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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

세잔의 산, 생트빅투아르의 가르침

[ 양장 ]
리뷰 총점10.0 리뷰 3건 | 판매지수 246
베스트
예술 에세이 top20 8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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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10월 2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264g | 127*195*13mm
ISBN13 9788961963800
ISBN10 8961963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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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운터스베르크1의 눈 덮인 정상에 서 있었다. 내 머리 바로 위, 거의 손이 닿을 만큼 가까운 공중에 까마귀 한 마리가 바람 속을 활공하고 있었다. 까마귀의 몸통으로 당겨진 발톱의 노란색은, 새의 이상적인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햇살을 받아 빛으로 일렁이는 날개는 금색이 섞인 갈색이었다. 그리고 하늘의 푸른색. 그 세 가지는 드넓고 편평한 공중에 널찍한 색채의 띠를 만들며 흘러갔고, 그래서 순간 나는 허공에 휘날리는 세 가지 색의 깃발을 본 듯했다. 그것은 주장이 없는 깃발, 오직 색채만의 사물이었다. --- p.14

나는 화가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감사조차 저버리고 있었다. 부속물이라고 오해하기는 했지만 간혹 가다 최소한 시력검사판 역할이라도 해주었고, 되풀이되는 생명과 환상의 이미지를 불러일으킨 적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색상과 모양 자체는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항상 그림으로 그려진 어떤 특별한 대상 자체였다. 대상이 없는 색채와 형태는 너무 무의미했고, 익숙한 일상의 자리에 있는 대상은 너무 흔했다. 여기서 ‘특별한 대상’은 딱 맞는 말은 아니다. 원래는 평범한 물체인데, 이를 화가가 특별한 모습으로 만들었고, 그래서 내가 이것을 비로소 ‘마술적’이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 p.19

나는 항상 무지를 궁핍으로 느낀다. 거기에서부터 특별한 목적이 없는 지적 충동이 일었다. 그것은 호응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관념으로 발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뭔가 이해할 만한 계기가 하나 주어지면, 그것으로부터 ‘정신의 단초’가 싹튼다. 그렇지 않다면 늘 막연한 갈망 차원에서 그치고 말았던 탐구가 그런 계기를 만남으로써 진지한 결과를 낼 수도 있다. --- p.33

왜 나는 하필이면 쓴다는 권리라고 말하는가? 그것은 불특정한 사랑의 순간에 왔다. 그것이 없으면 당연히 글쓰기도 없게 되는, 그런 순간. 샛길 안쪽 깊숙한 곳에 서 있던 뽕나무 한 그루가(실제로는 먼지투성이 흰 길에 떨어진 붉은 과즙 얼룩이) 내가 최초로 이성적인 기쁨을 생각할 수 있었던 1971년 여름 유고슬라비아의 붉은 뽕나무즙과 신선한 섬광 속에서 합치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시선이? 내 눈동자가? 어두워졌으며, 동시에 모든 형상들이 둥글고 깨끗하게 보였다. 또한 침묵이 있었다. 침묵과 함께 평범한 자아가 순수한 무명으로 변했고, 나는 변화의 충격 속에서, 단순한 무형 이상이었다. 나는 작가가 되었다. --- p.68~69

최종적으로 나는 결국 그것이 ‘내’가 될 수 있기를 희망했다(나는 지리학자인 조르거를 이미 나 자신의 내면으로 들여다놓았고, 그러므로 그는 어차피 수많은 시선으로 동행하며 계속 작동하는 중이었다). 나는 ‘발명’하지 말고, 가르침에 따라서, ‘현실화’(개별 경우에는 결국 발명도 그 안에 포함되는)해야만 했다. 또한 내 개인적인 확신은, 이야기 내면의 빛으로서 괴테의 ‘선한 자아’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것은 독자를 밝히고 고양시키며 책을 읽는 동안 우선적으로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그렇지 못한 글은 읽을 가치가 없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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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트케 스스로 발견한 스승, 폴 세잔. 세잔의 회화가 사물을 현실화한 방식을 따라가면서 글쓰기 미학의 깨달음을 얻고자 한 작가는 예리한 언어로 커다란 아치를 그리며 느리게, 하지만 동시에 논증이나 설명을 생략하고 직접 화살처럼 사물 안으로 꽂히듯 핵심으로 진입하는 특유의 서술 방식을 통해 문학적 아름다움을 구축해간다.
- 배수아 (소설가)
우리는 이 책에서 세 개의 생트빅투아르산을 만난다. 첫번째는 세잔이 그린 산이고, 두번째는 페터 한트케가 묘사한 산이고, 세번째는 실제의 생트빅투아르산이다. 그것들은 저마다 다르며 또 동일체이기도 하다. 한트케는 세잔의 그림 앞에서 미적인 것이 주는 내면의 법열감에 전율한다. 이 책은 단 한 번도 무엇인가에 이끌려본 적 없는 사람이 이끌렸던 세잔의 그림을 매개로 펼친 예술론이자 정신적 참 스승의 위대함, 즉 “오직 실재함과 충만함을 통해 유일한 것 또는 그와 같은 것에 귀 기울인다”고 말한 세잔에게 페터 한트케가 바치는 오마주이다.
- 장석주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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