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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로 은인
이식과 도승 적괴유의 장마가 실어온 발복 재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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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언(君彦) 이주국(李柱國)이 무과총사(武科總使)로서 처음으로 제장을 통솔하여 한강의 모래밭에 군기를 배열하고 습진(習陣)을 벌린 것은 정조 기유(正祖己酉) 이월, 부는 바람도 아직은 으시시한 이른 새벽이었다.
『무(武)는 숙(肅)이니, 제장의 명을 준용하라.』 『군법에 거역하는 자는 일호의 가차 없이 처형 하리라.』 높이 우는 말의 울음. 새벽 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포라 소리. 눈코 뜰 수 없이 어수선한 사이로,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 같이 명령을 내리는 주국의 태도는 말할 수 없이 늠름하였다. 싸움은 무르익어 간다. 바로 눈앞 한강의 얼음은 아직 다 풀리지 않았건만 그 사장을 에워싼 군사들의 이마에는 벌써 땀이 맺히었다. 『이번의 이총사(李總使)는 참 엄격해.』 『흥 그 사람이 뉘 아들이라구.』 --- “원수로 은인” 중에서 정조(正祖)가 할아버지 영조(英祖)의 대통을 이어 등극한 이래, 주소를 불문하고 머리에 왕래하는 것은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가 할아버지의 곡해를 입어 인륜상 처참지극한 죽음을 당한 비통한 사실이거니와 동시에 당신의 고모님 화평옹주(和平翁主)가 매사에 동생을 옹호하여 아버지 영조의 노염을 풀기에 지극한 노력을 하였고 아버지 사도세자도 누님을 하늘 아래에는 더 없는 사람으로 사모하고 의지하여 내 지하에 간들 어이 누님의 은의를 잊겠는가 하는 말을 항시 해왔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지라 정조는 원통히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아버지를 극력 수호해준 고모님을 고맙게 생각하여 고모님의 남편 박명원(朴明源)에 대해서도 특별한 신임을 해왔다. 누구의 말이거나 그 말이 옳으면, 그것을 배척하는 속 좁은 임금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고모님이나 그의 남편 고모부. 박금성위 말이라면 신중히 취급하고 어지간하면 거역치 않고 가납하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남에게 하지 못할 정담도 고모에게는 하였고 고모부의 보필을 받아 오는 터이었다. --- “장마가 실어온 발복”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