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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여름은 거기에 있다 · 6
2. 열매가 빛을 삭제하는 달 · 20 3. 눈부신 여름 인사 · 36 4. 봉선화 꽃물 들이는 시간 · 47 5. 꿈속에서 꺼낸 마음 · 70 6. 이 뜨겁고 차가운 계절 · 87 7. 여름, 마음이 닿는 곳 · 105 작가의 말 · 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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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신저 대화창에 부회장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모든 글자가 허둥대고 있는 듯하다. 그 와중에도 해명, 금일 이런 단어를 쓸 줄 아는 애가 바로 우리 반 부회장이자 내 남자 친구 최한빛이다. 다른 남자애들처럼 게임 아이템 얘기 하고 줄임말이나 인터넷 유행어를 쓰는 아이였다면 나는 4월에 최한빛과 사귀지 않았을 것이다.
--- p.20 예상대로 2층 이용자는 우리 둘만 있었다. 나는 전날 미리 검색해서 대출 가능 여부까지 확인한 책을 책장에서 가져왔다. 자가 대출 반납기에서 대출 처리를 할 때 제목 『사랑의 요정』이 최한빛에게 보이게 책을 똑바로 눕히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사랑, 요정 이 상큼한 단어들이 최한빛의 마음에 스며들기를 바라며. “나, 세면대에서 손 씻을 건데 책 잠깐만 부탁해.” 4월의 도서관에서 나는 최한빛에게 책만 맡긴 게 아니다. 책 제목에 적힌 ‘사랑’이라는 단어를 최한빛 품에 안겨 준 것이다. 최한빛이 책 제목을 확인할 때 내 마음속에서 벚나무가 반짝 피어났다. 그러다 내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을 때 연분홍 작은 벚꽃잎들이 비를 맞은 듯 하늘하늘 떨어져 내렸다. 나는 그 떨림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 p.22 “아, 맞다. 연우가 있었지. 연우야, 네가 말이 없어서 아저씨가 깜빡했어. 너라도 먼저 열매한테 인사하지 그랬어. 모자 쓰고 있어서 우리 열매가 너를 못 알아봤네. 열매야, 연우 기억나지? 우리 옆집 살았잖아. 지금도 아빠하고 이웃사촌이야.” 연우? 앞니 빠지고 나보다 키 작고 고장 난 세탁기처럼 시끄럽던 그 배연우? 그렇다는 듯이 배연우가 모자를 벗는다. 여름이 빚은 것 같은 눈부신 얼굴이 드러났다. 아니, 눈부신 여름 인사라고 해야 할까. 눈앞에 서 있는 배연우가 말하는 순간 내 마음이 구석까지 환해졌다. 그런데 정말 별거 아닌 말이었다. “안녕, 오랜만이다.” --- p.44 배연우는 별말 없이 부추를 뜯었다. 긴 녹색 부추가 배연우의 손에 톡톡 끊어졌다. 아빠의 텃밭은 잎줄기채소들의 교실처럼 다양한 채소들이 자리 잡고 있다. 농약을 뿌리지 않아서 잡초도 섞여 있다. 아, 뭐야. 내가 걸음을 옮기려는데 배연우가 갑자기 나를 옆으로 밀었다. 가볍게 툭 치기는 했지만 나는 밀리고 말았다. “미안. 얘, 방아깨비 때문에.” 배연우가 손가락으로 풀을 가리켰다. “아, 얘가 방아깨비구나. 나도 알지. 방아깨비.” --- p.55 “언니, 첫사랑 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첫눈 올 때까지 봉선화 꽃물이 손톱에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대.” 연아가 반달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p.61 반딧불이 빛으로 반짝거리는 산골의 여름밤. 시끄럽기만 했던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에서는 다르게 들린다. 밤하늘의 별빛을 만져 보려는 듯 간절하게 운다. 이번에도 배연우와 나는 말없이 걸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배연우는 나중에 이 여름밤을 어떤 장면으로 기억할까. 