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1998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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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4쪽 | 450g | 153*224*30mm |
ISBN13 | 9788931003581 |
ISBN10 | 8931003587 |
발행일 | 1998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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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34쪽 | 450g | 153*224*30mm |
ISBN13 | 9788931003581 |
ISBN10 | 8931003587 |
멋진 신세계를 처음 본 것은 아마 중 2때인 것 같다. 그때 왜 이런 책을 보았을까? 어렸을 때부터 SF책을 좋아했고, 제목부터 좀 유토피아적(미래스러워)이라서 읽었었다. 무엇보다 책장을 장식하고 있는 압도적인 세계문학대백과 중에 한 권이었다. 그때 내가 이 책을 읽고 무엇을 느꼈을까? 막연하게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서, 상당히 좋게 평가한 것 같다. 그 후 TV영화로 이 멋진 신세계를 보았다. 번쩍이는 우주복 같은 것을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였지만, 과거의 영화라 내용에 비해 효과가 좀 초라했다. 그러다 20년 정도 지나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고, 그때 나는 내용을 얼마나 이해를 할 수 있었는지가 의문스러웠다.
문명의 흥망사라고 해야 하나. 9년 전쟁 후 인류가 내린 결정, 걱정 없이 사는 방법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 그리고 약물로 나아간다.“공유, 균등, 안정이라는 표어”. 이 속에는 사회의 선량하고, 행복한 구성원이 되려면 전반적 이해는 최소한으로 억제해야 한다. 그러기에 도입 된 표준형 남녀와 균등한 집단, 위대한 포드님이 시작한 세계 대량생산의 체계, 포드님 이외의 과거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과거말살 운동, 태아적 교육으로 성격은 전 생애를 통해 한결 같이 유지되는 평균 1만 1천명의 형제, 자매가 1백 50쌍의 일란성 쌍생 집단으로 태어난다. 육체적 성숙이 암소의 성장처럼 속성화 될 수 있으면 사회는 많은 자원의 절약이 가능하다. 소마로 유지되는 편안한 삶이 지금 사회이다. 역사는 엉터리야, 지금만이 역사이고, 현실이다. 만인은 만인의 소유물 이고, 인간은 물리화학적으로 볼 때 균등하다. 그러기에 개인이 감정을 가지면 사회는 동요하는 법이고, 사회라는 육신은 그것을 구성하는 세포가 변해도 존속하는 것 등 많은 역설을 담고 있다. 이 글을 어쩌면 소설의 탈을 썬 철학 책 같다. 우리에게 의문과 생각할 거리를 툭툭 던져준다. 어쩌면 헉슬리가 고민하던 일들을 책장으로 옮겨 놓은 것인지도..
발생과정의 실수로 열등한 육체를 가진 알파플러스급의 심리학자 버나드 마르크스, 그와 대비되는 거의 완벽한 외모와 지성을 가진 그의 친구 헬름홀츠 왓슨을 중심으로 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고민들을 보여준다. 또 신세계 속의 인디언 보호구역 속의 사건, 그 속의 존과 린다 그리고 원주민들. 린다는 신세계의 사람이었고, 아들 존은 원주민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 외톨이였다. 나는 나다라는 열등의식, 이질적이며 고독하다는 의식이 존을 사로잡았다. 어머니가 준 세익스피어의 책으로 그는 더욱더 감정의 인간이 된다. 그가 본 바깥 세상 ‘오오 멋진 신세계여!’
이 사회를 이끄는 총독의 고백, 그는 개인적으로 고뇌를 하지만 성공과 고뇌를 바꾼다. 죽음은 개념이기에 교육에 의해 생성이 되니 교육으로 죽음을 바꿀 수 있다. 반복 반복적인 출생부터 죽을 때까지 교육으로 죽음과 늙음의 고통을 없애 버린다. 늙음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해방된 사람들은 현실적인 만족에만 몰 두 할 수 있다. 그는 법 위에 서는 인간, 법은 인간이 만들기에, 그 법을 만든 존재는 그 법을 초월한다. 그러기에 그들은 과거도 디디고 일어설수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버린 것이고, 안정된 삶 속에서는 비극이 없고, 감정의 동요 없이는 예술은 없는 거지. 예술과 행복을 선택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자신의 정함과 비교가 아닐까. 비교가 되지 않는 세상과 보상을 통한 만족 그러면 행복한 것 인가. 행복하기 위해서 일하는 삶은, 일이 즐거운 법이다. 과학으로 이룬 사회지만, 과학의 해악을 잘 알고 있다는 역설. 어쩌면 과학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아니, 과학을 도구로써 통제하려는 생각이다.
