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4년 10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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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52쪽 | 518g | 132*224*30mm |
ISBN13 | 9788937461095 |
ISBN10 | 8937461099 |
발행일 | 2004년 10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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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52쪽 | 518g | 132*224*30mm |
ISBN13 | 9788937461095 |
ISBN10 | 8937461099 |
소설 제인에어는 학창시절 아련한 꿈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로서는 처음 만난 책이었다. - 이런 책을 어디서도 본적이 없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페이지수가 많이 나가서 였다. 그만큼 원문에 충실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러나 실망한 이유가 몇가지 있다.
첫째, 책의 크기와 자간, 여백 등의 편집구성에서이다.
책크기에 있어서 세로 22.5센티, 가로 13.3센티. 같은 세로크기를 가진 책의 가로는 보통 15.3센티이다. 즉 2센티가 작은 것이다. 비정상 가로세로 비율. 적응이 안된다. 가로크기가 작으니까 그만큼 페이지수가 늘어난다는 거다. 듬성듬성한 글자며, 가로크기가 작으니만치 차안에서나 화장실에서 보기는 괜찮을 것이다. 그러나 소장가치는 없어 보인다.
둘째, 번역이다.
일관성이 없다. 역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몇사람이 나눠서 번역한 것을 엮은 것인가. 어떤 장은 그대로 직역을 해서 어색한가 하면, 어떤 장은 나름대로 다듬어서 매끄럽다. 장이 바뀌면 어체가 바뀌어서 읽는데 당황스러운 곳도 있고, 호칭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감수라도 했는지 의심스럽다. 통일이 되었다면 읽기에 부담이라도 없었을텐데. 원서를 대조해 보니 문장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번역했다. 영어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좋을 수도 있다. 원서로 읽다가 막히면 찾아서 마치 해석서같이 참고하기 딱이다. 그러나 문학서적 번역자라면 어느 정도 작가적인 소양으로 번역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민음사 책은 한권으로 만들면 될 것을 구태여 두권으로 만들어 그만큼 수익을 늘리려는 상술처럼 느껴진다.
이 시리즈로 민음사책을 속는 셈치고 두 종류 더 샀지만 충실치 못한 번역과 편집구성으로 인해 실망하고 말았다. 특히나 문학서적으로서 소장하고픈 마음인 분에게 민음사 시리즈는 비추하는 바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는 셰익스피어의 줄리엣과 로미오보다 내게 더 매력적인 커플이다. 이유를 찾는다면, 셰익스피어의 작품보다 먼저 만나게 된 데서 오는 첫인상 효과가 있는 듯하고, 주인공 제인이 자존심이 강한 데다 둘 다 복잡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나와 동일시가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인 듯하다. 또한 주변의 냉대와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신념을 꿋꿋하게 지키며 자신의 사랑을 성취하는 스토리가 주는 쾌감도 크다.
<제인 에어>를 처음 읽은 때는 중학교에 올라가기 전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당시에 완역본은 아니었고 상당히 압축한 아동 문고판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떠보는 복잡한 로맨스의 특성상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더구나 험상궂고 어두운 이미지의 나이 많은 로체스터를 제인 에어가 사랑하게 된 사실이 조금은 기이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제인 에어>는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후 나도 제인처럼 불가사의한 사랑을 하기를 은근히 바라게 됐으니 말이다.
최근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울프가 샬롯 브론테의 작품세계와 <제인 에어>에 대해 언급한 내용에 놀랐다. 나는 <제인 에어>가 이상적인 로맨스의 고전이라고 믿어 왔는데 울프는 작가 샬롯 브론테의 분노와 뒤틀린 감정이 작품 속에 들어 있고, 로체스터는 '무지함'에서 묘사되었다고 비평한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결국 나는 <제인 에어>를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세 가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오래 전 사춘기에 접어든 내가 이 작품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살아있는지 궁금했다. 또 울프가 연속성이 단절됐다고 지적한 부분을 나도 공감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로체스터가 작가의 무지에서 묘사됐다는 짧막한 언급에 대해 울프가 자세한 근거를 밝히지 않아 내 나름대로 그 이유와 근거를 찾아보고 싶었다.
