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시인의 말
1부 갠지스 갠지스 갠지스 갠지스 아침을 읽다 변태變態 붉은 무덤 달팽이와 목련 말 한 마리가 술집에 들어왔다 낯선 하루 그림자 붉은 여우는 꼬리를 감추고 어슬렁거린다 소문 스며드는 것과 사라지는 것 와인 한잔 할까 오늘은 그냥 걷자 블랙아웃 피노누아 2부 고양이는 이발소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누구 인가요 총알받이 피리 부는 소년 멀리 닿고 싶어 게이샤 커피 발에도 눈이 있다면 고양이는 이발소를 바라보고 있다 발톱 손, 끝, 달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하는지 나는 아네 수직의 파문 시지프스 에스메랄다와 춤을 달팽이가 데려온 저녁 딱 좋은 3부 그러므로 별일이 아니길 거미에게 월세라도 내야 할까 잠자리 잠자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유리에게 오후의 고양이 모아나 모아나 침묵 자라나는 것들에 대하여 너의 배후 I can do it 저녁이라는 이름 듄 마주한 사랑 그러므로 별일이 아니길 하루살이도 아니면서 하루살이처럼 4부 한여름 밤의 꿈 도토리 터지는 소리가 상냥해질 때 가을에 시가 되는 순서 볕의 터 멈추게 하는 것들 아무도 몰랐다 개는 달마처럼 붉은 둥지 프리즘 한여름 밤의 꿈 붕어 우렁 가슴의 노래 샤스 스플린 다정도 병인 양 하여 그날 당신은 장례식장에 있었다 語順에 따라 해설 시적 매혹과 예감 | 김춘식(문학평론가 · 동국대 교수) |
|
그리고 어디선가 어디선가가 되어 주었다
하늘을 비행하던 알바트로스의 착지가 불안하였다 평행을 이루지 못한 너의 날갯짓에 왕따나무 아래 웅크리고 있는 작은 새가 소스라친다 소리 끝에 매달린 마음이 헐렁하다 고픔은 또 다른 고픔을 불러오는 정령이라는 것을 살갗이 송두리째 벗겨진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일을 잠언이라고 칭하는 이들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먹히는 것은 살아있다는 또 다른 증거 불온함을 품어보는 시각이 때론 밤으로 불려졌다 불현듯 너의 날개 속 어딘가에 마음껏 휘둘러도 되는 지팡이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잠겨 있는 자물쇠를 열어젖혀 보는 노동과 수고로움이 지나가고 난 뒷날에는 서툴게 숨겨 온 서글픈 이야기를 꺼내놓기로 한다 새로울 것 없는 새 길이 먼 뒤에서 도착하리라는. ---「너의 배후」중에서 이국의 작은 빵집 안에서 만난 청년의 눈 속으로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용이 좀 쓸쓸했던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아침을 읽다」중에서 늙은 새들은 밤에 어디로 가는 걸까 이빨 뽑힌 어둠이 연기처럼 풀어지고 있다 그림자의 혀가 붉게 매달려 있다 말라비틀어진 귤의 껍질처럼 변한 발목들이 춤을 춘다 손톱 밑으로 파고드는 노란 흔적을 화분에 심는다 한 줌의 물을 부어준다 발바닥을 타고 오른다 강이 맨발로 다가오는 새벽, 커다란 새의 휜 그림자가 허우적거린다 낯선 절규 같은, 문득 아침이 열리고, 사랑을 희구하다 죽어가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쌀룩씰룩 꽃게 걸음이 되어 옆으로 걷고 싶었던 날들 중 하루를 보고 돌아왔다. ---「갠지스 갠지스」중에서 다른 색깔을 너에게 입힌다 물을 주지 않아도 기다랗게 자라나는 가을빛 같은 너는 나의 상처를 집어 올린다 아물지 않은 가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내 것이 아닌 것들이 나를 잠식해간다 단풍잎처럼 익어가는 머리카락이 무거워 뭉툭하게 잘랐다 머릿속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것들 자르고 잘라 내어도 길어 나오는 것들 알몸 내어주는 담장에 기대어 살다가 때를 알고 사그라지는 담쟁이넝쿨처럼 나에게서 잘려나간 것들 나를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자르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자르기로 했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것은 모르는 곳에서 빌려온 것들 뿐 그 중 딱 하나만이라도 내 것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잘라도 다시 자라나는 너를 처음의 그때만큼 자르기로 했다. ---「자라는 것들에 대하여」중에서 |
|
시인의 말
하이힐 신고 종일 걸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맨발로 땅을 딛는 황홀함을. |
|
조세핀 시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은 대체로 두 가지 경향의 작품군으로 분류가 가능한 듯하다. 하나는 시창작에 대한 자의식과 열망이 상당히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압축적이면서도 시적 수사의 완결성이 높은 작품군이다. 시쓰기의 자의식이 표출되는 작품은 그 자체로 메타적이고 그래서 비유적이거나 알레고리적인 측면을 많이 보인다. 반면, 시적 주체의 열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표면화된 시적 화자의 기능이 축소되고 화자와 시인의 목소리가 잘 구분이 되지 않으면서 ‘너’로 호명되거나 ‘대상화된 사물’이 시적 자아를 반영하는 ‘거울’ 같은 것으로 기능한다. 두 번째 유형인 압축적인 시적 표현과 절제된 표현을 보여주는 작품들은 이 점에서 첫 번째 유형의 작품이 지닌 ‘자기애’적 요소가 축소되는 만큼 시적 완결성은 더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 김춘식 (문학평론가 · 동국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