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1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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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76쪽 | 254g | 104*182*20mm |
ISBN13 | 9791190885492 |
ISBN10 | 1190885492 |
발행일 | 2020년 12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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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176쪽 | 254g | 104*182*20mm |
ISBN13 | 9791190885492 |
ISBN10 | 1190885492 |
MD 한마디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길] 결혼과 출산으로 여성들이 ‘잃어버린 것'들의 합은 얼만큼일까. 선뜻 가늠할 수 없다. 이 책은 육아휴직 후 자발적 고립을 택한 여성의 내면을 내밀하게 파고들었다. 작가는 산다는 건 무언가를 계속 잃어버리는 일이어서 그리 슬퍼할 일은 아니라고 담담하게 위로한다. -소설MD 김소정
우리가 잃어버린 것 009 작품해설 161 작가의 말 174 |
인생을 산다는 게 그 접힌 페이지를 펴고 접힌 말들 사이를 지나가는 일이라는 걸, 아무리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여도 모든 것을 같이 나눌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걸, 하루하루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다 가끔 같이 괜찮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1쪽)
깊은 밤에 읽었더라면 나는 어느 순간 울고 말았을 것이다. 소설이 그렇게 슬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냥 어떤 서러움이 몰려왔다고 할까. 잘 모르겠다. 지난 시절의 나로 돌아가고 싶어서, 그때 시도하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나서 그런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이제는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서유미의 소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처음엔 평범한 일상의 기록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조금씩 일렁이는 감정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나는 좀 울컥했다.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모두 자신의 영역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나만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짐작할 수 있어서, 그 마음의 끝에 내가 있는 것만 같아서.
소설의 주인공 경주는 매일 카페 제이니에서 구직활동을 한다.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돌아올 때까지 취업 사이트를 방문하고 이력서를 쓴다. 집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경주는 카페로 나온다. 집이 아닌 다른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육아와 집안 일과는 구분된 경주 자신만의 시간 말이다. 결혼과 출산으로 다니던 직장은 휴직에서 퇴사로 이어졌다. 지우를 낳았을 때는 바로 복직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긴다는 게 불안했다. 동료나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선택은 경주의 몫이었다. 지우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경주는 다시 일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경단녀가 된 현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경주는 카페 제이니에게 자신과 마주한다. 그러니까 때로는 과거 어느 시절을 돌아보고 현재의 일상을 생각한다. 아이와 남편이 있는 안온한 삶이었지만 경주는 우울했고 외로웠다. 지우가 어렸을 때 힘들었지만 그 시간은 지났고 남편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다. 남편 주원과 술을 마시며 대화를 했고 영화도 보았다. 하지만 한정된 주제였고 확장되지 않았다.
친구와의 관계도 그러했다. 모든 걸 공유했던 친구들과의 간격은 어쩔 수 없었다. 기혼자는 경주뿐이었다. 경주의 결혼 후 자연스레 뜸해졌다. 서로가 나눌 수 있는 삶의 가치가 달라진 것일까. 경주는 종종 친구들과의 단톡방에서 혼자라고 느꼈고 단톡방을 나온 후 친구들과 연락하지 않았다. 우연하게 만난 대학 동기 J가 더욱 친근했던 건 지우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주가 취업에 대해 속상해하자 J는 경주의 고민을 가볍게 여겼다. 그러니까 배부는 투정을 하는 양으로 치부하며 가까운 곳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나 편의점, 마트를 찾아보라고 말한다. 내밀한 마음을 주고받았다고 생각했던 J와도 멀어졌다.
경주는 자신의 이런 마음들을 카페 제이니에서 정리했다. 처음에는 구직 활동을 위한 최적의 공간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곳은 안식처였다. 카페 제이니가 특별했던 건 카페 사장이 선택한 음악과 그녀에게 전해지는 분위기 때문이다. 카페의 세심한 소품에서 경주는 과거 자신의 취향과 만난다. 점점 더 그녀가 궁금했고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녀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았고 자신의 모든 걸 말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고 용기를 낼 수 없었다. 카페 제이니가 영업을 중단하면서 아쉬움은 커졌다. 경주가 결혼으로 인해 단절된 건 경력과 사회적 활동만이 아니었다. 일에 대한 자신감과 경주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무너졌다. 카페 제이니는 경주에게 새로운 통로처럼 보였다. 그건 세상과의 소통이 아니라 경주 자신과의 그것이었다.
