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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툰드라의 아침 12 오후의 불일치 14 가을은 언제나 뜨겁다 16 아버지가 되어 18 대릉원 20 가재울 22 몸을 따라 24 ‘막내’라고 부르는 여전사 26 내 동기 조영창 28 보이지 않는 시간 30 유예된 것들 32 날마다 기적을 34 파주행 막차 36 2부 이곳에서, 우리는 38 한티성지에서 40 내 마음의 십자가 42 스테파노를 생각하며 44 밥 한 톨 46 바람막이가 되어 48 종묘를 지나며 50 예장공원 51 기린에 대하여 52 백담계곡 54 힐링 여행 56 열 권의 책방 58 다시 청량리역에서 60 작은 일에 슬픔이 없는 하느님께 62 3부 수만의 바람 -명동밥집1 64 매미 -명동밥집2 66 식판조 -명동밥집3 68 퇴식구 -명동밥집4 70 칼갈이 -명동밥집5 72 시니컬 설거지 -명동밥집6 74 용기면, 용기 -명동밥집7 76 주방 공사 -명동밥집8 78 기우뚱거리는 하루 -명동밥집9 80 비둘기가 사라졌다 -명동밥집10 82 밥집의 성탄절 -명동밥집11 84 한통속 -명동밥집12 86 스물두 번째 편지 -명동밥집13 88 두 그릇 -명동밥집14 90 4부 다시, 파리로 94 말없이, 둥글게 96 몽파르나스 공동묘지 98 아비뇽에서 100 마르세유 대성당 102 퐁텐블로, 그리고 파리로 104 오베르 쉬르 우아즈 106 시의 날 108 다시, 공항으로 109 해설 신과 밥―인간다움의 조건│조대한 (문학평론가) |
김석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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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아침
네네츠 족의 순록 썰매가 설원을 질주할 때 영하 60도의 툰드라가 햇살을 받을 때 싸늘한 하늘이 귀때기에 내려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무엇을 먹느냐 차갑게 질문할 때 가도 가도 끝없는 눈밭 위를 가도 가도 알 수 없는 햇빛 속을 저 끝에는 수백만 순록이 있음을 믿고 저 끝에는 눈부신 금빛 태양이 있음을 믿고 언 땅을 파먹는 순록과 그것을 바라보는 니콜라이 빌카의 시뻘건 얼굴이 아무렇지 않게 콧김을 나눌 때 칼을 들어 순록의 심장을 꺼내 뜨거운 핏기 느끼며 언 하늘을 우러를 때 시커먼 움막 어슬렁거리며 순록 무리의 뿔들이 모두 맨땅을 파헤칠 때 그때 --- 「툰드라의 아침」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경계를 허무는 알 수 없는 차가운 안개 속으로 이 가을 하늘이 쏟아진 듯 분자 운동의 싸늘한 필연성이 스치듯 스미듯 물밀듯 마을을 가리고 도로를 가리고 창문을 가리고 이미 떠난 사람들과 이제 떠날 사람들의 경계를 지우는 심연 속으로 침묵 속으로 나는 손을 닦고 얼굴을 씻고 보이지 않는 하늘 보이지 않는 시간 속으로 --- 「보이지 않는 시간」 신부님은 전날 어쩌다 시작해서 이젠 일과가 되었다며 자신과 저들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두세 시간씩 앉아서 배가 터져라 먹어대는 손님들과의 동질감을 표하신 바 오늘 끼니를 때우고 언제 다시 먹을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다시는 배고프지 않도록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식판조는 밥과 반찬을 나르고 또 나르고 식판조의 기쁨은 넘치는 식객들이 밥과 청국장과 김치와 부추무침과 무채와 계란프라이를 후다닥 후다닥 먹어치우는 것이며 그때를 만나면 식판조는 발바닥이 부리나케 음식을 나르며 땀 흘리며 숨을 몰아쉬며 컥컥대며 지치고 지쳐 제발 손님이 줄어들기를 끊어지기를 바라고 바라게 된다는 것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그러니까 식판조는 더 바빠져선 안 된다는 것을 아예 없어져도 된다는 것을 차라리 밥집은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을 --- 「식판조―명동밥집 3」 |
시인의 말
홀로 내 마음에 간절한 기도 |
다채로운 방식으로 독해 가능한 김재홍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기린으로 떠난 사람』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테마 중 하나는 ‘밥’이다. “우리는 밥으로 살고/ 밥으로 죽고/ 밥이 되어 떠난다”(「한통속―명동밥집 12」)고 되뇌는 시인은 누구도 크게 의심하지 않았을 “배고프면 죽는다는 사실”과 “못 먹으면 죽는다는 사실”(「밥 한 톨」)들을 계속 붙들고 고민과 사유를 이어 나간다. 밥을 먹는 일, 다시 말해 밥을 먹어야 하는 존재로 태어난 일은 그 자체로 이 시집 속의 주요한 시적 의제이자 질문이 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시집의 3부 전체를 할애하고 있는 밥집에 관한 연작시이다. 1번부터 14번까지 이어진 연작시의 첫 번째 작품 「수만의 바람―명동밥집 1」의 서두는 “밥집에 와서 밥을 먹지 않는다”는 흥미로운 문장으로 시작된다. 밥, 김치, 미역국, 닭고기가 들어간 카레 등 여러 음식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정작 시적 화자가 주목하는 것은 음식물의 흔적이 묻은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고춧가루 새빨간 스테인리스 종기”이다. 수많은 인파가 지나간 뒤 “발바닥이 아려오는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밥을 먹는다”는 진술로 미루어보건대 아마도 화자는 사람들에게 먼저 밥을 제공하는 일을 도맡고 있는 듯 보인다. - 조대한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