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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1부 나는 그 흔들림의 어디쯤을 찾으려다 파충강에서 I 12 파충강에서 II 14 습기의 기울기 17 녹빛 음절 19 부분적 복원실 21 꿩의 바람꽃 I 22 꿩의 바람꽃 II 23 내가 붙잡으려 했던 풀잎 24 앞으로, 앞으로 27 2부 숨죽인 빛, 내 안에서 아직도 달린다 디셈버 시드니 32 데스파시토 33 근대의 시기적절 35 귀를 여는 저녁 37 솜털 벌레의 길 39 죽변에서 온 언니 42 나의 근대성 44 흰 어둠의 노래 46 마이너스 계단 48 잠수함 50 막 사는 사람 52 마마 개미는 53 우리 안에 바다가 있다는 설 55 3부 내 안의 검고 푸른 구조들 감자가 썩어가는 계절 60 타임스 스퀘어 62 야구장에서 키스하는 먼로와 K 64 일산 호수공원의 기울기 68 부르탈리즘 70 DOWN 73 빈 눈 I 75 칼데라 77 빈 눈 II 78 상수에게 80 구월 82 4부 흩어진 빛과 닫히지 않은 표면 아프리카 바이올렛 86 마그네틱 공화국 88 모래는 B처럼 슬프다 91 코끼리 사원의 밤 93 브레첼의 기도 96 검은 빵 98 콘트라베이스와 워맨스 99 싱그랭이 봄날 100 목포 102 아버지의 바이칼 103 필바라의 신 106 흰 귀의 시간 109 완월이 완월이었더라면 112 닫히지 않은 말 119 ** 해설 나는 나중에 왔다┃임후성(시인) |
윤희경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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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하지 않았다
오래된 엘리베이터처럼 어둠이 조용히 아래로 잠기고 있을 뿐이다 ‘뭔가 해야 한다’라는 말이 어깨에 내려앉았고 그때는 양어깨가 분명 있었는데 지금은 옷걸이에 남은 무게만 남아있다 플레이리스트, 몇 개의 구겨진 계절 손에 잡히는 것들은 잠시 얼굴이 되었고 거울은 자주 바뀌었다 삶은 켜진 채 놓인 물건처럼 ‘살아짐’쪽으로 기울었다 가라앉는다는 말은 내 등 뒤에서 습기처럼 숨을 쉬고 있었다 바스락거릴 때마다 서랍 속 공기가 새어 나왔고 깨어난 건 말이 아니라 접어둔 종이 속의 거짓들이었다 달력의 빈칸들이 눈을 붙잡았다 일정과 채권자 이름, 카드값, 해야 할 목록이 검은 잉크로 먼저 자리를 잡았다 펜 끝이 흔들렸고, 문장은 조금씩 흩어졌다 아침은 시작되었으나 밤은 빈손으로 끝났다 복도에 센서 등이 켜졌다가 꺼지듯 다음 날도 잠시 열렸다가 닫혔다 그 끝을 알지 못한 채 날마다 아래로만 사라졌다 동사만 남아 흔들렸고 ‘나’라는 명사는 서류 맨 아래에서 흐려졌다 요절은 없었다 살아 있는 채로 잠겼다 아직 버튼을 누르지 않았을 뿐이다 --- 「나의 근대성」 중에서 시곗바늘, 폭설 예보 시간을 거꾸로 센다 식구들이 잠든 밤 멍든 스탠드 불빛 아래 종이를 뒤집는다 초고도, 퇴고도, 거꾸로 거꾸로 째깍, 째깍 - 89일, 88일, 87일 숫자는 한 칸씩 내려가고, 이면지의 문장들은 바스러진다 줄어드는 숫자만큼 습기와 피로 ‘가난해야 복을 받는다’ 그 말은 관절보다 먼저 낡았다 복 대신 퇴행성 관절을 넘겨받는다 로꾸거, 사랑도 아니면서 나를 집어삼키는 이름 마이너스 3, 마이너스 2, 마이너스 1 꿈속에서도 색 빠진 얼굴 하나 부푼 달력이 터진다 삭아가는 삶의 실내 밤은 계약이었고, 여자는 항목이었다 시간은 창문 틈으로 새고 체온은 눅눅해진다 철들 무렵, 첫 장례처럼 걸친 벗지 못할 한 장의 로꾸거 - 다시 첫 종이를 펼친다 무릎이 먼저 내 삶을 접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 거꾸로 --- 「마이너스 계단, 로꾸거 -」 중에서 불변을 끝까지 붙들 수 있을까 우연뿐인 세계 사람들은 직선만 고집한다 그것을 상수라 부른다 ‘너를 위한 행복한 고통이었다’ 마른 빵을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고 씹더니 조용히 가셨다 ‘수염 좀 깎아라’ 아버지 마지막 말이다 부패와 우연으로 굴러가도 싫은 것 앞에서 자주 멈췄다 상수 쪽으로만 손이 간다고? 