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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린이 왔다
징표 향화인 부락 처음 가진 꿈 꿍꿍이 분풀이 징집 만 가지 사연 압록강을 건너다 장군의 고뇌 전투 사라진 토끼 포로 다시 만난 모린 염알이꾼 조선으로 가는 길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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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처마 끝에 놓는 기와, 막새 말하는 거죠?”
“그래, 그 처마 끝 기왓장 맞다.” “그런데 왜 막새라고 지었어요?” “지붕 위에 아무리 많은 기와가 있다고 해도 막새가 없으면 안 되는 것처럼 그런 사람이 되라는 의미지.” “쳇, 정말 그런 뜻으로 지은 것 맞아요? 노비 이름은 그냥 눈에 띄는 대로 아무렇게나 짓잖아요. 지붕 위 막새가 눈에 띄어서 그렇게 지었으면서.” --- p.9~10 모린이 주머니를 뒤지더니 뭔가를 꺼내 막새의 손에 쥐여 주었다. 막새의 가슴이 널뛰기하듯 또다시 쿵덕거렸다. “교역소에는 신기한 물건들이 꽤 많지만 이게 너에게 어울리는 것 같아서 사 왔어.” 모린이 막새의 손에 쥐여 준 건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말 두 마리였다. “교역소에서 만난 네 또래 여진족 아이가 깎아 만든 말이야. 그 애는 이걸 팔아서 먹고사나 보더라. 작고 가냘프지만 강인해 보였어. 그 아이를 보는데 네가 생각나더라.” --- p.22 “난, 전쟁에 나갈 거야.” 명수의 말에 막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몸도 성치 않으면서 무슨 말 하는 거야?” “하루빨리 조선을 벗어나고 싶어. 이 땅을 떠나는 방법은 그것뿐이야.” 잠시 망설이다가 막새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면천첩을 준다고 하니 나도 갈 거야.”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노비에 만족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어?” “어차피 원하지 않아도 전쟁터에 나가야 할걸! 뭘 결정할 권리가 없는 노비니까.” --- p.65~66 “장군님, 저는 여진 통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면천첩을 받고 나면 꼭 통사가 될 겁니다.” 막새의 말에 도원수가 환하게 웃었다. “네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전쟁이 호락호락한 전쟁이 아니라는 것만 꼭 기억해라.” 막새는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전쟁. 그러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 p.87 “난 내 나라를 위해 끝까지 싸울 거야. 그러니까 넌 네 나라를 위해 싸워.” “싸우라고? 포로 신세인데 싸우라고? 어떻게?” 막새의 목소리가 또 높아졌다. 그러자 집안일을 하는 하녀가 무슨 일인가 하여 뛰어나왔다. “그건 네가 고민해야 할 일이지.” 모린은 알 수 없는 말을 자꾸만 했다. “네가 염알이꾼이 되는 방법도 있어.” “염알이꾼? 남의 말을 엿듣는 사람이 되라고! 그런 나쁜 일을 하라고!” “그게 왜 나쁜 일이야?” 모린은 그 말을 끝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모린이 도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어 막새는 답답했다. --- p.121 소년병, 염알이꾼 막새를 소개합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늘 끊임없이 역사 강의를 듣고 있어요. 그때마다 내가 알고 있는 역사 지식이 얕고, 가볍고, 속이 비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했어요. 그 순간 한없이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지요. 어느 때부터인가 조선 미시사(微視史)에 푹 빠졌어요. 미시사란 ‘거시적인 역사적 구조보다는 인간 개인이나 소집단의 삶을 탐색하는 역사 연구의 방법론 또는 그렇게 탐색되어 기술된 역사’라는 뜻이에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만드는 것은 결국 작은 물줄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인간 개인이나 소집단의 삶을 탐색하는 작업은 참으로 매력적인 역사 탐구 방법이지요. 조선 미시사를 공부하다 만난 것이 ‘조선을 사랑한 스파이’였어요. ‘스파이라면 드러나지 않은 조선의 적이 분명할 텐데 역설적이게도 조선을 사랑한다고?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 궁금증에 닥치는 대로 자료를 찾아 읽어 보았어요. 