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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과 탄광

우물과 탄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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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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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년 01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456g | 140*210*18mm
ISBN13 9788954670265
ISBN10 895467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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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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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서 땀도 마르지 않은 채 피로 흠뻑 젖은 침대시트 위에 누워 있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한다. (…) 양쪽 눈이 찢어지고 양팔은 깨끗이 잘려 살점들만 덜렁거리는 채 탄광에서 집으로 실려가는 남자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우리집 물양동이 밖으로 삐져나온 퉁퉁 부은 아기의 시신만큼 충격적이지 않았다.
--- p.21

개울가는 아무때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반면 우물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나는 우물 밑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어쩌면 목욕물을 긷는 중에 인어공주나 말하는 물고기가 딸려올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종종 했다. 그런데 목욕물에 딸려온 아기라니.
--- p.28

아침에 집을 나선 아빠가 그날 저녁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만큼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가장이 되리라는 것도. 당시 내 또래의 몇몇 남자아이들은 이미 탄광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빠는 나를 탄광으로 보내지 않았다. 학교에 가야 한다고 했다.
--- p.35

조나는 사람들이 유니언타운, 즉 노조원 마을이라 부르던 도라라는 곳에서 자랐다. 1920년 파업 당시, 회사는 파업에 참여한 흑인 노조원들을 사택에서 모조리 쫓아냈고, 쫓겨난 그들은 온갖 쓰레기, 판자, 썩은 목재 등을 구해 다 함께 도라에 판자촌을 만들었다. 이제 다시는 살던 집에서 쫓겨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말하면서.
--- p.46

“너도 알잖니, 셀리아. 그때와는 상황이 달라. 이 동네서부터 버밍햄까지 한번 살펴봐. 일자리가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두 배는 많아. 도움을 줄 게 아니라 받아야 할 사람이 훨씬 많다고. 주변을 한번 둘러봐……”
--- p.60

이며 혀며 손이며 팔이며 온통 과즙으로 범벅을 한 채 재잘거리며 후루룩후루룩 토마토를 먹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토마토는 정말 행복한 열매 같아요, 그쵸 아빠?” 토마토를 한입 크게 베어 물고 테스가 물었다. “아주 신나고 즐거운 열매예요. 레몬은 뾰로통하고 복숭아는 바람둥이 같은데.”
--- p.67

언제나 자연의 힘에 의해 그 모습이 결정되는 마을이었다. 자연은 우리가 석탄을 채굴해가는 대가로 바람, 불, 땅을 통해 이따금 인간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휠체어를 탄 이 남자가 자연만큼이나 강력한 힘으로 마을 전체를 바꾸어놓았다.
--- p.72

남편과 남편의 이름까지 지우고 떠나려 한 걸 보면 할아버지가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 게 분명했다.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할아버지가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의 성은 애덤스가 되었을 것이다. 두 할아버지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어쨌든 두 세대에 걸쳐 우리 무어 가족의 여성들은 더욱 강해진 모습으로 인생을 살아나간 셈이다.
--- p.93

저 정중함 뒤에 어떤 모습이 숨겨져 있을까? 고단한 삶을 살거나 그보다 더 나쁜 일이 있는 건 아닐까? 눈 밑은 거뭇했고 얼굴에서 생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분명 너무나도 피곤해 보이는데 혹시 이 아이를 데리고 하루하루 버티기보단 차라리 없애버리고 싶다는 감정이 들지는 않을까?
--- p.113

“그런 일을 한 여자라면 슬픔에 빠져 있었을 겁니다, 감독관님. 못된 여자가 아니고요. 죽은 자식을 데려가 착한 사람들이 사는 집의 우물에 던져버린다. 글쎄요, 제가 보기엔 그 사건이 말해주는 바가 있는 것 같아요. 감독관님 말씀대로 그 여자가 미쳤을지도 모르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에 비하면 미친 건 아무것도 아니죠.”
--- p.170

루 엘렌은 뒷마당에 아기를 묻는 게 별일 아니라는 듯 계속 발로 목화 자루를 찼다. 마치 죽음이 풀과 함께 자라고, 해와 함께 떠오르고, 우물물과 함께 올라오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처럼.
--- p.269

부엌에서 엄마의 손은 허둥대거나 멈칫하는 법이 없었다. 그릇에서 양념통으로, 스푼으로, 양푼으로, 행주로 춤추듯 움직였고, 끊임없이 붓고 젓고 닦고 재고 만져보며 많은 일들을 해냈다. 나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의 손을 보는 걸 좋아했다.
--- p.275

오랜 세월 석탄은 이곳에 묻혀 우리를 기다렸다. 그에 비하면 인간의 삶은 섬광과도 같은 순간에 불과했다. 스스로를 연료삼아 순식간에 불타올랐다가 잔재처럼 날아가 부서지고 그후엔 한줄기 따스한 연기로 홀연히 사라지는.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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