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Aleksandr Isaevich Solzhenitsyn, Aleksandr Solzhenitsyn
알렉산드르 이자에비치 솔제니친의 다른 상품
우리는 고작 몇 개의 하루만을 살다 갈 뿐이다.
도서1팀 김성광(comma99@yes24.com)
2015.12.31.
인간이 평균 80세까지 살 수 있다면, 우리는 80년치의 하루들을 살아가는 것일까. 그러니까 인생은 무려 3만여 개의 하루로 구성되는 것일까. 나는 그런 산수와는 거리를 두고 싶다. 우리는 고작 몇 개의 하루만을 살다 갈 뿐이다. 오늘에 대응하는 날짜가 지나가는 것을, 새로운 하루가 다가오는 것으로 여겨선 곤란하다. 알다시피 우리의 매일은 대부분 비슷한 일들로 채워지는 ‘늘 똑 같은 하루’다. 루틴의 변경을 동반하는 새로운 하루는 진정으로 가끔씩 찾아온다. 입학, 졸업, 취업, 결혼, 출산 등을 기념하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하루로 넘어가는, 일생에 몇 번 없는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작 몇 개의 하루만을 살다 갈 뿐이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2차 대전 중 소비에트 정부에 의해 강제노동수용소에 수감된 남자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이하 슈호프)의 하루에 대한 이야기다. 슈호프는 반역죄를 ‘명목’으로 10년 간 수감되었는데, 작가 솔제니친 역시 반정부활동을 ‘명목’으로 8년 간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했으니 그의 자전적인 경험인 셈이다. 8년이니, 10년이니 하는 기간은 개인의 일생에서 어마어마한 시간이지만, 솔제니친은 단 하루의 이야기로 소설을 마쳤다. 그 안에서 그가 겪었던 것은 단 하나의 하루, 한 가지 패턴의 무한한 반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에서 슈호프가 겪는 하루는 쉽지 않아 보인다. 얼굴이 찢어질 것만 같은 추위 속에서 노동해야 하고, 죽 한 그릇 때문에 싸움을 벌이고, 오늘은 어느 작업장에 배치될 지, 영창에 가게 되는 일은 없을 지 전전긍긍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특별할 것 없는 수용소의 평범한, 늘상 반복되는 하루다. 심지어 소설의 마지막에 슈호프는 잠자리에 들어서 “오늘 하루는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하루를 반복하고 있느냐에 따라, 행복과 행운의 기준도 달라진다. 이 정도가 운이 좋은 하루라면, 수용소가 어떤 곳인가는 빤한 것이다. 사람들을 그런 수용소로 보내고 있는 체제가 어떤 것인지는 더욱 빤한 것이다. 솔제니친이 슈호프의 어느 평범한 날을 그린 것은 많은 결과를 불러올 수 밖에 없었다. 서구 사회는 (어느 정도는 정치적으로) 솔제니친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겼고, 소련은 그를 ‘반소작가’로 분류하며 작품활동을 금지했다. 사람들은 (솔제니친 때문만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소비에트를 ‘수용소의 삶’과 유사한 이미지로 기억한다. 어떤 하루는 세상의 진로를 슬쩍 바꿔 버린다. 인간이 단지 몇 개의 하루를 살아갈 뿐이라면, 어떤 하루를 반복하고 있느냐가 행복과 행운에 대한 감각을 결정한다면, 역사의 진행각도를 살짝 뒤틀 수도 있는 하루가 세상에 존재한다면 우리에게 진정으로 중차대한 사안은 바로 ‘하루’라고 말해도 될 것이다. 우리들의 인생에 슈호프와 같은 불행한 하루가 끼어들어 오지 않고, 세상의 어느 한 구석에라도 납득할 수 없는 하루가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밀어간다는 것은,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열악한 하루를 차례차례 지워나가는 것을 의미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전이라는 명예의 전당은 지워져야 할 하루를 끊임없이 드러내는 소설들에게 반드시 한 자리를 내주어야 할 지도 모른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여전히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밀어나가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소설이며, 납득할 수 없는 하루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고전의 자리에 오래도록 눌러 앉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유다. |
배가 따뜻한 놈들이 한데서 떠는 사람의 심정을 무슨 수로 이해하겠는가? 혹한이 온 몸을 움츠리게 한다. 살을 에는 차가운 공기가 슈호프를 엄습해서 기침이 나올 지경이었다. 기온은 영하 이십칠도였고, 슈호프는 열이 삼십 칠 점 이도였다. 자, 이젠 누가 누구를 이길 것인가.
--- p.31 슈호프는 소용소에 들어온 이후로 전에 고향 마을에 있을 때 배불리 먹던 일을 자주 회상하고는 한다. 프라이팬에 구운 감자를 몇 개씩이나 먹어치우던 일이며, 야채를 넣어 끓인 죽을 냄비째 먹던 일, 그리고 식량 사정이 좋았던 옛날에는 제법 큼직한 고깃덩어리를 먹었던 때도 있었고, 게다가 배가 터지도록 우유를 마셔대던 일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렇게 먹어대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를 해본다. 음식은 그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이 빵조각을 먹듯이 먹어야 하는 법이다. 입 안에 조금씩 넣고, 혀 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침이 묻어나도록 한 다음에 씹는다. 그러면, 아직 설익은 빵이라도 얼마나 향기로운지 모른다. --- p.60 저 사람들이 슈호프를 가르키면서, 저 녀석은 출소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그다지 기분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슈호프 자신은 어쩐지 그다지 믿어지지 않는다. 슈호프가 직접 본 일로, 옛날 전쟁중에 형기가 끝난 죄수들을 모두 [추후 상부 방침이 있을 때 까지], 그러니까 1949년까지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붙잡아뒀다. 게다가 더욱 심한 것은, 누군가 삼 년을 언도 받았는데, 형기를 마치고 나서는 다시 오 년으로 추가형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법률이란 것은 도무지 믿을 것이 못 된다. 십년을 다 살고 난 다음에, 옜다 이 녀석아, 한 십 년 더 살아라 하게 될지, 아니면 유형살이를 보낼지 누가 알겠는가. --- p.82 그런 다음, 그는 때묻은 얇은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어느새 침대 사이의 통로엔 점호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옆 반 반원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런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그리고 반장이 작업량 조정을 잘해서 오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벽돌쌓기도 했다. 줄칼 조각도 검사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리 대신 순번을 맡아주고 많은 벌이를 했으며, 잎담배도 사지 않았는가. 그리고 찌뿌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다 나았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pp.207-208 |
솔제니친은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추구하면서 도덕과 정의의 힘을 갖춘 작가다.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 스웨덴 한림원
|
솔제니친은 단순히 선동적인 폭로용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미숙한 번역으로도 의미를 해칠 수 없을 정도로 말을 아끼고 삼가는 수사법을 써서 작지만 거의 무결한 고전을 창조했다. - 《뉴욕 타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