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05년 03월 15일 |
---|---|
쪽수, 무게, 크기 | 572쪽 | 723g | 132*225*35mm |
ISBN13 | 9788937461187 |
ISBN10 | 8937461188 |
발행일 | 2005년 03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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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72쪽 | 723g | 132*225*35mm |
ISBN13 | 9788937461187 |
ISBN10 | 8937461188 |
' ~ 세대마다 문학의 고전은 새로 번역되어야 한다. ~ 오늘에는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 호소하는 오늘의 번역이 필요하다. ~ 새로운 감동과 전율을 고대하는 젊은 독자들에게 떳떳이 이 책을 추천한다.'
근자에 고전문학 붐을 일으킨데에 일조한 민음사의 홍보 카피입니다. 번역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 없기에 민음사의 이 야심차고 자신만만한 태도에 호감이 갔습니다. 또 메이저급 출판사라는 믿음으로 저도 한권한권씩 사 보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간 민음사 고전문학 전집을 다 독파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동안 몇 권을 읽는 동안 중간중간 의미전달이 막히는 부분이 있었는데, 번역보다는 제 이해력의 부족이라 책망하다가 '폭풍의 언덕'을 읽으면서 도저히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3장 도입부(33페이지)를 보면...
나 자신도 너무 어리둥절해서 미심쩍은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문을 닫아걸고는 침대는 없나 하고 둘러보았다. 가구라고는 의자 한 개와 옷장 하나, 그리고 <침대> 위쪽에 마차의 창 비슷하게 사각형으로 도려낸 큼직한 참나무 <창틀>이 있을 뿐이었다.
가까이 가서 <안>을 들여다보니,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방을 하나씩 차지할 필요를 없애기 위해서 매우 편리하게 꾸민 별난 종류의 구식 <침상>이었다. 사실 <그것>은 작은 침실을 이루고 있었고, 그 <안>의 창턱 선반은 탁자로 쓰였다.
나는 판자로 된 <옆면>을 열고는 촛불을 들고 들어가서 그 판자를 다시 닫고 ~ 마음을 놓았다.
<안>을 들여다봤다고 했는데 <안>은 도대체 어디의 안을 말하는 걸까요? <침대>인가요 <창틀>인가요?
침대의 안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어색하고, 침대 위에 창틀이 있다고 했는데 창을 통해 밖을 보는 거지 안을 본다는 것도 이상하고... 읽다가 고개가 갸우뚱하더군요.
'<안>을 들여다보니, ~ 구식 <침상>이었다."는 말로 보아 침대를 말하는 것 같은데... 두가지 의문이 들더군요. 첫번째, 침대의 안은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인가? 두번째, '한 사람 한 사람이 방을 하나씩 차지할 필요를 없애기 위해서 매우 편리하게 꾸민' 침대가 도대체 어떻게 생긴 침대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럿이 한꺼번에 누울 수 있는 커다란 침대를 말하는 것인지...
이어서 '그 <안>의 창턱 선반'이란 표현도 역시 이해가 안갑니다. 침대 <안>에 선반이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결정적으로 <옆면>을 열고 들어갔다는데 침대 옆면에 문이 달렸다는 건가요?
읽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가고, 짜증을 넘어 화가 치밀더군요.
며칠 후 서점으로 달려가 외국도서 코너로 갔습니다. 펭귄 클래식에서 나온 폭풍의 언덕(원제 : Wuthering Heights)을 구입했습니다.
원문은 이렇게 되어 있더군요.
Too stupified to be curious myself, I fastened my door and glanced round for the bed. The whole furniture consisted of a chair, a clothes-press, and a large oak <case>, with squares cut out near the top, resembling coach windows.
Having approached this structure, I looked inside, and perceived it to be a singular sort of old-fashioned couch, very conveniently designed to obviate the necessity for every member of the family having a room to himself. In fact, it formed a little <closet>, and the ledge of a <window>, which it enclosed, served as a <table>.
I slid back the panelled sides, got in with my light, pulled them together again, ~.
민음사의 번역이 너무나 한심하기 짝이 없더군요.
우선 화자가 방에 들어와 침대가 없나 살펴봤지만 언뜻 침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에는 의자(chair), 옷장(clothes-press), 큰 참나무 상자(large oak case)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상자는 위쪽에 네모낳게 잘라져 있었는데 마차의 창문을 닮았습니다.