조선을 사랑한 스파이는 바로 ‘강홍립’이었지요. 《광해군 일기》 중초본 127권, 광해 10년(1618년) 윤4월 27일의 기록을 보면, 그 당시 명나라로부터 서신 한 통이 날아왔어요. 내용은 아주 간단했지요. 명나라가 대병을 일으켜 누르하치가 세운 후금을 공격할 터이니, 조선도 병사를 보태 협력하라는 내용이었어요. 조선 조정으로서는, 그러니까 당시 조선의 임금이었던 광해군으로서는 난감할 따름이었어요. 명나라는 임진왜란 때 도와준 것을 얘기하며 파병을 요구했어요. 의리와 명분에 죽고 못 살던 조선 대신들은 어려울 때 부모를 돕는 것은 자식의 도리라며 광해군을 압박했지요. 이때 광해군이 내놓은 것이 ‘시간 끌기’ 전략이었어요. “조선에서 군대를 파병하면 그 틈에 왜놈들이 다시 조선에 쳐들어올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군의 실상을 보지 않았는가? 군대를 보내도 군량만 축낼 것이다.” “임진년에 난리를 겪은 탓에 나라가 가난하다. 군사를 일으킬 수준이 못 된다.” 그러자 명나라는 발끈하며 이렇게 협박했어요. “임진년의 재조지은을 잊지 말라. 계속 이렇게 나온다면, 누르하치를 치기 전에 너희를 먼저 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광해군도 어쩔 수 없이 군대를 파병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총사령관 자리에 강홍립을 앉혔지요. 강홍립은 예전에 어전 통사로 맹활약했기 때문에 명나라와 말이 안 통하는 용맹한 장수보다는 중국어를 잘하는 똑똑한 문신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하여 조선은 임진왜란을 겪고 전 국토가 핍박한 상황에서 군대를 파병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조선 파병군은 허무하게 무너졌고 심하 전투는 싱겁게 끝나고 말았어요. 패전과 항복에 대한 소식을 들은 신하들은 강홍립을 역적으로 몰아세웠어요. 하지만 광해군은 강홍립의 가족들에 대한 처벌을 끝까지 반대했고, 강홍립을 옹호했어요. 두 사람 사이의 굳은 신의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오랫동안 포로 생활을 하면서 강홍립은 조국 조선을 위한 길을 찾아서 실천에 옮겼어요. 바로 조선의 스파이로 변신한 겁니다. 광해군은 강홍립에게 보내는 서찰이나 보고하는 서찰을 꼭 ‘언문’으로 쓰도록 지시했어요. 당시 강홍립이 보내 온 수많은 자료들을 받은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펼치는 데 중요한 판단 자료로 사용했어요. ‘이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랜 고민 끝에 저는 은산 관아에서 노비 생활을 하던 정명수와 막새를 등장시키기로 결심했어요. 정명수는 역사적 인물이고 막새는 제가 만들어 낸 상상 속 인물이에요. ‘정명수는 무엇 때문에 조선에 원한을 품게 되었을까? 왜 병자호란 때 조선을 등지고 청나라 편에 서게 되었을까?’ 생각하다 보니 정명수와 반대되는 인물로 임진왜란 후 부모를 모두 잃고 홀로 남은 막새가 떠올랐지요. 부모를 모두 잃고 은산 관아의 노비가 되었지만 호기심 많고 건강한 소년 막새. 어미가 노비라는 이유로 노비로 살며 조선에 대한 원한에 가득 차 복수를 꿈꾸는 소년 명수. 나라가 없어 잠시 조선에 머무르다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여진족 장수가 된 소녀 모린. 저는 막새라는 인물을 통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이고 밝게 생활하고 의리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염알이꾼이 되어 조선으로 돌아온 막새가 말합니다. “천한 노비라고 꿈꾸지 말란 법은 없어. 내 꿈을 그깟 신분 따위로 포기하지 않을 거야.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조선으로 돌아온 나는 최고의 염알이꾼이 될 테니까.” 안선모 --- 본문「작가의 말」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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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일반지원사업 선정작
