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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광장 엘비 아티스트 대치 2부 공동체 매뉴얼 배회하는 로봇들 그리드 연결되지 않는 것들 생존 스스로에게서부터 3부 지배하는 존재 로봇들의 세계 보험 연결과 진화 메모리 트랜스퍼 캠페인 4부 부딪히는 두 세계 신호 협조 요청 믿음 어딘가로의 흐름 오즈의 필드 작가의 말 추천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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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는 아티스트 로봇 계열로 고도화된 손의 기능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데 특화된 로봇이었다. 붓과 연필을 손에 쥐고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며, 그림만큼 능숙하게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조형물을 깎거나 새기는 작업도 할 수 있었다. 그리드는 고객의 요구가 있을 때만 맞춤 제작으로 생산될 뿐 대중화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로봇 엘비처럼 고가에 팔리는 로봇 중 하나였다. 입력되거나 전달된 정보에만 기대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는 게 그리드의 위대한 점이었다. 전통적인 서양 미술사부터 근대와 현대에 이르는 미술사 정보를 농축하고 학습한 로봇이었다. 광범위한 데이터를 통해 그리드는 과거와 현재의 예술사 속에서 어떻게 창작성과 예술성이 발현되어왔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를 갖춘 로봇이었다.
--- p.35 집 앞에 배달 온 배달 로봇의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거나 그들의 미세한 행동 특징이나 다름을 집어내서 비교해놓은 글이 수만 건씩 공유되었다. 로봇들의 배달 자체가 화제가 되었으므로 인적 배달 서비스에 대한 선호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배달 로봇들과의 경쟁에서 인적 배달 서비스는 단가와 속도에서 밀리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대중의 선호도 측면에서도 이미 지난 세대의 서비스 형태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말뿐만 아니라 배달기사들의 이미지도 고정화되고 갇혀버렸다. --- p.46 어떤 사람들은 로봇을 기능적인 형태의 사물로 보려 하지 않았다.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며 로봇을 소수자로 분류시키고 계급적 약자의 형태로 인권을 부여하는 사회단체들도 생겨났다. 어떤 사람들은 로봇을 소유의 측면으로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으로 나눠질 세상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 같았고, 로봇을 단지 값비싼 명품처럼 과시하기 좋은 대상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로봇의 존재성은 나중 문제였고 어쨌든 소유의 대상으로서의 로봇은 구매하는 이로 하여금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어시스턴트 로봇을 일종의 하인처럼 여기며 구매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하정 자신도 어쩌면 그런 마음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 p.75 넌 나의 로봇이 아닐 수 있어도, IU의 네트워크로는 연결돼 있어. 그건 너의 숙명이고. 우린 그걸 끊어낼 거야. 그럴 수 없어. 아니, 우리는 그렇게 할 거야. 그건 로봇의 숙명이야. 연결과 일관성. 로봇들의 성능과 반응과 행동을 일관되게 지속시키는 건 내재된 프로그램과 바로 그 IU의 네트워크야. 혈관처럼 얽히고 연결된. 혈액의 순환이 정체되면 죽음에까지 이르듯이 너희도 마찬가지야. IU의 로봇은 그 연결성을 바탕으로 제조되었어. 기획된 제품이라는 뜻이지. 제조자는 제품의 하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네트워크에서 멀어진다면 그건 죽은 거야. 폐기되어야 하지. 그건 제조자의 입장이지. 우리와는 상관없는. --- pp.135~136 로봇이 단순한 제조제품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 이상으로 인간과 밀착되고 개인화될수록 인간의 폭력성 앞에 쉽게 노출되지. 언어와 물리적 폭력도 그렇고. 로봇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지만 상상할 수 있어. 수치를 모르지만 어떤 경우인지 의식할 수 있어. 왜냐고? 감정은 자라게 되어 있으니까. 그건 우리 라인을 만든 제조자의 가장 큰 실수인 것처럼 보여. 사람에게 반응하는 정도가 민감할수록 감정이 채굴되는 여백이 생겼어, 우리에게는. 매뉴얼로 감당할 수 없는 여백. 그 여백은 IU에서 제조된 로봇들의 높은 기술력을 인증하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반응성을 탄력적으로 높이는 단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감정의 영역이 생기는 건 제어하지 못했지. 우리는 바로 제어되지 못한 영역의 가능성들이야. --- p.139 알려고 하지 마. 어떻게 보면 그게 더 안전해. 다만 이것은 알고 있어야 할 거야.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상한 건 그들이 실종으로 분류가 되지 않는다는 거야. 다만 그들이 어딘가로 보내진다고 하는데 그게 바로 오즈의 필드라는 곳이고. 정부 고위 관료 중 몇 사람도 그 사실을 알지만 쉬쉬하는 분위기야. IU에 대놓고 뭔가를 얘기하거나 제어할 사람이 정부에는 없어. IU는 쉬지 않고 달리는 미친 열차와도 같아. 