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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왕오천축국전
2. 레 실피드 3. 만연사의 백일홍 4. 더 깊은 섬 속의 사슴 5. 생밤 까주는 사람 6. 사랑, 그 코스모스의 7. 메기 8. 서른두 바퀴의 슬픈 푸에테 9. 사마귀 10. 여름은 가고 11. 봄 숲을 보면 12. 5월 13. 해남 14. 겨울 사과나무를 위하여 15. 새벽 우면산 (이하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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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아
산 채로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을 한번 더 벗겨내고 그리고 새하얀 알몸으로 자네에게 가네 이 사람아 세상이 나를 제아무리 깊게 벗겨놓아도 결코 쪽밤은 아니라네 그곳에서 돌아온 나는 깜깜 어둠 속에서도 알밤인 나는 자네 입술에서 다시 한번 밤꽃 시절에 흐르던 눈물이 될 것이네 --- p.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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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을 한다
바닥난 희망을 찾으려고 말뿐인 진실이면 어때? 끼리끼리 모여서 차를 마신다 서로에게 필요한 그 무엇을 눈치야 채지만 더 이상 짜내어 내줄 것이 없다 헤어져 돌아서는 길 비라도 내린다면 인사할 수 있으련만 슬픔 한 톨만은 아끼려고 그냥 차에 오른다 안에도 밖에도 없는 너는 누구인가? 누군가의 절망이든 희망이든 꺼내어 허기를 달래보는 6월의 찻집 우리들이 아직 우리일 때 부디 쏟아져다오 소나기여 공짜로 뿌려지는 희망이여 --- p.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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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도 우리는
나무의 나뭇잎이었을까 가을의 목덜미에 잎잎이 매달려 눈부시게 흔들리는 한세상 멀미하다 쓰러져 누운 누군가의 생애 같은 잎새들 생각마저 꽁꽁 얼어버리면 우리는 또다시 순결한 잎이 될 수 있을까 너와 나 세상살이는 때때로 혼자서만 손을 흔들게 하지만 바퀴도 날개도 보호색도 없는 우리는 우리 닮은 잡목의 몸체를 하염없이 맨살로 타고 오르는 담쟁이나 칡덩굴이 되어 흥건히 젖어서 살지라도 우리가 우리 이름을 우리 몸 속에 쓸쓸히 새기며 살지라도 세상 나뭇잎으로 남아 우리는 --- p.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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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엔 안 보이는 곳에서도 희고 쑥쓰러웠지
스무 살엔 솟아오르는 탄력으로 젖살가지 삐죽 솟아버렸지 지금의 나는 고층 아파트에서 시인의 나무 끝에서 공중의 흙을 더듬어내리는 무수한 발가락뿐 제 뿌리로 제 뿌리를 껴안고 있을 뿐 다시, 쑥쓰러움으로 뿌리내리기 위해 잠결에도 무수히 베개 속 혹은 이불 속 깊은 곳에 뿌리 머리를 뿌리 손을 쑤셔넣는다 마른 땅을 후벼파듯이 쑥밭 같은 영혼 깊숙이 --- p.3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