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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열며
제1장 그가 목 놓아 부르던 고래, 손짓하여 오라고 하던 사슴 ― 암각화와 주술 제2장 신의 기운이 서린 뿔 ― 청동기의 장식무늬 제3장 신명을 몸에 두르고 ― 유목예술 제4장 둥글고 네모지고 깊고 넓게 펼쳐진 새로운 공간 ― 집과 무덤이 보여주는 건축가의 우주 제5장 삶의 풍요를 꿈꾸며 빚은 유려한 선 ― 사발, 접시, 온갖 그릇과 밥 제6장 색을 입히고, 무늬를 넣어 ― 옷과 장신구 제7장 즐겁게, 튼튼하게 ― 놀이와 운동 제8장 생생한 숨소리와 땀방울로 되살아나는 하루 ― 벽화 속의 일상 제9장 정토 ― 벽화 속의 낙원 제10장 해, 달, 별들 사이에 숨은 내 안식처 ― 벽화 속의 수호신, 사신四神 제11장 신선이 아니면 서수라도 ― 마침표 없는 삶을 꿈꾸며 제12장 소박하고 부드럽게, 우아하고 신명나게 ― 고대 한국의 풍경 주·도판목록·참고문헌·찾아보기 총서 ‘知의회랑’을 기획하며 |
암각화는 바위신앙의 한 유형이다. 바위의 신성과 능력을 믿는 인간이 바위에 남긴 저들의 신앙 고백이다. 바위와 나눈 대화가 그림으로 바위에 남아 있는 것이다. 사람은 떠나고, 세월도 흘러 바위도, 그림도 잊혔을 뿐이다. 당연히 먼 훗날 이곳을 찾아 바위그림을 본 이들에겐 낯설고, 어떤 면에서는 기이한 옛사람의 흔적에 불과하다. 암각화를 남긴 사람들과는 생각도, 말도 통하지 않게 되었으니, 이제 어쩔 것인가? 귀하게 여기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아 외면하거나 할 뿐이다.
--- p.14 샤머니즘에서 ‘하늘을 나는 새’는 여전히 중요한 존재다. 몽골을 비롯한 유라시아 북방에서는 근대까지도 샤머니즘이 강한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라마교와 병존하고 있다. ‘새 신앙’ 역시 오보와 같은 솟대 신앙과 함께 남아 있다. 농경사회인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이미 새 신앙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고대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전기의 유물에도 새 형상 장식이 다수 만들어져 이의 문화적 기원이 상당히 오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삼한 시기에 죽은 이를 보내는 장례식에 새 깃털을 쓰는 관습도 고대 한국인에게 새 신앙이 얼마나 강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이해되고 있다. --- p.92 신석기시대의 죽은 자에 대한 의례가 이전과 다른 점은 무덤에 대량의 껴묻거리가 남겨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람이 죽으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지 않는다는 의식의 표현이다. 죽은 자를 위한 세계가 따로 있다는 관념이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았음을 뜻한다. ‘자, 이제 그분은 저세상에서 이 세상에서처럼 살게 될 거야. 그러니 이런 거, 저런 거, 손발 곁에 넣어두어야지. 필요한 거 다 챙겨 드리자.’ --- p.112 삼국시대 한국인의 기본 복식은 저고리와 바지였다. 남자는 저고리와 바지 차림에 상투를 덮는 모자를 머리에 썼고, 여자는 저고리와 바지에 치마를 한 겹 더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여자들은 외출할 때, 이런 옷차림에 두루마기를 더하여 우아함이 돋보이게 하기도 했다. 치마는 주름치마가 기본이었으며 신분과 지위가 높은 귀부인은 색동치마를 입었다. 물론 집 안팎 일에 바쁜 평범한 백성이나 귀족 집 시종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저고리와 바지 차림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게 일과였다. --- p.171 불교가 알려지기 전까지 고구려 사람들에게 저세상이란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는 곳만 다를 뿐 현재와 사실상 같은 세계였다. 