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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___ 7
1 제1의 친구, 박명(薄明) ___ 20 2 제2의 친구, 서광(曙光) ___ 50 3 제3의 친구, 상현(上弦) ___ 90 4 제4의 친구들, 백야(白夜) ___ 123 작가의 말 1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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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나나다〉 강현 작가 신작 소설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부모가 남긴 막대한 재산 덕분에 유성은 벌써 네 번째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스스로 원한 삶은 아니었습니다. 유성은 생을 마칠 방도를 찾으려고 안드로이드 자살 카페에 가입하지만, 그런 유성에게는 그를 사랑하고 그가 더 살아가길 바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우선 박명. 박명은 세 번째 심장을 비롯해 전신의 장기 교체율이 108퍼센트가 넘습니다. 걸어다니는 테세우스 호죠. 두 번째 친구 서광. 스물아홉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었던 서광은 버전이 낮고 저렴한 육아용 안드로이드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스물아홉인 채로요. 이제 곧 자신의 딸보다 더 어려질 아빠 서광으로요. 다른 친구 상현과 백야의 이야기는 직접 확인하셔도 좋겠습니다. 단편 〈나는 바나나다〉 단 한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강현 작가가 또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풍부한 소설로 돌아왔습니다. 작가 스스로는 세상에 이미 존재하는 모든 아이디어의 조각 모음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강현 작가의 더 많은 작품이 보고 싶습니다. 아마 이 작품을 읽은 독자 여러분도 그러실 겁니다. 작가의 말 혜화동에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퇴근하고 장을 본 터라 두 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등에 백팩을 매고 자라처럼 납작 엎드려 걸었습니다. 굽은 언덕을 오르면 인적은 금방 자취를 감춥니다. 땅거미가 질 무렵 가로등이 훅 켜졌습니다. 어둠속에는 내 그림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발 밑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선명해지면 광원을 올려다보기 마련인데, 그때서야 이마 위로 첫 눈이 앉은 걸 알았습니다. 푸른 어둠 속, 가로등의 주홍 불빛을 받아서 희게 빛나는 것들. 나풀나풀 유영하는 눈송이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녹아 사라지는 광경. 문득 엄마에게 전화가 걸고 싶었습니다. 제주에도 눈이 왔냐고. 하지만 두 팔에는 손가락이 빨개지도록 무거운 장바구니가 있었고, 가파른 언덕에는 그 무엇도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 생각을 하며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삶의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순간은 입밖으로 내기 전까지는 세상에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일인 것만 같습니다. ― 강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