경주는 자신이 두 달 동안 시간을 보냈던 카페를 새삼스레 다시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미지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고 어디에 도달하게 될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지만 여기서 보낸 한 시절이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 건 분명했다. (160쪽)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느끼는 경주의 생각과 감정의 기록은 중요한 일기처럼 다가온다. 그 일기는 경주가 쓴 것이지만 동시대의 수많은 경주가 쓴 것이다. 그중 하나는 내가 아는 경주라는 걸 안다. 소설 속 경주의 삶을 그려본다. 그녀의 하루가, 크게 변화 없는 그녀의 표정이, 그녀의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들이, 그녀가 다시 움직이는 모습이 선명해진다. 삶이라는 긴 여정의 어느 시절과 이별하고 잠시 멈췄고 다시 이동한다. 목표를 정해둔 건 아니다. 다만 후회와 미련은 접어두고 나아갈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들은 모두 한 시절을 지난다. 지나온 사람들은 아찔해하며 그 시절을 떠올릴 것이고, 아직 지나고 있는 사람들은 무얼 모르기 때문에 설레어 할 것이다. 모든 것들은 이처럼 상황에 따라, 경험에 따라 느끼는 게 달라진다. 우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곧잘 하는데 나는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 있다면 그건 아직 어린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시절의 나다. 잠을 자지 못했었고, 출근할 때면 화장실 문밖에서 우는 아이 때문에 제대로 씻지도 못했었다. 그럴 때 제일 부러워했던 게 출근하지 않고 아이를 보살피는 엄마들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엄마가 아이를 키우는 게 가장 좋다. 그럴 수 없는 상황이어도 아이의 정서를 위해 생후 2~3년은 엄마가 키운다면 더할 나위 없다. 아이의 모든 것이 형성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많은 엄마들이 직장을 다니다가 아이 때문에 결국엔 직장을 포기한다. 처음엔 휴직했다가 어쩔 수 없이 사표를 쓴다. 서유미의 소설 속 노경주도 그런 인물이다. 아이를 낳고 휴직했다가 복직을 포기했다. 도와줄 양쪽 부모님들도 멀리 계셨고, 어린이집에 맡기려 몇 번 면접을 거쳤지만 아직 어린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지 못했다.
지우가 어린이집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경주는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제는 재취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니던 회사로 복직할 수는 없었고, 회사에서 받던 연봉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경주는 그야말로 경단녀가 되었다. 경력단절녀. 이력서를 낸 회사에서는 그녀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녀가 쌓아왔던 커리어를 인정해주지 않을 뿐 아니라 아이가 있는 여성이 직장 일에 제대로 매진할 수 없을 거라 의심했다. 경주 또한 직장에 다니면서 많이 보아왔던 상황이었다. 전화가 걸려왔는데, 언제부터 일할 수 있느냐, 구인광고에는 없었던 야근과 주말근무가 있는데 할 수 있겠느냐, 였다. 미리 걸러내는 거라 할 수 있는데 이 또한 경주가 회사 다닐 때 당연한 것처럼 했던 일들이었다.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카페 제이니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다니게 되었다. 오전 11시30분에서 지우가 오는 오후 4시까지 제이니는 경주에게 자기만의 공간이었다. 오히려 커피 보다 더 필요했던 그 공간에서 취업 사이트를 뒤지고 이력서를 수정했다. 카페 제이니의 사장은 단정해 보이는 여자였다. 조용히 커피를 내리고 손님이 없을 때면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했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자기보다 몇 살 아래로 보이는 제이니의 사장처럼 경주도 자기의 미래를 꿈꾸었다. 그리고 카페 제이니를 안식처처럼 여겼다.
경주의 친구들이 나오는데 이 상황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이 경험하는 일이라 특히 공감이 갔다. 결혼한 친구와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 간에는 서로의 공감대가 달라 한동안 이별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이별이라고 하기 보다는 그저 연락을 하지 않은 상태라고 할까.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아주 나중에서야 서로를 찾게 되는 것 같다. 경주를 포함한 다섯 명은 고등학교 다닐 때 친했던 친구들이었다. 함께 모여 수다를 떨고 여행을 다니기도 했는데 경주가 결혼을 준비하면서부터 뜸해졌다. 이른바 사정이 생긴 경주가 모임을 몇 번 빠지게 되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여행을 가고 따로 만났다. 언젠가부터 다섯 명이 모인 단톡방에서 대화가 사라졌다. 처음엔 경주를 배려하여 네 명이 따로 단톡방을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경주는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 친구들에게 지우의 돌잔치를 알렸을 때 축하한다는 말은 했지만 친구들 중에서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경주는 상처받았지만 따지지 않았고 그 단톡방에서 조용히 나왔다.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 않았던 대학동기 J에게서 느꼈던 것도 비슷했다. 경주는 J가 자기를 이해해준다고 여겼다. 외롭고 답답한 경주의 집을 찾아와 함께 있어 주어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하지만 J 또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사람들은 같은 공감대를 가진 사람과 더 친하게 지낸다. 아이들을 키우며 느끼는 것들과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하고 같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과 이야기가 통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타인을 이해한다고 해도 알지 못하는 세계에 공감하기란 어려운 법이므로 어쩔 수 없다.
