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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커브를 돌아 굴절의 세계로
표준적인 사람/ 채석강/ 스프링클러/ 손금의 용적률/ 가죽나물 정치학/ 킹스베리, 킹스베리/ 던킨도넛/ 홀가먼트 참외/ 코듀로이 계보/ 납작복숭아/ 순환되는 애인들/ 도로반사경/ 고덕동 2부 바닥에 젖은 지문들 여주, 아직 멀었습니까/ 내 사슴으로 와/ 현기증의 맛/ 루빈의 컵/ 실업 수당/ 타밀록/ 겹겹이 거짓말/ 침/ 끝까지 서랍/ 모노레일/ 밤꽃 하얀 이야기/ 소금호수/ 오픈 북 연애 3부 주렁주렁 열리는 각과 각 사이 대관람차/ 1992년 스투키/ 이나무/ 지네가 장면 속으로 지네/ 드라이플라워, 아카이브/ 폭염을 입관하다/ 하지정맥/ 큐브 속의 여름/ 빨대/ 호수와 수련/ 매독처럼 드라이하거나 스위트하게/카프라 아브라 카다브라/ 구름은 또 돋아날 거예요 4부 해안선의 길이만큼 밤이 자라나 있다 가시오이/ 맨홀/ 성벽/ 우엉의 시간/ 분지/ 명란 언니/ 망고와 함께/ 서정적인 반달/ 수박 병동/ 운동장/ 물의 악몽/ 빨간 초 일곱 개/ 제사의 내구성/ 길을 건너는 나를 본 적 있어요 해설 사물의 현상학과 그 너머에 존재하는 ‘삶’ - 고봉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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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은 펼친 페이지 같았죠 바다가 해변을 읽으려고 올라오면 고백은 범람했고요 접힌 기억이 물에 잠기죠 오랫동안 방치한 당신은 어떤 절벽일까요
--- 「채석강」 중에서 표준을 벗어난 벚꽃들 그 사이를 걸으며 나는 표준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규격 없는 규격 미달의 봄이 내게 만개했다 --- 「표준적인 사람」 중에서 잔디밭의 잡초는 스팸메일, 지워도 지워도 다시 생겨난다 역대급 폭염은 그치지 않았고 사건을 목격한 벤치가 침묵을 강요한다 --- 「스프링클러」 중에서 아프리카 손금을 심어요 초록으로 무성해지는 감정 갈라지는 줄기는 무리에게서 이탈하려는 결심이죠 손금도 번식하면 분갈이해야 잘 자란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 「손금의 용적률」 중에서 푸르른 적 없었던 가죽나무가 붉음으로 흔들리는 봄과 여름이어서 이번 계절에는 가죽나물을 먹지 않았습니다 --- 「가죽나물 정치학」 중에서 나를 본문으로 직조한 홀가먼트 참외 앞으로는 어떤 맛에도 주석을 달지 않겠다 --- 「홀가먼트 참외」 중에서 납작한 거짓말에 묶여 삐걱거리며 회전하는 납작복숭아를 반으로 쪼갰어요 그 속에서 나온 씨는 누구의 것입니까 --- 「납작복숭아」 중에서 터널을 손가락에 끼고 다녔지 손가락으로 2호선이 들락거리기도 했지 가락지 같은 터널은 수십 년 전, 2호선이 생길 거라는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2호선이 제 몸을 들락거릴 줄 알았을까 --- 「순환되는 애인들」 중에서 잠도 물을 줘야 싱싱해진다는 걸 알았어요 출근 시간에 울리던 알람을 꺼두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 「실업 수당」 중에서 겹겹의 꽃은 겹겹의 거짓말 저렇게 많은 겹겹의 거짓말로 거울 속에서 웃고 있는 너는 입이 없습니다 --- 「겹겹이 거짓말」 중에서 칸칸의 마디를 여닫는 명분이 많은 어둠에도 손잡이가 있을까 네모의 귀퉁이를 가졌기에 삼각김밥과는 다른 모서리가 있을 거야 --- 「끝까지 서랍」 중에서 서정의 반전은 급경사에서 시작됐다 오르막길은 가파르고 험해서 너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다 --- 「모노레일」 중에서 주렁주렁 열리는 각과 각 사이에서 큐브 속의 여름은 생각도 네모로 익는다 --- 「큐브 속의 여름」 중에서 수박주스에 빨대를 꽂는 일은 수박에 말 거는 일 빨강은 누구의 혼잣말일까 --- 「빨대」 중에서 반달이 녹슬어 뻑뻑해진 밤의 나사에 기름칠을 하고 나침판도 불빛도 없이 걷는 밤 --- 「서정적인 반달」 중에서 여긴, 밑동 잘린 나무의 나이테야 물관이 흐르던 펑퍼짐한 흔적 악몽이 맴돌기 좋은 --- 「운동장」 중에서 지지대에 매달려 성장하는 가시오이는 여름을 구부리기도 펴기도 하는 그늘막이다 매달리는 일이 직업이라서 기둥 없는 기둥서방에 매달리고 햇살 없는 햇살론에 매달린다 --- 「가시오이」 중에서 코팅 벗겨진 밤에 기름칠을 하면 이 밤의 일들이 잘 구워질까요 --- 「제사의 내구성」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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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분홍의 시는 ‘사물’에 대한 이미지와 연상의 흐름을 따라 쓰였고, 독자 또한 그 연쇄를 따라가며 읽으면 사물에 대한 낯선 감각을 경험할 수 있다. 여기까지는 ‘사물의 현상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김분홍의 시에 등장하는 사물에서 맥거핀의 흔적, 그러니까 독자의 주의를 붙잡으면서도 정작 그것이 시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사물’에 대한 낯선 감각을 전면화함으로써 사물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물’에 관한 시가 아니라 그 너머의 세계에 관한 것으로 읽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 고봉준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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