나는 잘 가라는 흔한 인사말도 없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배연우도 아무 말 안 했다. 하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방에 불을 켠 뒤에야 배연우는 자기 집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는 것을. 내 방 같지 않은 방에서 내 심장이 낯설게 뛰었다. 이 낯섦을 붙잡아 두려는 듯 나는 다이어리에 적는다. 손톱에 첫 봉선화 꽃물 들인 날. --- p.78 마음으로 쓴 편지는 삭제할 수 없어. 하지만 최한빛, 너는 이 편지를 받지 못할 거야. 너는 아직 아이의 계절에 머물러 있으니까. 나는 어쩌다 일찍 어른의 계절을 맛보게 됐어. 이 뜨겁고 차가운 계절로 너를 초대하지 않을 거야. --- p.104 동생을 위해 첫눈 오기 전까지 난센스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 생각할 틈 없이 바로 방아깨 비의 목숨을 구하는 아이, 쓰러진 꽃들을 일으켜 세워 품는 아이, 보채지 않고 말없이 기다릴 줄 아는 아이, 사자를 추모하는 난센스 퀴즈를 짓는 아이……. 그 아이의 속눈썹은 길고 콧대는 높고 입술은 빨갛고 눈은 빛난다. 가까이에서 마주 본 배연우 얼굴은 마치 여름이 빚은 조각 같았다. 온돌 기차역에서 본 첫인상이 틀리지 않았다. --- p.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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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수상작
여름에 내리는 첫눈처럼, 재난같이 찾아온 열두 살 사춘기 비밀 하나쯤은 생기는 사춘기, 잿빛 고민을 품은 채 성장하는 어린이의 심리 변화를 계절의 온도에 빗대어 생생하게 그려 낸 『여름, 첫눈』이 출간되었다. 『여름, 첫눈』은 “사랑의 감정을 산뜻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인물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자연스러운 성장을 보여 주었다. 수려한 문장과 그림이 그려질 듯 생생한 표현으로 문학적 향기를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다.”는 평을 받으며 제16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장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5학년이 된 열매는 같은 반 부회장 최한빛과 비밀 연애를 시작했다. “상의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금일부터 나랑 사귀는 거 어때?” 최한빛의 고백은 봄날 가운데 여름 조각을 풍덩 띄우며 열매의 마음 계절을 바꿔 놓았다. 열매는 최한빛이 여느 남자아이들과는 달라서 좋았다. 게임 아이템 이야기나 줄임말, 인터넷 유행어 대신 ‘금일’이라든가 ‘해명’ 같은 어른스러운 단어를 점잖게 쑬 줄 아는 아이라고 할까? ‘꽃사과 나무 아래서 최한빛과 사귀기 시작하다. 나의 첫 연……’ 하얗고 작은 꽃사과 꽃들이 봄바람에 흔들리던 그날의 마음은 열매의 다이어리에 수줍게 남아 있다. 숨은 마음 찾기를 하듯 글자 ‘애’는 말줄임표 속에 감춘 채. 하지만 사건은 여름 방학 전날, 2반 김재니의 생일 파티를 계기로 터지고 만다. 생일 파티 게임 벌칙으로 최한빛이 김재니와 입술 뽀뽀를 했다는 것! 충격적인 소문과 함께 맞이한 여름 방학 첫날, 열매는 최한빛과의 데이트 대신 아빠를 만나러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로 떠난다. 그렇게 도착한 온돌 기차역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만나는데…… 푹 눌러 쓴 모자를 벗고 멋쩍게 인사를 건네는 또래 남자아이, 배연우다. 열매보다 키도 작고 고장 난 세탁기처럼 시끄러웠던 그 배연우? 