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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죽은 연인이 내 오른쪽 뺨을 만지고 망고는 망보는 랭보 죽은 연인이 내 오른쪽 뺨을 만지고 트라이앵글 네, 기린입니다 픽토그램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북극여우 역방향으로 앉아 있던 겨울엔 귤을 드세요 임플란트 운동장 쥐어짜기 안녕, 아프리카 손목들 2부 이별을 위한 미장센 소매 속의 새 몽자류夢字類 소설에서 나는 비수면 내시경 셔틀콕 도그이어 이별을 위한 미장센 음성 녹음은 1번, 청취는 2번 헤드폰 세 시의 키스 엔딩 크레딧 사과는 잘해요 날짜변경선 실금 3부 그림자를 분양해 드립니다 3인칭 의자 그릇 그림자를 분양해 드립니다 구름에 관한 여론조사 해바라기 한 움큼 포스트잇 A4, 푸른 사각의 숲에 갇히다 접시의 감정 사랑을 위한 레시피 칫솔질은 이렇게 인셉션(Inception) 센 베노 패러독스 4부 당신과 파노라마 선루프 마에스트로 당신과 파노라마 선루프 층계참 자전自轉 언제 밥 한번 먹자던 네케네케 첫눈 나진과 파투 삼학소주 구지가를 부르는 밤 나비, 우화를 꿈꾸다 펜혹 해설 재현되지 않는 것들의 실상 | 오민석(문학평론가 · 단국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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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몸이 방에서 빠져나간 후
현관에서 문을 쾅 닫고 나오는 순간 혼자 집에 남은 그림자를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그림자는 풀죽은 눈빛으로 현관에 쪼그려 앉아 남겨둔 신발 한 짝 물고 방으로 돌아가 낑낑거림을 방 안 곳곳에 심겠지요 몸이 빠져나간 후 냄새만 남은 당신의 옷을 킁킁거립니다 컹컹 짖어 본 기억마저 아득한 그림자의 젖은 눈망울 누군가 현관문에 전단지를 붙이고 가도 그림자는 벽지의 곰팡이를 핥으며 늙어갑니다 뒹구는 화장지만 몸을 늘리는 빈방에서 제 살점 물어뜯는 그림자를 생각해본 적 있나요 몸에서 연기 같은 것이 빠져나갑니다 천장에 고인 물이 벽에 스며들듯 그림자는 벽 속으로 기어들어 가지요 아직 솜털 보송하고 물어뜯을 이빨마저 덜 자란 그림자 한 마리, 어때요 분양해 드릴까요 ---「그림자를 분양해 드립니다」중에서 너는 어제를 살고 나는 오늘을 살아 사모아나 피지, 통가에 핀 꽃잎들은 이제 막 적도의 하루를 지나고 있어 내가 사랑한 것들은 왜 모두 어제가 되어버리는지 눈물이 나오기도 전에 울고 있는 노을 동쪽은 서쪽보다 파릇하고 가랑비 같은 슬픔이 서투르게 자라나면서 늙어가는데 고래는 뇌의 절반만 잠이 든대 나머지 절반은 눈 감고 산 어제를 보내기 위해 지지직거리며 파도의 주파수를 모으는 거야 잠 못 든 시간이 이렇게 지나갈 때마다 우리도 이제 가상의 선을 긋자 세로로 줄을 치며 내려오는 거미처럼 늘 등을 보인 채 앞서 걷는 생각들을 위해 눈 감고 보폭을 헤아리며 걷다 보면 이별은 발꿈치부터 서서히 완성될 거야 어젯밤의 울음과 오늘의 울음은 분명 다를 테지만 아침은 동쪽에서도 살고 서쪽에서도 산다는 거 당신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가 내일의 첫 입술이 되고 어제 잃어버렸던 립스틱이 호주머니에서 만져지고 바뀐 핸드폰 번호로 문자가 잘못 날아온다 ---「날짜변경선」중에서 잡을 곳이 단 하나뿐인 세계를 안다는 듯이 잡지 못하면 세상을 영영 놓치고 만다는 듯이 기울어진 방과 방에 소년과 소녀들이 울고 유리창으로 바닷물이 스며들고 있어요 나처럼 입술 떠는 친구를 본다는 게 더 두려운 일이죠 그래서 달리는 말이 옆을 못 보게 가리나 봐요 손 뻗으면 녹슨 문이 만져지고 그 문도 툭, 떨어져 뒤섞이는 손가락들 놓쳐버린 네 손목이 너무 하얬고 따뜻했다고 튀어나온 양쪽 무릎을 나란히 모을 때 간절한 기도가 만들어지죠 건너편에 쪼그려 앉은 친구가 보이는 문 앞에서는 동그랗게 슬픔의 무게가 만들어져요 출구 없는 눈빛들이 그림자를 깔고 앉으면 ---「손목들」중에서 잊을 수 있겠다는 말의 저편에는 눈이 쌓여 있겠다 너에게 한 말은 내게 돌아올 줄 모르기에 땅에 하얗게 얼어붙은 시간들만 공중으로 솟아오르지 손으로 감싸 쥔 새가 조금씩 날개를 퍼덕거려 깃털들을 높이 치켜들면 하늘로 날려 보낸 새 한 마리의 