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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 어머님
2월 창작평 5월 창작평 K박사의 연구 가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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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안이 서울로 이사를 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만 6년 전이다.
그 전해 가을부터 심한 신경쇠약에 불면증을 겸하여 고생하던 나는 가족을 평양에 남겨두고 혼자서 서울로 올라와서 치료를 하고 있었다. 나의 가족이라는 것은 나의 아내와 아들 하나와 딸 둘(아들과 큰딸은 전처의 소생이다)이었다. 그 가족들을 평양에 남겨두었는데, 그들 위에는 늙은 어머님이 계셨고, 아직 시집가지 않은 누이동생이 하나 있었다. 지금껏 평양 있을 동안의 생활방식이라는 것은 어머님의 약간의 토지에서 수입되는 나락과, 미약한 나의 원고료 수입에 의지하여 지탱해왔다. 그러던 것이 내가 서울로 올라와서 병치료를 하고 있게 되매 나의 원고료 수입이 치료비에도 도리어 부족이 될 형편이라 일이 딱하게 되었다.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맏형을 찾아갔다. 그리고 맏형께 내가 서울에서 치료를 하는 동안 어머님을 비롯하여 내 가족들의 생활을 돌보아주기를 부탁하였다. --- “가신 어머님” 중에서 5년 전 이맘때였다. 김장을 겨우 끝낸 뒤쯤이니까. 우리 집에는 우리 가족이 사용하는 큰방과 건넌방 밖에, 비워둔 뜰아랫방이 하나 있다. 도대체 사글세를 주면 귀찮고 시끄럽고 집 더러워지는 위에 만약 불행히 술 먹는 사람이라도 들게 되면 그야말로 집안이 꼴이 되지 않을뿐더러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이 되겠는지라, 우리는 빈방이 있을지라도 사글세를 놓지를 않았다. 한 달에 단 몇 원과 바꿀 수 없는 무형적 손해가 많기 때문에. 그랬는데 그해따라 웬 까닭인지 아내도 사글세를 놓아볼 생각이 났었고, 나도 또한 그다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승낙을 한 것이었다. 집주릅은 연방 사글세 후보자를 데려왔다. 그러나 그 후보자들이 방을 이렇다 저렇다 평하기 전에 도리어 우리 쪽에서 후보자의 인물 선택을 엄히하여 들게 되는 사람이 쉽사리 나서지 않았다. 가족이 많으니 안 되었다, 애들이 여럿이 달렸으니 안 되었다. 사람이 보기에 더럽게 생겼으니 안 되었다, 술을 먹는다니 안 되었다, 다변(多辯)할 듯이 생겼으니 안 되었다. 별의별 구실을 다 잡아가지고 그것을 마치 방을 세를 놓으려 한다는 것보다 안 놓기 위한 선택과 비슷하였다. --- “가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