원시인 존. 그의 동경과 자신이 바라본 세상과의 차이를 실감하지만, 그가 느끼는 감정 또한 책을 통한 학습임을 그는 알지 못한다. 그는 그의 세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이 옳고, 타인들은 다 틀린 것인가! 그는 이 세계를 동경하지만, 그 속에 속하지 못함에 원한을 가진 것이 아닌가? 존은 이 사회의 구세주인가. 자유는 무엇인가? 존은 자유롭게 살았는가? 그는 이 세계에 있지만, 이 세계를 사는 존재가 아니다. 그는 소마를 모른다. 하지만, 그가 아는 한 그것은 독,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는 독인 것이다. 그는 구세주인가? 왜 자유롭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인간들에게 자유를 설파하고 있다. 왜 이런 노력을 할까? 자아와의 싸움인 것 같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에 대한 자신과의 전쟁인 것이다.
존을 좋아하게 된 레니나, 사랑이라는 두려움과 사랑에 대한 원초적 본능과의 갈등인가? 왜 하필 그였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서. 그렇게 원하면 그를 가져라. 바로 실행에 옮기라는 말, 우리의 모습도 이와 그렇게 다르지 않는 것 같다.
버나드 마르크스와 친구 헬름홀츠 왓슨의 고뇌와 인간변명, 회의 등을 그리고 있다. 원시인 존과 만남에서 갈등하는 모습과 예술을 추구하는 행동은 변화를 상징하는지는..
행복의 대가 행복에게 무엇을 바쳐야 하는가? 지식과 진리. 우리가 진리를 향해 쌓아가는 것이 지식인가, 보편적인 행복은 평범이다. 우리가 정복해야 하는 것은 늙음이고, 늙음은 병이다. 우리는 병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가 늙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내세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면 종교는 사라질 것이다. 아니 종교를 믿는 인간만이 사라질 것이다. 신은 변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혼자인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고독한 혼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고독한 존재는 다른 존재이기에, 사회라는 체인을 멈추게 하는 이물질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을 같이하게 만들어라 혼자는 위험하다. 혼자이며 자해하는 야만인, 구경꾼들에게 자해의 채찍질은 새로운 구경거리이자 묘기였다. 더 이상 견디기 힘든 그는 자살로 이 멋진 세계에서 삶을 마감한다. 외눈박이 세상에서는 두눈박이가 이상한 것이다. 개성의 부재와 고통을 느끼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고통과 쾌락은 동전의 양면이다.
너무 유명한 미래소설이자, 내가 좋아하는 소설, 1984와 멋진 신세계, 우리의 현실과 미래. 우리는 멋진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뇌의 만족이 우리의 만족일 될 것이다. 뇌의 만족을 위한 약물복용과 전기충격이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이 쌍두마차는 우리를 싣고 우주를 가로 지를 것이다. 과연 나는 나이인가 아니면 꿈인가? 평등한 것 같으면서도 평등하지 않는 계급사회 속에서, 적은 노력과 많은 만족은 생의 충족조건일 수 있을까? 신에 대한 독립을 외칠 필요가 있겠는가 존재는 신과는 상관없다. 죽음은 사라짐이다. 인간의 진리는 교육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해를 할 필요가 있는가 그냥 생존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탄생하고 그렇게 소멸할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단지 기록이며 과거이다. 그러기에 지금이 아니다. 균등한 인간들과 차별의 인간 누가 더 만족하면서 생을 살 수 있겠는가!
