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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보슬 / 보슬비가 내려옵니다 / 마당 위에 / 고여 있는 물만 불리는 / 보슬보슬 / 보슬비가 내려옵니다 / 우리 둘이 껴안고 / 이 비를 맞아 / 우리의 사랑에 / 물이 고이면 / 내년 춘삼월이 / 다시 올 때에 / 우리의 헌 사랑에 / 새싹이 날 거예요
--- p.15 김명순, 「보슬비」 중에서 … 감히 손에 손을 잡을 수도 없고 / 속삭이기에는 이 나이에 겸연쩍고 / 그래서 눈은 하늘만을 쳐다보면 / 얘기는 일부러 딴 데로 빗나가고 / 차디찬 몸짓으로 뜨거운 맘을 감추는 /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죠 … --- p.26 노천명, 「당신을 위해」 중에서 길바닥에 구르는 사랑아 / 배고픈 이의 입에서 굴러 나와 / 사람의 귀를 흔들었다 / ‘사랑’이란 거짓말아 / 처녀의 가슴에서 피를 뽑는 아귀야 / 눈먼 이의 손길에서 부서져 / 착한 여인들의 한을 지었다 / ‘사랑’이란 거짓말아 … --- p.42 김명순, 「저주」 중에서 나무가 항상 하늘을 향하듯이 /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우리 / 별을 쳐다보면서 걸어갑시다 / 친구보다 / 좀 더 높은 자리에 있어 본댔자 / 또 미운 놈을 혼내 주어 본댔자 / 그까짓 것이 다 무엇입니까 / 술 한 잔만도 못한 / 대수롭잖은 일들입니다 / 발은 땅을 딛고 서 있지만 우리 / 별을 쳐다보면서 걸어갑시다 --- p.102 노천명, 「별을 쳐다보면」 중에서 울 언니 월급 타면 쓸데 많지요 / 병들은 아버지의 약사들이고 / 날마다 나가라는 집 세금 물고 / 무섭게 호령하는 전기세 물고 / 기한을 연기했던 전당물 찾고 / 두 달 거듭 밀려온 월사금 물고 / 안 먹고 살 수 없는 쌀 되나 사면 / 이달 월급 다 써도 모자란다우 --- p.146 박재관, 「울 언니 월급」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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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어로 쉽게 풀어 쓴 근대 여성 문학 〈모던걸 시리즈〉
100년 전, 고단한 현실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목소리를 글에 담은 여성 작가들이 있습니다. 당시 우리 문단은 여성 작가의 글을 정식 문학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그 안에서 여성의 문학은, 아니 여성들은 가부장제에 신음하며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부르짖었죠. 하지만 공고한 남성 중심 문단에서 그 목소리는 비주류가 되었습니다. 100년이 훌쩍 흐른 지금, 그 시절 여성 문학은 여전히 우리의 심연에 잠들어 있습니다. 〈모던걸 시리즈〉를 출간하기 위해 많은 근대 여성 작가의 글을 찾아냈고, 면밀히 살폈습니다. 작품을 선정하면서 현재 출판계의 강력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문학의 본류를 찾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모던걸 시리즈〉에 실린 모든 작품은 편집자가 직접 현대어로 번역했습니다. 원문의 뜻이 훼손되지 않는 선에서 현대의 독자들이 읽는 데 거리감이나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과감하면서도 새로운 번역을 시도했습니다. 원문을 있는 그대로 감상하기를 원하는 고전주의적 독자들에게는 이번 시리즈가 과감함을 넘어 함량 미달의 어떤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고귀한 소수의 문학이기보다 어떤 언어로 담기든 다수의 문학이 이 시대 독자들에게 더 유익하다고 믿습니다. 현대의 시선으로 큐레이션하고 현대의 언어로 담아낸 작품들은 분명히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작지만 긴 여운을 선사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모던’한 시대를 살고 있고 ‘지금 여기’의 여성 모두가 모던걸입니다. ‘모던걸’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형인 키워드입니다. ‘모던걸’이라 불렸던 근대 여성들은 유교적 억압에서의 해방과 표현의 자유,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고, 이 책에 담긴 작품들은 그 흔적입니다. 여성들의 억압에 대한 투쟁의 역사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들이 거창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첫사랑, 애정하는 것, 다정한 시골 풍경, 보고 싶은 엄마 등 정겹고 익숙한 소재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그런 주제조차 여성의 펜 끝으로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시대에 탄생한 작품들이기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으며 그때의 감정들이 현재와 다르지 않음을 느낄 때 우리는 먼 시간을 뛰어넘어 강한 유대감을 느낍니다. 이 시리즈가 여전히 모던을 꿈꾸는 독자에게 기분 좋은 배부름이 되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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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의 저자들은 오늘의 우리가 이 글을 읽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모든 글은 필연 미래를 향해 쓰이고, 모든 독자는 과거의 작가와 만나기 때문에. 그렇기에 우리의 독서는 먼 어제의 모던걸에게 보내는 응답이기도 하다.
근대 문학의 가장 먼 어제로부터 당도해 온 이 글들은 경이롭게도 우리의 오늘을 반영해 내고, 이 글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이런’ 오늘이 만료되고 더 나은 내일이 오기를 바라는 한패가 된다. 따라서 이러한 선언이 가능해진다. 〈모던걸〉을 읽음으로써, 우리 또한 모던걸이 된다. - 박서련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