번역자는 case를 창틀로 해석했는데(물론, case는 창틀의 의미도 있습니다), 문맥상 커다란 오류입니다. 번역자의 말대로 case를 창틀로 해석해 원문을 다시 살펴보면 '창틀 위 근처에 네모낳게 파여져 있었다'는 말인데 결국 창틀 위에 있는 벽에 네모낳게 파여져 있다고 밖에 해석이 안됩니다. 그렇다면 벽에 있는 네모를 통해 안을 보았다면 옆방을 말하는 겁니까? 이어지는 내용으로 볼 때 도저히 창틀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원문에는 전혀 없는 침대 위쪽에 창틀이 있다니요? 화자는 아직까지 그 어떤 침대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화자가 문을 닫고 처음 본 것은 의자, 옷장, 상자입니다. 왜 침대가 나옵니까?
그 다음 이어지는 Having approached this structure,(이 구조물에 다가갔다)... 이 구조물은 뭘 말할까요? 당연히 의자나 옷장처럼 너무나 평범한 물건이 아닌 a large oak case(커다란 참나무 상자)를 지칭하는 거겟죠. 그럼 I looked inside(안을 들여다봤다)도 자연히 이해됩니다. a large oak <case>, with squares cut out near the top(윗부분이 네모낳게 잘려져있다)라고 이미 언급돼 있으니까요.
그제서야 화자는 그 안의 구식 침상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상자 안에 있는 침상, 창문, 선반 겸 테이블... 그래서 이 상자가 closet(벽장? 여기서는 작은 방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의 역할을 한 겁니다. 그리고 그 상자의 측면에 있는 판자데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서점에 간 김에 다른 출판사의 번역을 찾아봤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정신이 혼란하여 더이상 물어볼 형편이 아니어서 문을 꼭 잠그고 침대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렸다. 가구라고는 의자 한 개와 옷장 하나, 참나무로 만든 커다란 궤짝 하나였는데, 이것은 위쪽에 네모난 틀이 패어서 마치 마차의 창문처럼 보였다.
그 구조물에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 보니, 그것은 희한한 구식 침대로 가족들이 따로 침실을 가질 필요가 없도록 편리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사실 그 궤짝 자체가 하나의 작은 밀실로, 창틀에 달린 선반은 그대로 탁자 구실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촛불을 들고 옆으로 난 문짝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가 다시 문을 닫았다.
이제 확실히 이해가 가더군요. 이 출판사에서는 case를 '궤짝'으로, 또 다른 출판사에서는 '상자'로 번역되었습니다.
제가 산 민음사의 '폭풍의 언덕' 책은 15쇄입니다.
민음사 관계자분께 질문드립니다.
이 책이 과연 김종길 교수께서 번역한 게 맞습니까? 그리고 15쇄가 되도록 교정, 교열 보는 사람은 도대체 뭘 한 겁니까?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떠나서 앞뒤 문맥이라도 맞아야 할 것 아닙니까? 우리 말이 이해가 되야 할 것 아닙니까?
번역을 이 따위로 하고선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번역' 운운하십니까?
요즘 중학생만도 못한 수준 이하의 번역에 정말 어이가 없네요.
더이상 신뢰가 가지 않아 읽기를 중단했습니다.
제가 위에서 언급한 부분은 번역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은 '화자의 행동을 단순하게 서술'한 것에 불과한데요, 번역이 이 정도이니 인물들의 심리묘사는 과연 제대로 번역됐을까 ... 그전에 읽다가 막혀서 끙끙 앓다가 그냥 넘어가고 읽었던 다른 민음사 문학책들을 생각하니 새삼 또 화가 치미네요.
이런 번역을 읽는다는 건 외국문학의 향기와 감동을 느끼는 것이 아닌 적당히 줄거리 파악의 수준에 머물 뿐입니다.
그동안 귀찮고 짜증나고 시간이 아까워 미루기만 하다가 이제야 리뷰를 올립니다. 실상은 모른채 민음사 책이 잘 나간다는 말만 믿고 사는 분들에게 혹시나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음 같아선 이 뻔뻔한 민음사 시리즈 한권한권의 번역을 일일이 지적하는 저만의 시리즈를 만들고 싶네요.