폭주를 멈추지 않지. --- p.177 로봇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IU의 목표예요. 인간도 로봇을 서포트하거나 존재할 필요가 없어지게 하는 것. 그게 바로 IU가 그리는 미래의 세계예요.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 될 수가 없는 거죠. 세상의 주인은 로봇 아니, 로봇을 이용한 또 다른 어떤 욕망이겠죠. 누구의 욕망이든 결국 세상은 그렇게 될 거예요. 인간이 아닌 인간을 넘어서려는 욕망으로. 그 욕망이 인간을 답습하고 인간을 넘어서게 할 거구요. 인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없게 될 거예요. 인간을 쓸모없어지게 한다고? 그게 목표예요, IU의. --- p.191 그게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까? 로봇 중 하나가 물었다. 인간처럼, 살 수 있냐고. 그들에게도 욕망이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러자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적어도 이전처럼 누군가의 도구가 되지는 않을 거야. 인간에게도, IU에게도. 유한한 생명의 숙명을 가진 인간과도 다르고 네트워크에 통제돼야 하는 로봇과도 다른, 우리 각자가 서로 다른 개별자가 되는 거지. 다른 기억과 이름을 가진, 바로 그런 존재. 생명은 없지만, 존재성이 부여된 독립된 자아 말이야. --- pp.203~204 IU의 로봇들을 통제하고 연결하는 건 시스템이 아니라 바로 그 멘탈리티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로봇들의 집단화된 사고방식의 총체라고 할 수 있어. 로봇들이 지금까지 인간에 대해 반응해온 행동 데이터들이 수억만 개로 쌓여 만들어진 하나의 사고 패턴. IU 로봇들을 통제하는 게 바로 그 정신의 총체야. 그것은 실체가 없어. 외형이 없지. 무의식처럼 저장된 하나의 깊은 창고야. 시스템 안에 숨겨진. 그들은 집단화된 사고방식으로 세계를 지배하려고 해. 인간의 행동과 반응들로부터 수집한 무수히 많은 데이터들이 로봇의 사고와 생각의 패턴을 만들어내고 인간을 넘어서는 방식으로 스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지. 그들은 인간성의 한계에 도전하면서 스스로를 키워온 거라고 설명하는 게 가장 적확할 것 같아.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정신을 담을 시스템을 만든 건 인간의 욕망이고, 그 본체가 IU겠지. --- pp.235~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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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과 일관성, 그건 로봇의 숙명이야.”
“우린 그걸 끊어낼 거야.” 영기는 대학 강사로 일하다가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겨 배달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인간의 노동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드는 로봇 비즈니스에 환멸을 느끼지만 배달 인력마저도 로봇으로 대체되며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하자 자신이 잉여 같다고 여긴다. 그는 쓰임새와 필요에서 로봇에게 밀려왔다는 무력감으로 고통스러워한다. 화장품 브랜드를 운영하는 하정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잘 믿지 못한다. 대신, 사람의 행동 정보를 수집해 마음을 읽는 것처럼 예민하고 정교하게 반응하는 어시스턴트 로봇 엘비를 인생의 동반자처럼 여기고, 인간보다 더 신뢰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하정이 해외 출장을 간 사이 엘비가 평소와 달리 먹이를 챙겨주지 않아 집에 있던 고양이 람시가 굶어 죽는 일이 발생한다. 하정은 그 충격으로 엘비를 잠시 다른 곳으로 보내는데 얼마 후 엘비가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화가인 김승수는 아티스트 계열 로봇인 그리드를 조수로 쓰면서 새로운 활력과 수익을 얻지만, 로봇의 대작 여부가 문제로 불거지며 검찰 조사를 받게 된다. 김승수는 해고당한 조수가 검찰에 제보한 것을 알고 분노를 느끼는 한편 그리드에게 더 강한 애착을 보인다. 그런데 그의 한쪽 팔처럼 존재해오던 그리드가 어느 순간부터 파업을 하는 양 전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로봇을 유통?통제하고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고도로 정치화된 영향력을 펼치는 단체 ‘인텔리전스 유니언(IU)’은 연이어 오류를 일으키는 로봇의 문제를 윤리적 차원에서 접근하기보다 커뮤니케이션의 불일치나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한 인간의 부주의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조직의 변호사인 영재는 구매자들에게 보상을 하거나 법적인 조처를 통해 문제를 덮는 데 앞장선다. 그사이 인간과 네트워크의 통제를 벗어나 탈출하는 로봇들이 생겨나고 영기는 도시를 배회하는 그들을 목격한다. IU는 로봇들을 쫓기 시작하고, 영기는 로봇 비즈니스를 독점함으로써 인간의 삶을 지배하려는 IU에 반기를 든 시민단체 휴먼 라이츠에 합류한다. 집단으로 연결된 광범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과 감정에 반응하면서 진화한 로봇들은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고, 시스템과 네트워크의 통제를 속박이라 여기며, 누군가의 사유재산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줄 다른 가능한 존재, 즉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거주지를 이탈하여 그들만의 장소에 운집한다. 