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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비화
홍윤성과 절부 투환금은 한말상계관견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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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경문왕 말년.
곳은 상주 가은현(尙州 加恩縣)의 어느 한적한 촌락이다. 그 촌락을 뒤로 장식하고 있는 작다란 언덕에 드문 드문 소나무가 서 있고 그 소나무 틈틈이로는 이끼 낀 바위가 비죽이 보이고 있다. 그 어떤 바위에 한 농군(農軍)이 앉아 있다. 그리고 그 농군의 곁에는 그의 아들인 듯한 열아믄살쯤 난 소년이 앉아 있다. 『그래서요.』 --- “후백제비화” 중에서 문(文)에는 신숙주(申叔舟). 무(武)에는 홍윤성(洪允成). 이렇듯 그 영명을 당시에 번뜩이던 세조조(世祖朝)의 명신 수옹(守翁) 홍윤성이 과거에 응시코자 도보(徒步)로 그 고향 회인(懷仁 )을 떠난 것은 경태삼년(景泰三年) 임신(壬申) 호서(湖西)일대에도 봄소식 무르익는 삼월 하순이었다. 이십년 가까운 세월을 가난한 그 숙부집에 붙쳐 있으며 밭갈기 논매기 심지어는 그 숫한 식구가 때야 할 나무까지 해 대느라고 밤낮을 주접속에 묻혀 지나던 그였으나 그동안에도 잠시 마음을 떠나지 않는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한번 벼슬자리를 얻어 사람 구실을 해보자.』 하는 간절한 뜻이었다. --- “홍윤성과 절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