큰 강이나 높은 산 같이 두 삶을 나누는 경계는 있어도 이쪽과 저쪽이 알아볼 수 없게 다른 게 아니었다. --- pp.227-228 그런데 6세기 후반 작품인 강서대묘 벽화에서는 진파리1호분, 통구사신총 벽화에 보이던 운기화생적 표현이 사라지고, 화면 배경이 되는 공간을 아예 비워놓는다. 허공을 유영하는 듯이 보이는 사신(四神)만 그린 것이다. 이는 같은 시기 중국의 회화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성과 표현이다. 깊고 높은 여러 봉우리 산 위의 공간에서 두 날개를 활짝 편 암수 주작의 모습에서도 두 발아래 아득한 곳의 연봉(連峯)은 별 다른 의미를 지니지 않는 듯이 보인다. 모든 걸 생략하고 비워놓은 공간이 오히려 깊은 공간감을 주어 사신이 말 그대로 우주적 신수(神獸)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 p.297 문화 전반이 소박한 분위기에서 출발한 까닭일까? 고구려의 막새기와든, 신라의 치미든 틀을 만들며 장식문을 넣던 와공(瓦工)은 나름 험상궂은 얼굴의 괴수며 도깨비, 용을 나타내려 했지만, 그의 손끝이 만들어낸 건 부드럽고 따뜻한 얼굴이다. 짐짓 놀라게 하려 애써도 표정 너머에는 정을 담은 할아버지의 마음이 숨은 그런 얼굴이다. 슬쩍 무섭게 하다가도 바로 미소로 달래주는 그런 얼굴이다. 한국인의 고운 심성이 속에 숨었으니 이런 손길로 만든 틀에서 두렵고 무서운 느낌의 괴수가 튀어나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 p.347 |
네게 넣은 건 기억이다
작은 점 몇 개지만 긴 이야기다 그래, 진지한 교감의 흔적이다 동아시아 역사문화예술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가 쓴 고대 한국인들의 삶의 풍경기 일상의 무늬, 사람의 무늬, 그 인문의 의미를 찾아서 한국 암각화, 고구려 고분벽화를 비롯해, 동아시아 역사문화예술에 관한 밀도 높은 연구를 이어온 전호태 교수(울산대 역사문화학과)의 신작. ‘고대 한국의 풍경’을 주제로 선사시대까지 포함한 우리네 옛사람들의 생활사를 열두 개 장으로 재구성했다. 저자는 고대사회가 남겨둔 여러 자취와 흔적들―유물과 유적 그리고 사료―의 숨은 의미를 기억해내면서 고대 한국인들이 꾸려나가던 거주·취사·음식·화장·복식 등의 생활문화와 생업(일)과 여흥(놀이)의 문화, 나아가 그들의 내세관과 종교문화의 내막까지 차분한 어조로 풀어놓는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고대사회와 문화에 관한 작지만 소중한 일상적 주제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옛날 옛적 그 진솔한 삶의 풍경이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30년 너머의 시간 동안 저자가 몸소 촬영하며 정리해둔 다양한 고대의 유산들을 일별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독서의 즐거움을 누릴 만한 책. 성균관대학교출판부 기획총서 ‘知의회랑’의 스물한 번째 선물이다. 저 바위에 새겨진 교감의 흔적들을 기억하면서 문화유산이란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왔는지, 그것을 무엇에 사용했는지 보여주는 ‘남겨진 기억’이다. 저자는 암각화에서부터 고분벽화까지, 청동검에서부터 금제 왕관과 목걸이까지 그리고 빗살무늬토기에서부터 정겨운 모습의 진묘수(鎭墓獸, 무덤을 지키는 동물 석상)까지, 지금껏 우리에게 전해오는 다채로운 문화유산들을 가지런하게 재정리해놓으면서 그곳에 새겨진 옛사람들의 삶의 흔적들을 차근차근 소환해나간다. 냇물 건너 편평한 바위에 깨알 같이 새겨진 암각화 앞에선 고래사냥을 둘러싸고 펼쳐졌을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생존의 방식을 떠올려보고, 다리도 짧고 뭉툭하며 몸은 통통해 마치 귀여운 곰 인형 같은 백제 무령왕릉의 진묘수 앞에선 무덤 안으로 들어와 해코지하려던 사귀(邪鬼)의 마음조차 녹여버릴 그 짐승만의 미소를 색다르게 풀어낸다. 자연과, 또 어쩌면 현대인들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영혼과 교감하는 고대인들의 방식을 저자는 그렇게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작지만 소중한 일상의 주제들을 이어 붙이면 고대사회는 입체적으로 조감이 되고 저자는 말한다. “타임머신을 타듯 의식상으로나마 옛 시대로 돌아가 눈에 드는 몇 가지라도 기억에 담아 돌아오기를 소망했다. 