부엌 식탁 위, 아직 치우지 않은 그릇들 손 안 더럽히고 살 수 있을까 정중동의 말들이 눈꺼풀을 하나씩 닫았다 로또 번호를 긋는다 아버지 말대로 수염을 깎았다 위층에서는 화장실 공사가 끝나지 않는다 겹치지 않는 조용한 방식이 이 겨울 어딘가에 있을 거라 믿는다 가장 작은 상수가 손끝에 걸린 채 두 칸짜리 혹독한 겨울을 건너고 있다 --- 「상수에게」 중에서 함께라는 말이 왜 이렇게 가벼운가 우리는 더 멀리, 더 쉽게 튀었다 여기저기 떠밀려 돈을 모았다 푸석한 얼굴 분홍빛 파우더조차 닿지 못한 결 계수나무 아래 생의 헝겊을 꿰매는 오후 속 빈 달, 완월玩月이라는 이름을 비웃으며 꽃값은 몸값 웃음값마저 끝내 남지 않았다 쌀과 연탄, 병원비, 그 무게가 앞을 막았다 마트로 향하는 발걸음조차 뒤통수가 시렸다 희주와 나는 굴리던 공처럼 흩어졌다 공共 완월이 그저 ‘놀던 달’이었더라면 고양이 이불 속 쥐를 물던 밤. 오지 못한 달빛의 자리 희주는 달의 끝자락을 끌어안고 숨을 쉬었다 엄마의 울음은 까마귀 지붕 위에서만 맴돌다, 희주의 귓속을 쪼아대던 어둠 그날 이후 우리는 말보다 긴 침묵을 삼켰다 희주는 조용히 아메리카로 떠났고 나는 아직, 달빛 아래 서 있다 달은 오늘도 속 빈 공처럼 튕겨 나가 누군가의 이불 아래 울음처럼 스며든다 양철지붕 빨랫줄에 걸린 꽃무늬 팬티들 바람 한 점 없이 눈처럼 매달려 있다 마른 가루 부서지던 시간 --- 「완월玩月이 완월이었더라면」 중에서 무릎 위, 벽돌 같은 가방을 꼭 쥐고 차가운 전철 바람에 숨을 고르던 시절 가방 속 책과 빵이 냄새를 묻히며 있었다 아직 무너지는 쪽에 있다 우리는 심야 극장, 꺼져가는 불빛 속에 앉아 있었다 나는 어둠의 골조를 더듬었다 식은 죽의 온도, 철근처럼 굳어가는 말 정육면체 가난의 계단이었다 각을 쌓아 올리던 날들, 가장 거친 구조는 굵은 손을 거쳐 세워졌다 비좁은 옥탑방, 먼지 쌓인 쌀독 곁 납작하게 눌린 잠을 버텼다 빛이 마른 시간 삶의 모서리를 비틀었고 뚫고 지탱하며 말이 자주 부서지던 때 작은 벽 하나가 덧대어졌다 정육면체 속 숨결 사람이 얇아지던 날들 어떤 기도는 내 안에서 기둥 하나의 무게였다 날숨 끝에 하루가 한 층씩 올라갔다 --- 「부르탈리즘」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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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결’을 섬세하게 더듬어가야 만날 수 있는 궁극의 자리. 윤희경 시집 『말이 사라진 자국』은 “잔결”과 “물결”, “숨결”과 “잠결”, “뒤집힌 결”과 “매운 결”, “파문의 결”과 “식물의 결”, “뼛결”과 “묵은 결”을 지나 “새싹의 결”에 이르는 여정을 비추면서 존재의 빈자리를 더 깊은 울림으로 채운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필바라 사막의 “지문 없는 돌 하나”에서는 “말 없는 신의 그림자”와 “작은 것들의 장엄함”을 읽어낸다. “가장 낮은 음이 가장 멀리 흔들린다”는 것을 성스러운 말의 결로 다듬은 손결 또한 완월처럼 희고 도탑다. - 고두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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