막새, 소년병이 되다 《나는 염알이꾼입니다》는 2025년 인천문화재단 예술창작일반지원사업 문학 분야 선정작이다. 부모를 모두 잃고 절구 할아범 손에 이끌려 관아에서 살게 된 막새는 같은 처지의 명수 형과 다정한 여진족 소녀 모린 누나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모린 누나는 압록강 너머로 떠나고, 조선에 대대적인 징집령이 내려 명수 형과 막새도 전쟁터로 향하지만 곧 헤어지고 만다. 열다섯 어린 나이에 전쟁에 참가한 막새는 추위와 배고픔과 싸우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다 압록강을 건넌다. 몸이 아픈 친구까지 업고 죽을힘을 다해 압록강을 건넌 막새는 기진맥진해 정신을 잃고 만다. 남의 말을 엿듣는 사람이 되라고? 나중에 정신을 차린 막새는 조선 군대의 최고 지휘자인 도원수, 강홍립의 눈에 들어 시중을 들게 된다. 도원수 가장 가까이에서 시중을 들며 막새는 명나라와 후금의 전쟁에 낀 조선의 처지에 대해 깨닫는다. 막새는 나랏일은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철부지 소년이었고, 면천첩을 받아 노비 신분을 벗어나려고 했기 때문에 더더욱 전쟁의 명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약소국의 설움을 알게 되고 더불어 이러한 상황에서 군사를 이끌어야 하는 장군의 무거운 고뇌에도 공감하게 된다. 그리고 전투 끝에 포로로 잡힌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후금군에게 갔다가 그리웠던 모린 누나와 명수 형과 재회한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모린 누나와 명수 형은 낯선 사람이 되어 있고, 모린 누나는 막새에게 염알이꾼(몰래 남의 사정을 살피고 조사하는 사람)이 되어 보라는 뜻밖의 제안을 하는데……. 막새는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조선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꿈꾸던 통역사가 될 수 있을까? 염알이꾼 막새, 희망을 전달하다 《굿바이, 미쓰비시》 《오빠는 하우스보이》 등 역사의식이 분명한 청소년 소설을 발표했던 안선모 작가가 이번에는 광해군 시절 소년병 이야기, 《나는 염알이꾼입니다》로 돌아왔다. 이 작품에는 광해군 시절, 조선의 실상이 드러나 있다. 전쟁에 동참하라고 압박하는 명나라와 원한이 없다면 화해하자는 후금 사이에서 이미 예전에 명나라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는 광해군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임금의 난감한 처지는 장군에게로, 다시 백성에게로 옮겨 가며 고단함이 가중된다. 징집령에 늙은 부모 대신 어린 아들이 나서고, 험한 일은 한 적 없는 손이 고운 선비까지 차출된다. 역사 강의를 듣다가 미시사에 빠지게 됐다는 작가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무심히 지나쳐 간 백성들의 수많은 사연을 보듬는다.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만드는 것은 결국 작은 물줄기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면에서 인간 개인이나 소집단의 삶을 탐색하는 작업은 참으로 매력적인 역사 탐구 방법이지요. -작가의 말 중에서 백성들의 구구한 사연이 더해지다 보면 결국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독자의 마음속에는 조선의 힘겨운 상황이 절로 그려진다. 또한 이 작품은 조선 시대 신분제 사회의 맹점을 비판한다. 주인공 막새는 부모를 모두 잃고 양인에서 노비로 전락한다. 명수는 아버지가 양반이었지만 어머니는 노비였기 때문에 노비가 되었다. 신분의 굴레에 갇힌 이들은 꿈을 펼칠 수도 없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항변하지 못한다. 그래서 노비 신분을 면하기 위해서라도 막새는 열다섯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향한다. 면천이 되면 통역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간직한 채. 막새는 처마 끝에 놓는 기와를 뜻한다. 그렇기에 막새가 없으면 지붕이 완성되지 않는다. 안선모 작가는 고아 소년이자 노비인 주인공에게 막새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막새처럼 꼭 필요한 존재로 세상에 거듭나기를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작품의 마지막, 막새는 자신의 꿈보다 대의를 위한 선택을 한다. 어린아이 막새에서 청소년 막새로 훌쩍 발돋움하는 순간이다. 전쟁 통에도 우정은 깊어지고 희망은 피어난다. 우정과 희망을 딛고 순박하고 호기심 많던 막새는 성장의 길로 들어선다.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밝고 긍정적인 막새가 그 성정 그대로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 응원하게 된다. 역사는 기억하지 않는 민초들의 삶을 뜨겁게 추적한 작가의 집념은 그래서 이 작품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휘몰아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 몫을 다하며 살아간 작은 물줄기들의 목소리가 책장을 덮은 뒤에도 긴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