민음사 사장님,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 드신다면 환불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정말 돈이 아깝네요.
저는 민음사에 개인 감정이 있는게 아닙니다.
제가 읽은게 민음사였기 때문입니다.
타 출판사들도 얼마나 제대로 된 번역을 하고 있을진 역시 장담할 수 없겠죠.
믿고 산 제품이 불량품일 때 소비자가 느끼는 배신감이 어떤지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젠 번역책들도 리콜을 실시해야 합니다!!!
다시한번 일반 독자분들께서도 참고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절대로 출판사의 헛된 명성 보지 말고, 유명한 사람이 번역했다든가, 많이 팔렸다든가, 여타 과장광고에 현혹되지 말고, 여러 출판사의 번역을 비교, 검토하여 책을 골라야겠습니다.
요즘 타 출판사에도 문학전집 붐이 일고 있는데요... 절대로 한 출판사의 책으로 다 사지 마시고 반드시 한 작품 한 작품 비교해서 구입해야겠습니다.
정말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옛말도 있는데 억울해서라도 원서 줄줄 읽는 내공을 길러야겠습니다. 그래야 이런 형편 없는 저질 번역에 눈길도 주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정혜윤님의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을 읽고,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가 가는 곳마다 부유하여, 다시 읽게 된 책이다. 21세기가 되어도 여전히 히스클리프가 매력적인 이유를 정혜윤은 “나는 너야!’라는 선언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불행 없는 소망은 없다는 걸, 부도덕하지 않은 절대성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듯이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절대적이고도 영원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젊은 날에 히스클리프의 사랑에 대한 집념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하지만, 사랑을 한다면 히스클리프처럼 하고 싶다는 생각이 ^^;; )
드러시크로스 저택에 세를 들기 위해 록우드라는 청년이 워더링 하이츠(폭풍이 불면 정면으로 바람을 받아야만 하는 집)의 집주인인 히스클리프를 찾아가는 첫날 밤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워더링 하이츠에서 만난 히스클리프의 식구들은 캐서린, 헤어튼, 조셉, 그리고 가정부 질라. 록우드는 이 식구들의 첫 만남이 다른 가족과는 다른 분위기인데다가 종잡을 수 없는 가족관계에 의아함을 느낀다. 이상한 암울함이 드리워진 가족들. 록우드는 서둘러 워더링 하이츠를 벗어나고 싶었으나, 폭설로 인해 그만 발이 묶이게 된다. 가정부 질라의 심술로 인해 히스클리프가 아무도 재워서는 안된다는 방에 묶게 된 록우드는 그곳에서 낡다못해 곰팡이가 피어있는 책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 책에는 ‘캐서린 언쇼’였다가 ‘캐서린 히스클리프’였다가 ‘캐서린 린튼’ 으로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리고 잠 속에 빠진 록우드는 계속된 악몽과 전나무 가지가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 때문에 깨어나는데 그곳에서 여자아기 유령을 본다. 공포에 찬 록우드의 소리에 놀라 쫓아온 히스클리프는 록우드의 말을 듣고 창을 바라보며
“들어와 ! 들어와 ! 캐시 제발 들어와 . 아 제발 한 번만 더! 아 ! 그리운 그대, 이번만은 내 말을 들어주오. 캐서린 이번만은 !”
캐서린 린튼이 죽은지 수십 년이 흐른 뒤에 히스클리프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아기유령이라... 나는 여기서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캐서린은 왜 자신의 이름을 캐서린 린튼이라고 했을까? 록우드 조차 캐서린 언쇼가 아닐까 하는 의아함을 떠올리는데 ,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아기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유와 캐서린 린튼이라고 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것은 캐서린의 사랑의 형체이다. 캐서린이 캐서린 히스클리프로 살았던 생애, 가장 아름다웠을 때가 어린아이의 사랑이었다면, 자신을 캐서린 린튼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어른이 되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실제로 캐서린은 자신이 에드거 린튼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히스클리프를 사랑한다. 히스클리프 자체가 자신이라고 하듯이, 자신이 사랑하는 히스클리프와 에드거와의 사랑은 분리되지 않는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포기하지 않으며 소유하는 것이 가능한 그런 사랑이었기에 캐서린은 온전히 히스클리프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시기는 어린 아이였을 때나 가능한 사랑이었다. 어쩌면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사랑한 최초의 모습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서로에게 완전한 사랑이었을 때이기에 캐서린은 죽어서도 어린 아이 유령의 모습으로 그려진 듯 하다. 그렇지만 어쩐지 캐서린의 사랑, 어떤 면에서는 너무도 이기적인 사랑의 모습이다.