태어나면서 부모를 모두 잃고 외숙모 집에서 구박덩이로 자란 제인이 자선 기숙사 학교에 보내져 6년 간 학생으로 배우고 2년 간 교사로 가르친 후 가정교사로 가게 된 곳이 손필드 저택이다. 그곳에서 제인이 주인 남자 로체스터와 처음 만나는 장면은 문학사에서는 물론 드라마와 영화사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하다. 로체스터라는 중년 남자와 아직 소녀 티가 풋풋한 제인이 서로의 가슴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운명적인 사고를 겪으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전된다. 그 후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와 시선, 관심과 심리 묘사가 주를 이루며 스토리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사춘기에 막 접어들어 사랑이 뭔지도 모르던 소녀가 읽고 왠지 가슴이 설레던 이야기가 그대로 살아있다. 그 옛날처럼 여전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은 나의 첫번째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는 작가 샬롯 브론테의 분노로 인해 연속성이 단절된 부분을 언급하는데 결론적으로 말해서 공감할 수 있었다. 제인이 자신의 신세를 타령하듯 말하는 부분이 내용 중에 간간이 나오는데 그런 대목 중 하나다. 아직 손필드에 감춰진 비밀을 모르는 순진한 제인이 이상한 웃음소리로 웃는 하녀 그레이스 풀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으로 전환하는 곳에서 잠시 느껴진다. 이로써 울프의 탁월한 문학적 감수성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런 대목에선 왠지 주인공 제인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의 목소리가 확실히 더 크게 들리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울프가 로체스터에 대해 무지에서 묘사됐다고 말한 부분을 의식해 읽어보았다. 무엇에 대한 무지일까. 우선 그의 외모를 보면 로체스터는 험상궂은 인상을 한 중년 남자다. 중키에 떡 벌어진 가슴을 지니고 있어 운동선수로 알맞아 보이는 체격에다 '추남'이다. 하지만 그의 얼굴이 주는 인상은 제인이 그를 사랑해 가면서 강인하고 남성적인 매력을 지닌 인상으로 변화된다. 로체스터의 성격은 변화무쌍하다. 권위주의적인 데가 있고 엄숙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드리우는 반면 사교계에선 노래를 잘 부르고 대화도 잘하는 인기 많은 남성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두 사람을 합쳐놓은 듯한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인품을 보면 문제가 있다. 젊은 시절 아버지와 형의 물질욕에 의해 방탕과 유혹에 빠져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여자와 결혼했다. 1권에서는 아직 제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미친 아내를 꼭대기 방에 숨겨두고 유럽을 여행하며 방황하다 집으로 돌아와 순수한 제인을 만나게 된다. 제인을 마음에 둔 그는 성대한 파티를 열고 블랑슈라는, 자신의 돈을 좋아하는 미인을 이용해 결혼설이 오가게 하면서 제인의 마음을 떠본다. 결국 로체스터는 제인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제인과 블랑슈라는 두 여자를 이용하고 있는 거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미친 아내를 숨겨두고 치료할 생각은 없이 미혼 행세를 하고 있다. 이런 그의 제인에 대한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 소설은 주인공 제인에 의해 서술되는 1인칭 시점이다. 제인은 나이로나 인생의 경험으로나 로체스터를 제대로 모르고 있고 자기 나름대로 판단하며 순수한 사랑에 마음 아파하는 소녀로 그려져있다. 다시 말해 제인은 남자에 대해 무방비인 작가의 분신인 셈이다. 물론 이야기 속에서 로체스터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후회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져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실제 이런 남성이 있다면 그의 인격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현실의 소녀들에게 중년 남성에 대한 무리한 환상을 심어주는 건 아닐까. 역시 버지니아 울프의 '로체스터에 대한 무지'라는 지적에 공감해야 할 듯하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이라 아무래도 예스러운 표현에 조금 어색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표현들을 그대로 살렸다고 하는 옮긴이의 말에 그러려니 하고 읽게 되었다. 나는 또 작가 샬럿 브론테의 자매인 에밀리 브론테의 작품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폭풍같은 사랑을 그린 『폭풍의 언덕』을 곧 읽게 될것 같다. 내 이십 대 시절에 푹 빠져 읽었던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