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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 기획시인선

책소개

목차

1부 여자

여자
여름방학
활자 중독자
연쇄살인범의 아내
공중목욕탕
단추 고르기
언덕길 교차
스텔라 매카트니
전 애인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을 때
의관공포증
하얀 원피스를 입고
강의실 풍경
무이파

2부 나팔꽃 안

나팔꽃 안

캠프파이어의 시
봄 아침?2
동학사 가는 길
따뜻한 사랑의 노래를 써 볼까
사랑에 필요한 것
열흘
2016년 8월 12일 오후 3시
결별
여름 독감
애정
내일 아침은 영하
붉은 장미
눈길
얼마나 다행인가
무릎잠

3부 귀


허름
읽었구나!
문답
납작
아, 있구나
고기
2월, 흰다리새우
인터넷광고
고기 한 칼
부품
함께
늙은 개
강아지 똥
대문
길고양이

4부 땅이

땅이
고통의 철학
나나메로
구순과 팔순

신부 친구
만개
코코낱 기름
꽃무늬
쉰다
시중 들다
열대야
달팽이
물걸레질

유쾌하고 따스한 여성주의 | 휘민(시인)

저자 소개 1

19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불이 있는 몇 개의 풍경』 『사랑의 예감』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내가 암늑대라면』 『맛을 보다』 『읽었구나!』를 냈으며 김종철문학상, 풀꽃문학상, 애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영상대학교 교수로 재직했으며 시힘, 화요문학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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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01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10g | 125*188*10mm
ISBN13
9791186557747

책 속으로

여자

양잿물로 삶아
햇볕에 잘 말린 란닝구처럼
하얗고 보송한 여자

가슴팍에 코를 묻으면
햇빛 냄새가 나는 여자
머리칼에 뺨을 대면
바람 냄새가 나는 여자
잘 웃는 여자

낡은 메리야스처럼
주변 습기를 금방 흡수해
쥐어짜기만 하면 물이 흐르는 여자
잘 우는 여자

편서풍에 날아간 여자
빠른 시냇물에 둥둥 떠 급히 흘러간 여자

오래 입고 여러 번 빨아 얇아진
그 여자

지금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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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매카트니
*비틀즈의 멤버인 폴 매카트니의 딸. 영국을 대표하는 의상 디자이너 중 하나.

스텔라, 느슨한 베이지색 가디건을 만들어줘요
몸을 옥죄는 너무 작은 옷 말고요
여자의 몸은 볼록 솟은 가슴
잘록한 허리
도톰한 아랫배
그대로 아름다워요

스텔라, 거품 같은 면 레이스가 달린
하얗고 긴 면셔츠를 지어 줘요
바람이 불면 꽃무늬 치마 위로
따스하고 보송한 셔츠 자락이 펄럭이게요

슬픈 일이 있어도
험한 일이 있어도
여자에게서
몇 번 빨아 얇아진 드레스를 빼앗을 수는 없어요
드레스는 눈물을 먹어요
다시 말라요

스텔라, 코코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패션의 혁명을 일으킨 코코 샤넬.
를 기억해요
여자가 지식이 많으면 마녀로 화형당하던 시절과
여자가 바지를 입으면 체포당하던 시절을 갓 지나
여자들에게 바지를 지어 입히고
남자들의 세상 가운데 당당하게 서게 한,
우리는 코코를 기억해요

스텔라,
여자를 편안하게
여자를 아름답게 해주는
옷을 지어요

옷은 우리의 족쇄가 아니라
자유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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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품

한 사람의 기증으로 100여 명에게
새 생명을 불어넣는 숭고한 생명나눔,
바로 인체조직기증입니다
―KFTD 한국인체조직기증재단

나는 내 몸이 부품들의 집합이라는 것을 몰랐다
다치기 전까지는

누군가 내 부품을 탐낸다는 것도 몰랐다
치료비가 얼마나 비싼지 알게 되기까지는

내 몸은
피부, 각막, 치아, 관절, 장기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분해하면 어마어마하게 비싼 상품

하지만 그 부품들의 집합 위에
다소곳이 도사리고 앉은 나의 영혼

당신들도 그것만은 분해할 수 없다
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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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었구나!

혜린이니 다혜니 하루에도 서너 건씩
비아그라 성인 음란광고가 이메일에 쌓여서
스팸 신고 하다 하다 못해
5년 만에 답장을 했다

“저는 육십이 다 된 여자예요. 정력제 광고는 그만해 주세요.”

그 뒤, 이메일 제목이 달라졌다
비아그라 / 여성흥분약품 프리미엄 성인쇼핑몰 해외직수입 정품

아직 ‘여성흥분약품’이 남았구나, 그렇다면
“육십이 넘었다니까요.”
이렇게 다시 답장을 해야 하나, 하다가

그나저나 신통방통하다
내 답장을 읽었구나!

누굴까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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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똥

가만히 있었다
문에 기대어
밥도 먹지 않고
물도 먹지 않고

―아가 힘내, 사랑해
했더니
귀가 쫑긋, 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학교 다녀오니
굳어 있었다

15년 8개월 살고
강아지 하늘나라 가고

마당에 강아지 똥 두 개가 남았다
화단에, 밤톨만 한 거
벽 옆에, 은행알만 한 거

며칠 지나니 색깔이 까매졌다

엄마가 가만히 보시며
―그립구나
하셨다

그래서 두 달이 지난 오늘도
치우지 않는다

--- 본문 중에서

추천평

여성주의라는 큰 줄기를 붙잡고 있지만 양애경 시인은 궁극적으로 대결이 아니라 화해를, 화해를 넘어 진정한 반려를 추구한다. 또한 시인이 보여준 따뜻한 여성주의는 인간중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유와도 맞닿아 있다. 자기 성찰적 목소리가 두드러진 양애경 시인의 시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여성주의가 추구해야 할 길과 생명 존중의 길이 다르지 않다고. 책장을 덮고 나니 시인의 목소리가 더 생생하게 들린다. 시인이 묻는다. 당신은 생명과 함께 하는 사람인가요? - 휘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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