벽화, 유물, 여러 유적의 형태로 남은 옛 모습에서 한 사회를 조금이라도 입체적으로 다시 그려보려 했다.” 그리하여 고대인들이 살거나 잠든 집터와 무덤에서, 먹거리를 담아두던 온갖 그릇에서, 또 색을 입히고 무늬를 넣어둔 옷과 장신구에서 그들의 일상은 퍼즐처럼 재조합된다. 마치 건축가를 닮은 공간 인식으로부터 그들이 삶과 죽음을 대하는 인식의 퍼즐이 맞춰지고, 그릇의 유려한 선형과 고분벽화들마다 빛을 발하는 여인의 옷맵시로부터 그들의 풍요한 생의 욕구와 감각적인 미감의 퍼즐도 맞춰진다. 여기에 ‘저세상도 이 세상처럼 우아하게!’를 되뇌던 귀족의 여유로운 일상은 생생한 숨소리와 땀방울이 가득하던 시종과 평민의 일상과 극단적인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놓기도 한다. 저자의 바람처럼, 이렇게 작지만 소중한 일상의 주제들이 하나둘 이어 붙여지면서 한국의 고대사회는 입체적으로 조감되기 시작한다. 거주·취사·음식·화장·복식 등의 생활문화와 생업(일)과 여흥(놀이)의 문화, 나아가 그들의 내세관과 종교문화의 조각들까지 제 일상의 구역에 자리 잡음으로써, 고대라는 시절의 인간적 삶의 풍경이 완성되는 것이다. 옛사람들의 삶의 무늬 그 인문의 의미를 찾아서 저자는 이렇게 조성되는 고대 한국의 풍경이야말로 ‘참으로 개성적이며 또한 참으로 보편적이었다’고 적는다. 빗살무늬토기나 청동제 제의용 도구 그리고 진묘수나 수막새의 문양 등으로 보건대 고대인들의 영감과 창작의 질감은 소박하고 부드러웠으며, 비파형동검이나 세형동검 그리고 부뚜막 등으로 보건대 소용되는 삶의 소품들은 더 새롭고 더 쓰임새 있게 발전되어 갔으며, 또 고분벽화나 불상 그리고 황금빛 장신구들로 보건대 그들의 신앙과 예술과 문화는 우아하고 신명나게 영위되었다. 우리네 옛사람들의 삶의 무늬 곳곳에는 이처럼 ‘소박과 유연’, ‘참신과 진보’, ‘우아와 신명’ 등의 인문적 함의가 아로새겨져 있다. 특히 한국 고대문화의 개성과 보편성은 이웃 중국과 일본, 나아가 중근동의 유적, 유물들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확인되는 것이었다(저자는 이를 위한 사진 자료들과 해석도 책 틈틈이 챙겨 보강했다). 환경이 다르면 문화도 달라지지만, 환경과 상호 작용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관념이 어떠냐에 따라 문화의 내용이 바뀌기도 한다. 같은 기후 환경을 겪으면서도 문화유산의 색채와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점이 이 책에서 잘 드러나기를 바라며, 저자는 한국 고대사회가 생산한 것을 제시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회의 유적, 유물들도 충실하게 소개했다. 기억한다, 고로 존재한다 앞서 운을 뗐듯이, 우리는 문화유산이란 ‘남겨진 기억’에 새겨진 사람의 무늬[人文]를 따라 여기까지 왔다. 인간과 생에 관한 본질적 질문 가운데 하나일 ‘나는 어디서 왔을까’에 대한 해답도 바로 이 남겨진 기억들 속에 새겨져 있을 터이다. 더 이상 인류의 실존과는 상관없을 듯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아득한 시간층을 헤쳐 들어가 옛사람들의 흔적을 회고해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저자는 저 유명한 암각화가 그려진 반구대를 지나 산자락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냇가에 기울여놓은 병풍처럼 서 있는 천전리 각석과 맞닥뜨린다. 그 각석 큰 바위에는 기하문으로 불리는 뜻 모를 무늬가 가득하다. 그러나 정작 내를 건너 바위 앞에 이르러 바짝 가까이 가면, 기하문 말고도 슬쩍슬쩍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얕게 쪼아 새긴 사람과 짐승, 철필로 그어 그린 사람과 말의 행렬, 긋고 새겨서 남긴 한자 명문 같은 게 기하문이 새겨지지 않은 곳에 있다. 그간 누적되어온 시간의 무늬가 이런 모습일까. 저자는 이곳에다 짧은 송시(頌詩) 한 구절을 덧붙인다. “네게 넣은 건/ 기억이다/ 작은 점 몇 개지만/ 긴 이야기다/ 그저 생각 없이/ 북북 그은 듯 보여도/ 진지한 교감의 흔적이다.” 예부터 그렇게 기억하고 교감함으로, 인간은 존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