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은 성제의 여동생이다. 이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 것이 4분 늦었을 뿐인 쌍둥이로, 두뇌에 관해서는 명백히 오빠인 성제보다 뛰어나다. 바빠서 잠시 근황을 듣지 못했을 뿐인데, 그사이에 한국 교육부의 정책보좌관으로 취임했다는 듯, 5일 전부터 여당 의원과 함께 뉴욕을 방문한 상태였다. 오늘과 내일은 쉬는 날이라며, ‘마녀재판’에 회부된 오빠의 추태를 보기 위해 굳이 머나먼 아이오와까지 찾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 된 건데?”
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소현은 캐슈너트를 씹었다.
“뭐가?”
“그러니까 천재 침팬지 릴리가 어떻게 방사장 잠금장치를 연 거냐고.”
역시 짐작하고 있었구나.
성제는 기적 같은 우연은 믿지 않는다. 의원을 속일 수는 있어도 동생의 눈은 속일 수 없었던 모양이다.
--- pp.63-64

“그 사건 관계자 중 6구역의 공격을 피한 자가 한 명 더 있네. 쓰노 기미코야.”
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쓰노 기미코는 그 사건의 주범이었다. 체포되고 3년 만에 사형 판결이 확정되었다. 그런 그녀가 왜?
“어떻게든 뇌의 생체 조직 진단을 해보고 싶었거든. 일본에서는 불가능해서 작년 5월에 나이로비 교도소로 이송했네. 물론 아주 특별한 절차를 거쳤지. 법무부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서 장관의 허가를 받는 데만 4년이 걸렸어. 그리고 지금 나는 내 행운에 감격하는 중이지.”
구스카미는 안대를 차지 않은 내 오른쪽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남아프리카를, 아니, 전 인류를 구할지도 몰라.”
--- p.99

모틸리언은 기존에 발견된 어떤 동물과도 생김새가 전혀 달랐다. 몸은 엄청나게 작은데 뇌만 컸고, 그것을 얇은 뼈와 말랑한 피부로 감싼 채 덩굴처럼 가느다란 팔을 바쁘게 움직였다. 모틸리언은 우리 조상이 처음으로 존재를 확인한 높은 지능을 가진 외계 생명체였다.
학자들은 관측 위성을 활용해 지구 전역을 샅샅이 조사했고, 포스타 섬이나 그 주변은 물론 정글이나 사막, 남극권에 이르기까지 이제껏 발견되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로 다양한 곳에 모틸리언이 서식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모틸리언은 작은 집을 짓고 우리 조상과 유사한 도구 - 칼, 촛불, 그리고 시계까지 - 를 사용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모틸리언은 언제부터 지구에 살았을까.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학자들은 장기적인 조사와 적절한 소통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지만, 자신들이 나고 자란 은하계의 지배자 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한 권력자들은 모틸리언에 대한 선제공격을 결정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들을 전멸시켰다.
그 이후 지구는 긴 암흑기에 접어들었다. 우주에 자신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조상들은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며 이 행성에서 고독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해소할 수 없는 불안을 서로에게 쏟아내며 대립과 충돌, 분쟁과 박해를 반복했다. 수많은 문명이 멸망했고, 새로운 통치자가 나타났다가 덧없이 사라졌다.
--- pp.265-266

“저는 이 사건의 범인을 찾아내어 ‘천사의 아이’ 홀리 올슨의 힘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1초 후, 모든 시선이 나를 향했다.
누나의 힘을 증명한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지?
“홀리 올슨은 2년 전, 여러분께 두 가지 예언을 남겼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노먼은 주머니에서 두 개의 봉투를 꺼냈다.
“‘세계의 진실 박물관’에 재앙이 닥칠 것을 깨달은 홀리는 ‘재앙의 풍경에 포함된 것’과 ‘재앙을 불러오는 자’, 두 개의 예언을 적었습니다.
보안관에게 사건 개요를 듣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홀리가 예언한 재앙이라고요.
(중략)
“‘세계의 진실 박물관’의 가장 실력 있는 해설자이자 홀리의 동생이기도 한 월트 군은 누나의 유품인 봉투를 개봉하지 않고 지금까지 보관했습니다. 보안관님도 개봉하지 않았죠. 물론 저도요. 이 안에 누구의 이름이 적혀 있는지 아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있는 홀리뿐입니다.”
앨프가 “이리 줘보쇼” 하고 손을 내밀었다. 노먼이 봉투 두 개를 건넸다.
“저는 지금부터 논리적 추론을 통해 ○○을 죽인 범인을 밝혀낼 겁니다. 그 후에 봉투를 열고 편지를 꺼내봅시다. 거기에 범인의 이름이 올바르게 적혀 있다면 홀리는 2년 전에 이미 이 사건의 진상을 간파했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예언을 싫어하는 앨프 씨도 그녀의 힘을 인정해주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