꺼내 주면 돼.”
--- p.124

설계자들은 현아에게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고, 자신들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현아의 존재값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현아가 홍익인간이 된 건 외로운 유년의 연장선이었다. 나는 사랑받은 자격이 없는 아이인데 엄마 아빠가 나를 키워 주었고, 세상 사람들도 나를 참아 주었으니 조금이나마 그 신세를 갚겠다는 것이다. 미카는 네가 아는 게 다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사실 너는 언제나 사랑받는 존재였다고, 설계자들은 너의 성장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뭘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너 자체로 소중한 생명체였다고. 하지만 이젠 영영 말해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설계자들이 일을 망쳐 버렸으니까.
--- p.147

“날 기억해 주고 다시 불러 줘서 고마워.”
은발머리가 현아를 내려다보았다.
“누구…….”
“네가 기억해 주면 돌아온다고 했잖아.”
은발머리는 미카였다.
--- p.190

미카가 아니라 수거함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현아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죽이진 않았다는 수거함의 말은, 미카를 숨통이 끊어지기 직전으로 몰고 갔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현아는 울지 않았다.
“미카는 돌아올 거예요. 나는 미카의 흔적이 모조리 증발해 버린 세상에서 미카를 다시 기억해 냈어요. 당신들은 흔적을 모조리 지우면 존재까지 지워지는 줄 알겠지만, 아니에요. 때로는 뭔가가 사라진 그 자리가, 더 뜨겁게 누군가의 존재를 증명하기도 하거든요. 이번에도 그럴 거예요. 당신들은 모르는 이 세계의 힘이 또다시 기적처럼 미카를 데려올 거예요.”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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