헉슬리의 소설을 보면, 그에게 미래 세계는 약물(소마)에 의한 인간의 발달과 과거로의 단절로 그려진다. 그가 만든 세계는 두뇌의 만족을 위한 세계인가? 과연 우리는 행복한가! 영화 ‘브라질’의 환자용 의자에 누워서 행복의 꿈을 꾸고 있는 자는 행복한가? 다른 소설에서는 이런 신세계가 구세대에 의해 점령되어 파멸하게 되었고, 이 책에서는 구세계의 원시인의 자살로 마무리하네요. 하지만, 신세계의 끝이 어떠했는지 더 궁금하다. 이 새로운 세계는 계속 존속되었을까? 아니면 내부적 모순에 의해서 붕괴되고, 새로운 신세계가 만들어 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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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등장 인물, 다윈 보나파르트의 영화, 좀 지나치게 유능한 버나드 마르크스, 완벽한 헬름홀츠 왓슨, 헨리 포스터, 무스타파 몬드(총독), 엥겔스, 베니토 후버 등 유명인들 2명을 묶어서 하나의 등장인물로 사용, 그들의 성격을 헉슬리는 어떻게 표현했는지?
원시인 존이 너무 똑똑하다는 것은 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세익스피어를 읽었다고 저렇게 삶을 이해할까? 아니면 외로운 존재라서. 삶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은 분들은 세익스피어를 한 번 보아 보시기를..
20년 만에 읽어본다.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영어를 잘했고, 책읽기를 사랑했고, 특히 영국 문학을 좋아했던 20살 대학생은 햇살이 비춰진 대학교 중앙도서관 열람실에 걸터앉아, 청바지에 힌티셔츠를 입은 채로, 아르바이트가 시작되기 30분 전까지, 책읽기에 빠져든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넘기고 넘기던 책장. 가난한 여대생은 학비를 벌기위해 아르바이트 장소로 가야한다. 달콤한 시간을 잠시 접어야 한다. 아쉽지만 내일 다시 오자. 책을 덮는다. 그녀의 미래는 멋진 신세계일까?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그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학원을 진학해 영국문학을 더 공부해보자는 전공 교수님의 제안은, 가난의 굴레 덕분에 당연하게 거절로 이어졌다. 그리곤 20년 만에 다시 펼친 멋진 신세계. 안정되고 편안하고 정리정돈된 것이 결국 유토피아가 아니란 걸 다시금 느끼게 해준다. 내 열정을 다시 펼치고 싶다. 불안정하고 불편하고 어지럽지만, 사랑과 신뢰와 설레임과 존경이 있는 그때 그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멋진 신세계는 사회구성원들이 모두 행복한 그런 사회이다. 개인은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사회 전체적으로도 필요한 것들이 효과적으로 생산되는 사회이다. 한마디로 포드식의 기계문명이 극단까지 발달한 사회이다. 여기에 오늘날 말하는 바이오기술까지 합쳐져 인간마저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 사회에서 해야 할 일을 부여받고 거기에 적합한 자질과 체력을 가진 채 1백50쌍의 일난성 쌍생아의 형태로 대량 생산(?)되는 사회이다.
만인의 행복을 보장하는 유토피아적 세계는 그 특성상 공산주의적 사상의 바탕을 깔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조지 오웰의 <1984년>이 그리는 세계와 비슷하다. 멋진 신세계의 모토는“공유, 균등, 안정”이다. 여기에서는 사회의 선량하고, 행복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개인적 이해의 추구는 최소화된다. 어느 누구도 혼자로서 존재할 수 없고 집단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포드식으로 생산되는 표준형 남녀와 균등한 집단, 대량생산 체계, 과거역사와 문화에 대한 철저한 말살, 사회전체의 효율성 증대를 위해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통제와 쇠뇌, 그리고 약물사용이라는 방법이 꺼리낌없이 조직적으로 시행된다.
행복이라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얻을 수 있느냐는 척도로 본다면 <멋진 신세계>는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미리 세팅시켜 조절해 버림으로서 만족감을 주는 그런 사회이다. 이러한 것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기계기술이나 바이오기술과 같은 물질문명의 발달이 전제로 깔려 있다. 1930년대에 쓰여진 SF적 성격의 소설이지만 과학기술 발전의 미래에 대해 어느 작품보다도 현실감 있는 예측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과학기술 앞에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완전히 상실되어 가는 그런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멋진 신세계>로 풍자하고 희화화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형태의 진보에도 거기에 뒤따르는 희생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 없는 기술, 기술이 없는 사랑도 곤란하다. 기술과 인문과 결합, 그 사이에서 어떤 모양의 행복을 추구해야 할 지는 우리가 현명하게 결정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