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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 시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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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왕오천축국전
2. 레 실피드
3. 만연사의 백일홍
4. 더 깊은 섬 속의 사슴
5. 생밤 까주는 사람
6. 사랑, 그 코스모스의
7. 메기
8. 서른두 바퀴의 슬픈 푸에테
9. 사마귀
10. 여름은 가고
11. 봄 숲을 보면
12. 5월
13. 해남
14. 겨울 사과나무를 위하여
15. 새벽 우면산

(이하 생략)

저자 소개 1

195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와 수원대 국문과 석사, 원광대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가 당선되어 시단에 나왔으며, 2008년 윤동주상 문학부문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생밤 까주는 사람』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공중 속의 내 정원』 『우주 돌아가셨다』와 산문집으로 『춤추는 남자, 시 쓰는 여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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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1999년 08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103쪽 | 128*205*20mm
ISBN13
9788932006659

책 속으로

이 사람아
산 채로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을 한번 더 벗겨내고
그리고 새하얀 알몸으로 자네에게 가네
이 사람아
세상이 나를 제아무리 깊게 벗겨놓아도
결코 쪽밤은 아니라네
그곳에서 돌아온 나는
깜깜 어둠 속에서도 알밤인 나는
자네 입술에서 다시 한번
밤꽃 시절에 흐르던 눈물이 될 것이네

--- p.16

외출을 한다
바닥난 희망을 찾으려고
말뿐인 진실이면 어때?
끼리끼리 모여서 차를 마신다
서로에게 필요한 그 무엇을 눈치야 채지만
더 이상 짜내어 내줄 것이 없다
헤어져 돌아서는 길
비라도 내린다면 인사할 수 있으련만
슬픔 한 톨만은 아끼려고 그냥 차에 오른다
안에도 밖에도 없는 너는 누구인가?
누군가의 절망이든 희망이든 꺼내어
허기를 달래보는 6월의 찻집
우리들이 아직 우리일 때 부디
쏟아져다오 소나기여
공짜로 뿌려지는 희망이여

--- p.83

예전에도 우리는
나무의 나뭇잎이었을까
가을의 목덜미에 잎잎이 매달려
눈부시게 흔들리는 한세상
멀미하다 쓰러져 누운
누군가의 생애 같은 잎새들
생각마저 꽁꽁 얼어버리면 우리는
또다시 순결한 잎이 될 수 있을까
너와 나 세상살이는 때때로
혼자서만 손을 흔들게 하지만
바퀴도 날개도
보호색도 없는 우리는
우리 닮은 잡목의 몸체를 하염없이
맨살로 타고 오르는 담쟁이나
칡덩굴이 되어 흥건히 젖어서 살지라도
우리가 우리 이름을 우리 몸 속에
쓸쓸히 새기며 살지라도
세상 나뭇잎으로 남아 우리는

--- p.35

열여섯엔 안 보이는 곳에서도 희고 쑥쓰러웠지
스무 살엔 솟아오르는 탄력으로 젖살가지 삐죽 솟아버렸지
지금의 나는 고층 아파트에서 시인의
나무 끝에서 공중의 흙을 더듬어내리는 무수한
발가락뿐 제 뿌리로 제 뿌리를 껴안고 있을 뿐

다시, 쑥쓰러움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잠결에도
무수히 베개 속 혹은 이불 속 깊은 곳에
뿌리 머리를 뿌리 손을 쑤셔넣는다 마른 땅을
후벼파듯이 쑥밭 같은 영혼 깊숙이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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