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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일제 강점기 건축은 당시 시대 상황과 어떻게 맞물려 있을까?
1부. 일본의 침략과 조선의 궁궐 1. 20세기 일본 제국주의의 특징 유럽 식민지 vs 일본 식민지 유럽을 모방한 일본식 건축 일본 근린 제국주의의 한양 지우기 군사 제국주의 2. 산업 박람회장이 된 경복궁 경복궁 중건과 아관파천 경복궁에서 개최된 조선 물산 공진회 흥례문을 헐어내고 총독부를 짓다 다시 시민의 품으로 3. 미술관이 된 덕수궁 경운궁 중건과 한성 개조 사업 우리나라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궁전 덕수궁 앞에 들어선 경성부 청사 미술관이 된 덕수궁 서울도서관이 된 경성부 청사 4. 동물원이 된 창경궁 순종 즉위와 창덕궁 창경궁은 왜 ‘창경원’이 되었나? 제관 양식으로 지은 ‘이왕가 박물관’ 창덕궁-조선의 역대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공간 2부. 민족성을 말살하는 일제의 건축물 5. 함춘원과 성균관의 수난 창경궁 후원에 세워진 대한의원 성균관의 교육 기능을 없애다 일본의 여섯 번째 제국대학, 경성제대 대학의 거리가 된 봄의 정원 6. 민족성을 말살하는 조선 신궁 일제의 유화 정치와 신궁 건립 조선 신궁과 경성 신사 전국 거점 도시에 들어선 일본 신사 전시 체제기 호국 신사의 등장 7. 이토 히로부미 추모 사찰, 박문사 별기군 해체 후 들어선 경성운동장 장충단의 이토 히로부미 추모 사찰 의류 디자인 중심지 동대문 3부. 건축으로 보는 일제 잔재 청산 8. 종로에서 명동으로 바뀐 상권 선혜청과 육의전 은목전이 세운 은행, 광통관 식민지 경제의 두 축-은행과 백화점 해방 후 찾아온 변화 9. 경제 수탈의 출발지, 경성역 산업 혁명과 식민 지배의 상징-철도 군사 기지의 도시, 용산의 성장 도시 구조를 바꾼 식민 지배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철도 중심지-경성역 금단의 땅에서 시민의 공원으로 10. 해방 후 일제 건축의 청산 한국 재벌의 일제 잔재 독재 정권의 ‘일본 따라 하기’ 70여 년이 걸린 일제 잔재 청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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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건축물 중 대표적인 것이 경성역사 (현 문화역 서울284), 조선은행(현 한국은행 화폐 박물관) 등인데, 17~18세기 유럽에서나 봄 직한 형태로 고풍스럽습니다. 예술 사조에서는 이미 모더니즘이 유행하던 20세기 초반이었지만, 건축에서는 때아닌 복고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유럽을 모방하던 일본은 시대에 뒤떨어진 네오 르네상스, 네오 바로크 양식을 답습했고 그것이 한국에 그대로 이식되었기 때문입니다.
--------------------------------------------------------------------------------------------- 1945년 해방이 되어 일제는 물러갔지만 총독부 건물은 대한민국의 중앙 관청인 중앙청 건물로 사용되었습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서울의 건물은 대부분 파괴되었고 중앙 관청을 새로 지을 여력이 없어 기존 총독부 건물을 수리하여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1950~80년대 초중반까지 총독부 건물은 ‘중앙청’으로 불리면서 정부 중앙 관청 역할을 했습니다. --------------------------------------------------------------------------------------------- 평리원을 헐고 지은 경성재판소는 해방 후 대법원으로 사용되다가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한 뒤 서울 시립 미술관이 되었습니다. 독립공원 자리에 있던 서대문 형무소는 해방 후에도 교도소로 사용되다가 1987년 교도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고 지금은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이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독립투사를 투옥했던 시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 창경궁에는 뜰과 연못에 온통 꽃나무가 심어진 가운데 박물관, 동물원, 식물원 등 유럽 제국주의 시절에 성행하던 시설이 모두 들어섰습니다. 이름조차 ‘창경원’으로 바꾸어 버리면서 조선의 궁궐을 한낱 놀이공원으로 만들었습니다. 1924년부터는 벚꽃이 피는 4월이면 창경궁 곳곳에 600여 개의 전등을 달고 밤에도 벚꽃 놀이를 즐기게 했습니다. --------------------------------------------------------------------------------------------- 식민 통치는 크게 정치와 경제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경제는 정치권력과 달리 민간 자본에 의해 움직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제압하기 위해 그것을 대체할 새로운 시설을 인근에 둔다는 점에서 정치권력과 똑같은 행태를 취했습니다. 일제는 종로에 있던 육의전과 시전을 대체할 백화점을 명동에 세웠고, 은목전 상인들이 은행을 세우자 이를 제압하기 위해 조선은행을 세웠습니다. --------------------------------------------------------------------------------------------- 식민 지배는 그 나라의 지리적 구조까지도 바꾸어 놓습니다. 경부선(경상도), 호남선(전라도), 경의선(평안도), 경원선(함경도)의 네 철도는 한반도를 X 자형으로 가로질렀습니다. 북쪽을 연결하는 경의선과 경원선의 시발역은 용산이었고, 남쪽을 연결하는 경부선과 호남선의 시발역은 경성역이었습니다. 