이러한 감정들을 겪는 와중에 카페 제이니의 문이 닫혀 있었다. 변함없이 자기만의 공간으로 여겼던 카페가 닫혀 있자 경주는 서운함이 앞섰다. 카페가 다시 열렸으나 경주는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다음 날 찾아 갔더니 사정에 의해 며칠 닫는다는 메모지가 붙여 있었다. 나중에서야 미스 제이니가 아픈 아이를 둔 엄마였다는 걸 알았다. 생각하기에, 경주는 아픈 아이를 위해 기도해달라는 메모 때문에 미스 제이니를 이해를 한 것 같았다. 카페 제이니를 내버려둔 것도, 그녀가 말없이 눈물을 흘렸던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처음 만나 느꼈던 설렘도, 친구들과의 우정도. 자신의 커리어에서 빛났던 순간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얻은 건 결국 타협이다. 재취업의 문도 저만치 사라지고 친하다 여겼던 친구들과도 이별했다. 이별에 상처를 받았음에도 새로운 관계의 문 앞에 서게 된다. 그 문을 열게 되면 새로운 관계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나를 찾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인물을 비춘다. 우리의 민낯을 볼 수 있었던, 자신에게 좀 더 침잠하여야 비로소 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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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것>
서유미 저/ 현대문학
2020년 12월 25일
"단절과 고립을 넘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
1. 들어가며
인생을 살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어느 덧 소설 속 경주와 같은 나이대에 접어들어 내 삶을 돌아본다. 특히 결혼, 출산, 육아의 한 세월을 지나 어느덧 지금은 안정적인 육아기에 접어든 지금 현실을 둘러본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육아의 터널 속은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멀기만 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안정적인 순향을 계속하고 있다. 혼돈과 방황의 소용돌이는 이제 지나가고 잔잔한 바람만 일 뿐이다.
이 책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읽으며 나의 과거와 현재를 돌이켜보았다. 마치 내 이야기인 것 같아서 마음이 울컥하기도 했다. 마치 소설 속 경주의 삶이 내 삶인 것만 같아서..그녀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예전 내가 마주했고 겪어온 현실이라서 말이다. 그리고 그 현실은 지금도 이어지고 여전히 그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안타까웠다. 그 힘든 출산과 육아의 터널을 지나온 인생 선배로서, 엄마로서, 그 끝이 무엇인지 알기애, 뽀족한 해결방법도 없다는 그 답답함과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팠다. 나 또한 그저 시간과 세월의 흐름 속에서,늘어나는 흰머리의 갯수의 증가와 하루하루 무럭무럭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그 육아의 터널의 끝 언저리에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소설 속에서 단순히 육아의 힘겨움 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다. 소설 속 경주의 삶이 육아로 인해 고단하지만, 그녀는 그 힘겨움 속에서도 그녀 자신을 찾고, 그녀의 인생을 다시 살고자 한다. 카페 제이니라는 그녀만의 안식처 속에서 다시금 내일을 향한 희망을 꿈꾸어 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런 현실에 대한 깨달음과 단절된 인간관계로 힘들지만, 그녀는 그 또한 담담하게 수용하고 이겨 나가려 한다. 그런 경주의 마음을 알기에 나 또한 동병상의 아픔을 느꼈다. 이 책 [잃어버린 것]을 통해 나 또한 나의 과거와 현재를 대면하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할 수 있어서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2. 책 속으로
이 책 속에는 경력 단절녀가 된 평범한 여성 '노경주'가 등장한다. 이 책 속 이야기는 거창하거나 화려하지는 않다. 우리가 일상 생활 속에서 들을 수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그 시절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경험한 이야기일 것이다.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기에 우리에게 공감을 자아내고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일상 속에서 너무나 흔하게 보내는 수많은 경주의 모습이기에 말이다.