린튼에 대한 내 사랑은 숲의 잎사귀와 같아. 겨울이 돼서 나무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세월이 흐르면 그것도 달라지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히스클리프에 대한 내 애정은 땅 밑에 있는 영원한 바위와 같아. 눈에 보이는 기쁨의 근원은 아니더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거야. 넬리, 내가 바로 히스클리프야. 그는 언제까지나 ,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자신이 반드시 나의 기쁨이 아닌 것처럼, 그도 그저 기쁨으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그러니 다시는 우리가 헤어진다는 말은 하지마.
반면에 히스클리프에게는 캐서린이 전부인 사랑이었다.
캐서린의 오빠 힌들러에게 늘 구타를 당하고 폭행을 버티게 해 줄수 있었던 캐서린이라는 존재는 히스클리프의 전생을 다 차지하고도 남았으니, 캐서린이 부유한 집의 아들 애드거 린튼과 결혼하자, 히스클리프는 복수하기 위해 애드거의 동생 이사벨라와 결혼한다. 그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오빠 힌들러를 도박으로 유혹하여 워더링 하이츠를 빼앗고 힌들러의 아들, 헤어튼을 자신처럼 키운다. 히스클리프가 정신적인 타락과 보조를 같이하여 걸음걸이부터 얼굴, 성품이 모두 침울해져갔던 것처럼 과거 자신이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에게 받았던 수모를 워더링 하이츠의 주인에게 그대로 갚아주는 것이다.
무엇 하나 그녀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이 있어야 말이지! 이 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그녀의 모습이, 깔린 돌마다 떠오른단 말이야 ! 흘러가는 구름송이마다, 나무마다, 밤이면 온 하늘에, 낮이면 눈에 띄는 온갖 것들 속에, 나는 온통 그녀의 모습에 둘러싸여 있단 말이야 ! 흔해 빠진 남자와 여자 얼굴들, 심지어 나 자신의 모습마저 그녀의 얼굴을 닮아서 나를 비웃거든. 온 세상이 그녀가 전에 살아 있었다는 것과 내가 그녀를 잃었다는 무서운 기억의 진열장이라고 !
그러나, 히스클리프는 자신처럼 키운 헤어튼, 즉 자신의 전생을 바쳐 복수하기 위해 워더링하이츠 주인의 아들을 데려와 키우지만, 운명의 얄궂은 장난은 히스클리프를 다시 원점에 서게 하는 것이다. 헤어튼을 보며 히스클리프가 절규하는 이유 또한 자신과 무섭도록 똑같은 , 자신이 키운 헤어튼에게서 ‘불멸의 사랑, 권리를 지키겠다는 무모한 노력, 나의 타락, 나의 자존심, 나의 행복, 고뇌의 망령’ 을 보게 됨으로써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무섭도록 집요하였던 워더링 하이츠와의 싸움을 끝낼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폭풍의 언덕은 록우드와 엘렌(넬리) 두사람이 대화를 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워더링 하이츠에서 히스클리프를 처음 만난 후 넬리에게서 워더링 하이츠의 내력을 듣게 되는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 , 다시 현재라는 액자식 구성으로 이야기를 해 나가는데 워더링 하이츠의 오랜 가정부인 넬리는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이들의 죽음을 모두 목격한 산증인이다. 넬리는 이야기만으로도 그들의 내면심리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리고 그런 세세한 묘사가 폭풍의 언덕을 멜로드라마가 아닌 인간 실존의 세계를 그려낸 작품으로서 존재하게 한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는 곳에 세워진 집, 지금은 누구도 그런 집을 짖지 않지만,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기 위해서는 바람보다 더 강해야 한다. 그래서 폭풍의 언덕위에 세워진 워더링 하이츠는 강하다. 어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워더링 하이츠는 또한 히스클리프와 닮았다. 폭풍과 싸우려는 강한 집념과 무모함까지 말이다...그런 히스의 절대적이고도 영원한 사랑의 모습에 현재에도 세기의 사랑으로 불리워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