눈부신 여름 인사처럼, 마음 구석까지 환해지는 열매의 5학년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내 여름은 거기에 있다.” 계절처럼 변하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7월은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 6월의 마지막 날 밤, 열매는 다이어리에 7월의 이름을 적어 두었다. 한빛에게 메신저로 보내려다 만 7월의 이름은 이제 ‘열매가 빛을 삭제하는 달’이 되었다. 무턱대고 찾은 온돌 마을에서, 열매는 어린 시절 쌓아 온 시간의 추억을 마주한다. 못 본 사이에 훌쩍 커 버린 연우와 봉선화 꽃담 사이로 꽃처럼 활짝 웃는 연우의 여동생, 배연아. 난센스 퀴즈를 듣고 웃음이 터진 동생을 위해 난센스님(난센스 창작자)이 되고 싶다는 아이, 실수로라도 방아깨비를 밟을까 주의를 기울이는 아이, 흙바닥에서 작은 해바라기 닮은 쑥갓꽃을 주워 내미는 아이, 여름 밤 집까지 바래다주곤 열매가 방에 불을 켠 뒤에야 발길을 돌리는 아이, 그리고 2학년 겨울 계곡 얼음판에서 잃어버린 열매의 거울을 찾아 두고 열매가 오길 내내 기다린 아이……. 열매는 이런 연우의 얼굴이 여름이 빚어 놓은 조각 같다고 느낀다. 열매를 친언니처럼 따르는 연아는 봉선화 꽃물을 들이며 연신 첫사랑이 이루어지길 염원한다. 수술 전에 갈기 달린 암사자를 보겠다고 보조기 찬 다리로 언덕을 넘은 것 또한 첫사랑을 향해 가는 걸음이었다. “첫눈 올 때까지 지워지면 안 되는데. 첫사랑 이루어져야 하는데.” 연아의 첫사랑은 수술이 잘되면 오래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딛고 더 간절하고 단단해졌을 테다. 첫 비밀 연애의 설렘과 그보다 커진 실망감을 동시에 안고 온돌 마을에 닿은 열매, 이제는 몰라볼 정도로 훅 자랐지만 손거울을 매개로 열매 껌딱지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연우, 첫눈 오기 전 남아 있는 봉선화 꽃물처럼 작고 흐릿하더라도 걸을 수 있다는 희망을 부여잡고 서길 원하는 연아. 대상도 모양도 다른 첫사랑의 계절을 지나는 이들의 이야기가 『여름, 첫눈』의 시간 속에 소복이 담겨 있다. 빨간 산딸기가 가득 든 초롱 쌈처럼 마음 계절에 스며든 싱그러운 사랑의 맛 열두 살 열매의 마음에 들어찬 고민은 온통 잿빛이다. 떨어져 사는 엄마와 아빠는 다시 함께 지낼 기미가 보이질 않고, 교육 문제라곤 하지만 온돌 마을에 아빠만 두고 세 식구가 서울로 이사를 꼭 와야 했는지 의문은 여전히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열지 말았어야 했을 판도라의 상자처럼, 그 와중에 우연히 알게 된 엄마의 사랑은 안다고 내색할 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나칠 수도 없는 열매만의 비밀이 되어 버렸다. 열매는 온돌 마을에서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언니에게 이 잿빛 고민을 털어 놓고 위로 받길 원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호된 겨울의 추운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데…….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뜨겁고도 차가운 계절의 중심에 선 열매의 세상에 톡, 톡 노크를 한 건 연우였다. 걱정했던 연아의 퇴원 소식, 연아를 웃게 하고픈 마음에 난센스 창작자를 자처한 오빠 연우의 모습, 같이 놀다 잃어버린 손거울을 간직한 채 열매와의 만남을 묵묵히 기다려 온 연우의 고백……. “쑥갓꽃 꽃말이 뭔지 알아?” “여름 첫눈 같은 입맞춤.” 별안간 꽃말 창작자가 된 열매의 고백은 여름 한가운데 내리는 첫눈같이 연우와 열매 모두의 마음에 살포시 내려앉았을 테다. 각자의 고민을 품은 채 서로에게 기대어 성장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여름, 첫눈』의 계절이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