인생을 산다는 게 그 접힌 페이지를 펴고 접힌 말들 사이를 지나가는 일이라는 걸,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여도 모든 것을 같이 나눌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걸, 하루하루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해나가다 가끔 같이 괜찮은 시간을 보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31)
경주는 오늘도 딸 지우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11시 30분 카페 제이니로 매일 출근을 한다. 카페 제이니에서 그녀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커피를 주문하고 노트북을 켜고 구직 사이트를 방문하고 이력서를 쓴다. 구직 활동은 집에서도 할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그녀만의 공간과 시간이 필요했다. 결혼, 임신, 출산,육아의 과정 동안 아이의 시간만 존재할 뿐 그녀 자신의 시간은 찾을 수 없었다. 아이가 잠이 드는 시간이 유일한 그녀 자신의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아까워 쉽게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출산 전 그녀는 워커홀릭이라 불릴 만큼 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그러다 딸 지우가 태어나고 그 이후 그녀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쉽게 복직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는데 아직도 어린 딸 지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회사애 나가기가 너무나 불안했다. 그래서 주변 선배들의 조언을 구했으나 언재나 선택은 그녀의 몫이었다. 결국은 퇴사를 하기로 하고 지우 육아에만 전념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 지우가 어느 정도 커서 어린이집에 가게 되니 경주는 다시 일을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을 시간 동안 카페 제이니에서 구직활동도 하며 그녀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왔던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육아맘이라면 경주의 이런 마음이 이해가 갈 것이다. 나 또한 아이를 키우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를 원했었다.. 엄마의 삶만 있을 뿐, 내 삶은 없다는 것이 너무나 슬프고 받아들이기에 힘든 현실이었다. 아이가 잠든 새벽 시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이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고 자유시간인 것이다. 소설 속 경주도 아이가 잠든 새벽 시간 동안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켜서 세상 이야기, 여행, 영화 등 아이로 인해 단절된 그녀의 세계를 세상과 소통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으려 용기를 내려 하지만, 경력 단절의 현실은 너무나 가혹하고 비참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외롭고 고립된 경주가 마음의 안식을 얻는 공간이 바로 카페 '제이니'이다. 마치 회사에 출근하듯, 그녀는 카페 제이니로 출근하며, 커피도 마시고, 좋아하는 음악도 들으며 결혼 전 독산의 여유와 낭만도 찾는다. 카페 사장 미스 제이니의 샌스있는 감각의 음악 선곡과 경주의 독신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아로마 향의 핸드워시, 미스 제이니의 한결같은 모습 등은 경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휴식을 제공한다. 육아로 인해 고립되고 단절된 경주의 외로운 마음이 치유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경주는 손님들이 밀물처럼 빠져나간 뒤 각자의 일에 조용히 몰두하는 제이니의 오후를 좋아했다. 하려는 일에 별다른 진척이 없지만 햇빛이 내려앉는 창가에서 음악을 들으며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살아 있어서 괜찮다는 기분이 들었다. (p.54)
J와 재취업과 경력 단절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동안 경주의 마음 한쪽에서는 셔터가 천천히 내려왔다. 안과 밖이 훤히 보이지만 저쪽의 말이 이쪽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안에 있는 말이 밖으로 흘러 나가지 않았다. (p.118)
이렇듯 그녀가 의지하고 기댈 곳은 카페 제이니 뿐이다. 그러나 그녀의 안식처였던 카페 제이니조차 개인 사정으로 문을 닫게 된다. 카페 제이니의 변함없는 음악과 커피향은 항상 그녀에게 일상의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었었다. 하지만 그런 공간이 사라지고 나서 경주는 갈 곳이 없어져 이곳 저곳을 배회하게 된다. 그녀는 카페 제이니에서 보냈던 시간을 생각해본다.
경주는 공간으로서의 제이니뿐 아니라 제이니에서 보낸 시간도 자주 돌아보았다.
제이니에서 재취업을 준비하며 두 달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경주는 일자리와 월급의 개념이 바뀌고 사라지는 시대에 자신의 자리는 어디에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게 재취업의 문제가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는 걸 제이니에서 두 달을 보낸 뒤에야 알게 되었다. (p.155)
친구 J와 인생의 한 때를 지나왔듯 카페 제이니와도 짫은 구간을 함께 건너왔다. 만약에 그 곳에 좀 더 있었더라면 미스 제이니와 이야기도 나누며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주는 알게 된다. 어떤 마음이 그녀 자신에게 이미 떠났음을 말이다. 이제는 제이니에 가야 한다거나 가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그녀는 그녀에게 안식처를 제공해주었던 카페 제이니와도 이별을 하고 한 때를 지나간다.
경주는 자신이 두 달 동안 시간을 보냈던 카페 제이니를 새삼스럽게 다시 돌아보았다. 여전히 그녀는 미지의 시간을 지나는 중이고 그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두달의 시간 동안 카페 제이니에서 보낸 한 시절이 그녀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했음을 깨닫게 된다.
더이상 그녀는 무인도에서 비행기가 지나갈 때마다 횃불을 들고 구조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좌표를 찾아 이동중에 있다,
3. 나오며
경주가 이따금 돌아보는 건 타인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이었다. 과거의 자신이 당연하게 여기던 것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생각했다. 현재의 삶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과거의 어떤 부분만 돌이키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 이중적인 심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p.82)
나는 현재의 삶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과거의 어떤 부분을 돌이키고 싶을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과거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말이다. 이미 그렇게 과거의 한 때는 지나갔고, 지금도 현재의 한 때가 지나가고 있다. 곧 내일이라는 미래가 밝아올 것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삶은 지속되며 그렇게 한 때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가기도 하지만 그것은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삶이 지속된다는 것은
무언가를 천천히 잃어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그걸 알아가는 게 슬프기만 한 건 아니라는 얘기도 나누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