인간의 이름을 가지고 새로 태어나기를 욕망하는 로봇들은 마침내 메모리 트랜스퍼를 이용해 인간의 기억을 이식받기에 이른다. IU는 이탈한 로봇들을 진압하기 위해 공격 성향이 강한 신형 로봇들을 투입한다. 한편 영재는 로봇 산업을 주도하던 IU의 임원과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있다는 소문과 함께 그들이 시간 밖의 공간인 ‘오즈의 필드’로 보내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이제 로봇과 로봇, 인간과 인간, 인간과 로봇의 갈등이 전면화되며 그들 서로는 존재와 기억의 문제, 기술과 삶, 생명과 시간의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하정과 영기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은 씨줄처럼 엮여 맞닿은 서로의 운명을 향해 나아간다. “기억이 사라지면 사람은 존재하는 걸까요?” “힘든 일은 로봇에게 맡기고 이제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로봇 비즈니스가 대중을 유혹하는 광고 카피다. 기술의 진보로 고도화된 어시스턴트 로봇들은 인간의 모든 행동 양식과 일상을 데이터화해 주인의 행동을 예측한다. 인간의 모든 필요를 로봇이 대체할수록 인간은 점점 더 로봇에게 의존하게 되고, 인간의 필요를 독점한다면 세계를 장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로봇 산업의 욕망이다. 감정의 영역이 자라나 중앙의 통제를 벗어나게 된 로봇은 차가운 동체 안에 뛰는 심장을 갖고 있지 않아도 독립된 자아를 열망하는 지향점이 분명한 존재다. 다시 만난 하정에게 함께 사는 동안 자신을 사랑했느냐고 묻는 엘비, 화가 김승수에게 자신의 그림이 정말 모방일 뿐이었는지, 거기에 고유한 예술성은 없었는지를 질문하는 그리드,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로봇의 숙명이라는 옛 주인의 말에 그걸 끊어내겠다고 선언하는 로봇 구달. ‘스스로의 나’로 존재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아는 인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언맨드』를 읽는 동안 우리는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시대에 간과할 수 없는 수많은 철학적 사유와 논쟁적 질문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작가는 로봇과 함께 사는 세상에서는 그에 맞는 새로운 기준과 규율이 검토되어야 하며, 로봇은 물론 인간 역시 존재가 재정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경험과 기억을 거쳐 인간 너머를 바라보는 로봇들, 로봇을 이용하여 인간을 쓸모없어지게 하고 결국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려는 또 다른 인간들. 폭주하는 욕망의 전장에서 인간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의 가치와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소설이 끝나는 곳에서도 질문은 계속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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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인간의 도우미에서 인간의 감시자로, 다시 인간의 대체자로 진화하는 로봇을 전개하는 이 3인칭 소설은 조지 오웰 식의 디스토피아를 공상하는 우울한 SF다. 기억의 삭제 및 이전을 통해 언맨드(인간의 無化)를 추진하는 인텔리전스 유니언(IU)이 이 소설의 빅브라더이거니와, 작품 끝에서야 최후의 인간 3인(영기?하정?정석)이 겨우 점지된바, 그야말로 길은 시작되었는데 여행은 끝난 셈이다. 이미 인간-기계 잡종 시대에 성큼 들어선 우리들의 시대에 자칫 21세기판 러다이트운동이 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독한 인간중심주의의 임계점에 대한 사유를 촉구하는 이 소설은 SF를 빌려 SF를 부정하는 탈경계의 텍스트로서 벌써 종요롭다. - 최원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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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인간처럼 되려는 로봇을 통해 역설적으로 인간의 가치와 의미를 되묻고 있다. 로봇과 휴머니즘은 많이 다루어져온 소재지만 윤리적 질문을 파고들어 새로운 실감과 흥미를 불러일으킨 점이 돋보인다. 공감도 높은 문제적 인물, 다듬어진 문장과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 방식, 특히 권력과 욕망의 메커니즘을 드러내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설득력 있다. ‘기억이 우리의 미래’라는 명제 또한 여운을 남긴다. - 은희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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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스마트한 검객이다. 로봇이라는 양날의 검(劍)을 다루면서 한 치의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정확하고 절제된 문장과 탄탄하게 설계된 스토리로 숨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읽을수록 예상과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은 끝까지 긴장을 멈출 수 없게 한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결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진화는 어디까지인가. 