울음에 반쯤 접힌 허공이 몸을 열어, 날아가는 새에게는 그림자는 없지 깃털이 건너온 대기는 잠시 새 발목처럼 가늘어지고 뭉툭한 부리는 네게 가닿기 전에 떨어져, 슬픔조차 그리 멀리 갈 수 있는 건 아닌지 비틀대는 시간으로 툭 주저앉는다 라켓은 늘 기다리는 일밖에 할 줄 모른다고 너는 말하겠지, 어쩌다 우리는 목련이 피던 날에 마주 보고 있었을까 막 피려고 하던 날의 공이 거기 나무에 돋아나고 있었어 아픔을 미처 알지 못하던 봄, 아직 태어나지 못한 우리의 말들은 머리 위에서만 날아다녔지 몸에서 돋아나는 새의 그림자를 받아들이기 위해 여름과 가을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공은 없었지 공과 함께 딸려간 허공이 다시 몰려왔어, 오직 너와 내가 이 세상에서 끝나지 않는 랠리를 했지 랠리가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잘게 조각난 시간만 남고 우리는 공을 주웠어 나는 손목을 잃고도 아직 라켓만을 붙잡고 있나 봐 입김이 만든 새 한 마리가 기억이라고, 스트링 속으로 흩어진 허무한 공중이 사랑이라고 ---「셔틀콕」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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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형의 시편은 재치 있는 유머가 술잔처럼 넘치지만 그 속에는 묘한 아픔이 날계란처럼 동그랗게 둥지를 틀고 있다. 문명의 횡포에 시달리는 생명체들의 애잔한 슬픔도 깃들어 있다. 남도의 유장한 가락이 느껴지는가 하면 고전의 향취가 끼치기도 한다. 바닷바람에 배어 있는 이상야릇한 설렘이 시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는데, 분명한 것은 김수형 시인의 시가 ‘지역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남쪽 항구도시를 떠나서 전국 방방곡곡으로, 때로는 이 좁은 반도를 떠나 태평양과 인도양과 대서양 저 먼 바닷길로 항해를 떠나기도 한다. 시인의 시야는 지평선과 수평선 저 너머로 틔어 있다. 박사학위를 2개나 갖고 있는 시인이 언제 논문을 쓰고 또 시를 썼는지 불가사의한 일이다. 첫 시집에는 설익은 시가 들어 있게 마련인데 능수능란하여 나는 빙그레 미소 짓는다.
─ 이승하(시인 · 중앙대 교수) ■ 시인의 말 이해는 오해의 뒷면이라는 생각 쏟아지는 생의 가설 속에서 시의 발은 축축하다. 번개가 칠 때면 두 쪽으로 쪼개져서 잠시 환해지는 세계 반성을 모르는 빗소리와 악몽을 꾼 새벽마다 힘이 되어주던 진통제 몇 알 같은 시, 한 계절 앓으며 피워낸 통증을 이 시집에 비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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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형의 시를 읽으면 슬픔에도 중량과 부피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우리의 삶은 ‘아니’와 ‘아직’의 연속이다. 벗어날수록 더 갇히는 구속감을 피할 수 없고, 다가갈수록 누군가로부터 우리는 끊임없이 멀어지고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손에 쥐면 그것은 새처럼 날아가거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에서 사라지고 없다. 지상에는 행복의 개수만큼이나 똑같은 슬픔이 존재한다. 전쟁터가 되어버린 우크라이나에 핀 해바라기처럼 아니 그 해바라기의 씨앗만큼이나 많은 수의 고통이 우리의 삶에 깃들어 있다. 김수형 시인은 우리 모두가 일상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이 삶의 아픔에 신음하는 대신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고, 그것을 아름다운 언어로 재현해 내고 있다. 이 아름다움과 고통의 아이러니가 슬픔에 두께와 무게를 만들어 낸다. - 황정산 (시인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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