북쪽은 주로 군사 수송 목적이었고, 남쪽은 물자 수탈이 목적이었습니다. --------------------------------------------------------------------------------------------- 조선총독부는 중앙청이 되었고, 경성부 청사는 서울시 청사가 되었습니다. 경성재판소는 법원이 되었고, 서대문형무소는 교도소가 되는 등 일제가 만들어 놓은 건물은 해방 후에도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해방 후 한국 전쟁이 일어났고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 새로 짓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략 1990~2000년대 이후부터 새 건물로 이전하기 시작했고, 기존 건물들은 대개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 18~19세기 유럽에서 역사주의 건축이 등장하여 네오 르네상스, 네오 바로크가 유행했고 일본도 이를 모방하여 조선총독부나 조선은행 등을 지었습니다. 한편 유럽 양식을 일본식으로 개조한 것이 제관 양식, 흥아 양식입니다. 몸체는 철근 콘크리트에 지붕만 일본식으로 얹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모방한 양식이 바로 콘크리트 벽체에 한옥 지붕을 얹는 이른바 ‘박정희 스타일’ 혹은 ‘육영수 한옥’입니다. 1960~70년대 우리나라에서만 유행한 독특한 양식입니다. --------------------------------------------------------------------------------------------- 전두환 정권 시기에 지은 독립기념관을 끝으로, 일본 제관 양식의 한국식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박정희 스타일’ 한옥이 더는 지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시작은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용산 국립 중앙박물관입니다. 지나치게 현대적인 모습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때부터 우리 건축이 비로소 제관 양식 혹은 ‘박정희 스타일’을 탈피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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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민족성을 말살하려 한 일제의 건축물 이야기
왜 경복궁 앞에 조선총독부를 지었나? 왜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었나? 왜 덕수궁을 미술관으로 만들었나? 왜 남산에 신궁을 지었나? 왜 성균관 앞에 경성제국대학을 세웠나? 왜 장충단에 이토 히로부미의 추모 사찰을 지었나? 이 책은 일제가 한국인의 민족성을 말살하려고 훼손한 경복궁, 창경궁, 덕수궁 등 조선의 궁궐들과 식민지 지배를 위해 지은 조선총독부, 조선 신궁, 경성제국대학 등 열 가지 건축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해방 이후 일제가 지은 건축물을 청산하는 과정을 청소년 눈높이에서 쉽게 알려 준다. 일제는 조선의 궁궐들 대부분을 훼손했는데, 경복궁은 흥례문과 전각들을 허물고 조선총독부를 지었고, 덕수궁은 미술관으로,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만들었다. 태조 이성계와 단군 왕검을 모시는 국사당이 있는 남산에는 일본 신과 메이지 일왕을 기리는 조선 신궁을 지었고, 조선의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은 교육 기능을 없애고 그 앞에 경성제국대학을 만들었다. 고종이 군인들의 희생을 기리려고 만든 장충단에는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당을 지었다. 대한제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환구단을 허물고 그 자리에 일본인이 묵는 조선 철도호텔을 지었고, 대한제국의 최초의 근대적 사법 시설인 평리원을 허물고 그 자리에 경성재판소를, 독립문 근처 독립공원 자리에는 서대문 형무소를 지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던 투사들은 경성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감금되었다. 한편 일제는 한국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며 중국과 만주로 뻗어 나가기 위한 병참 기지로 만들었다. 일본에 대한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전국에 일본 왕들을 신격화하고 모시는 신사를 세우고 한국인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당시 일제는 일본은 물론 한국에도 관청이나 학교, 백화점, 호텔 등을 17~18세기 유럽에서나 봄 직한 형태로 지었다. ‘탈아입구(脫亞入歐)’라 하여 아시아에서 벗어나 유럽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의식주 생활 전반에서 빠르게 유럽식을 받아들였고, 이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일제가 훼손한 궁궐들을 지금도 복원하고 있으며, 일제가 지은 조선총독부는 해방 이후 중앙청과 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50년 만에 철거했다. 일제의 주요 건축물 중 철거되지 않고 남은 건물들은 박물관이나 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건축으로 살펴본 이 책은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건축이 당시 시대 상황과 어떻게 맞물려 작용했는지 알려 주고 있다. 건축가가 되고 싶거나 건축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청소년들에게 건축을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