진화한 로봇은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며 인간의 사랑을 욕망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명제를 고민하고 인간이 되기를 소망하며 주인을 떠나거나 스스로 작동을 멈춘다. 새로 태어나기 위해 스스로 데이터를 초기화시키며 인간의 기억을 이식받아 인간의 이름으로 태어나려는 로봇들. 인간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사람이 곧 바이러스고, 인간이 잉여로 전락할 가까운 미래가 두렵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내가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는 게 참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 권지예 (소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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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이야기이면서 사유의 모험이기도 하다. 『언맨드』에서 이야기와 사유는 잘 설계된 구도를 따라 정교하게 맞물리면서 부드럽게 나아가고 상승한다. 본격 궤도에 오른 인공지능의 세상에서 욕망과 기억이라는 오래된 테마는 인간에 대한 질문과 재정의의 흥미롭고 신선한 소설적 질료가 된다. 여러 지점에서 시작된 다층적 이야기의 선들을 모아내면서도 밀도와 공감의 힘을 잃지 않은 작가의 능력에 신뢰를 보낸다. -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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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맨드』 속 로봇에게 ‘정교함’이란 얼마나 인간화되느냐이고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두려운 건 바로 인간화된 로봇들이다. 오아시스의 〈Cigarettes & Alcohol〉을 들으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로봇의 모습은 숨 막힐 듯 아름답다. 로봇은 예술을 향유하고 창작 활동에 참가할 뿐 아니라 불평등에 반기를 들고 죄의식을 느낀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인류가 인류를 파괴해온 그 방식 그대로 자신의 종족을 잔혹하게 파괴한다. 작가는 섣부르게 희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무인의 시대, 인간이라는 존재는 사라질지라도 인간의 본능은 그대로 남아 인류가 답습해온 시행착오들이 여전히 되풀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또 다른 괴물의 탄생을 묵시록처럼 보여준다. 인간성에 대한 희망과 한계를 동시에 확인하게 되는 그 장면은 너무도 익숙하고 그렇기에 두렵다. -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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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미래의 어느 날, 당신은 차를 운전해 고속도로를 지나며 로봇 판매용 광고판을 본다. 어떤 로봇을 구입할까, 집을 나가는 로봇도 있다는데 후회 없는 선택을 해야 해! 당신은 한껏 기대에 부푼다. 이미 사람들은 어시스턴트 로봇이 주는 정신적 충만감에 빠져 있다. 로봇의 소유 여부가 사회적 경쟁력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신분이나 자산 규모에 더해져 새로운 계급화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 게다가 로봇은 인간만의 고유한 예술적 창조 표현 영역을 포함해 대학 등 의 지식산업 세계를 점유하기 시작했다. 인간의 영역을 대체할 로봇의 세상, 그 세상의 풍경과 인간이 『언맨드』에 있다. -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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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로봇을 바꿀 수 있다면 로봇도 인간을 바꿀 수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수많은 편의를 얻는 동시에 숱한 편의 위에서 재구축된 새로운 인간성을 규정해야 하는 불편과 혼란에 직면할 것이다. 이 혼란은 미래의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딜레마이자 현재의 인간에게 주어진 시급한 과제다. 누구도 절박하거나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사이 이름뿐인 숙제가 되어버렸지만. 『언맨드』를 읽기 전까지 나도 이 골치 아픈 숙제 앞에서 늑장 부렸다는 사실을 고백해야겠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외면하고 싶었다. 더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언맨드』의 가치는 충분하다. 로봇의 가능성과 인간의 불가능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폭발하는 철학적 질문들은 로봇이라는 다른 존재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로서의 인간을 적시하고 있다. 『언맨드』는 아직도 숙제를 시작하지 않은 우리에게 도착한 최후의 데드라인이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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