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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무서리 맞아 섶이 이울다
백제의 미소/ 범종/ 천년의 하루/ 사이에 일렁이는 꽃무릇/ 꽃살의 숨결/ 부처님도 비켜앉은/ 온새미로 지는 동백/ 가을 타는 전각/ 혼불 흐드러진/ 참 사내답다!/ 아홉 번의 기다림/ 싱잉볼/ 부석사 연가/ 언제쯤 오시려는지?/ 마주 보고 웃는/ 꿈 아닌 꿈을 꾸었으니/ 바람의 처소 2부 저 물속 그토록 갈망하던, 목木 사자상/ 내 몫이 아닌 하늘/ 정토淨土/ 관음의 흰 옷자락 같은,/ 참숯/ 붉은 끈으로 엮인/ 산사에 내리는 눈/ 멀어진 마음 불러들이는/ 귀신사에 귀신은 없더라/ 화엄을 그리는 손/ 부처 품에 부처 안겼으니/ 폐지 속에서 구한 달마/ 숨은그림찾기/ 목백일홍/ 춤추듯, 취한 듯/ 잠들지 못하는 저 불빛은/ 사위지 않고 타는 화엄매/ 좌종坐鐘/ 팔만대장경 3부 울 안은 바람조차 숨을 참고 석굴암/ 비손/ 낮달도 머물렀다 가는/ 천국의 계단을 오르면/ 재래시장에서 만난 관음보살/ 향일암/ 안녕의 도량/ 무소유의 불일암/ 춤추는 소나무길 끝에 닿으면/ 산의 입속으로/ 꿈이려니 했으나 꿈 아니었음을/ 두물머리를 그리다/ 연꽃잎으로 떠받친 하늘이 정토다/ 오방색은 늪이었으니/ 버려진 생각 하나/ 입동立冬 2/ 바라춤 4부 때맞춰 내리는 서설瑞雪이 따뜻하다 간월암/ 혼자가 아닌 둘이기에/ 여여如如한/ 애절한 사랑 일렁이는 / 고란사/ 드러난 맨발이 눈에 밟히는/ 더는 구할 게 없으니/ 폐사지/ 그 곱다는 왕벚꽃은?/ 운문사 바람길/ 붉을 대로 붉은/ 꿈속 같으니/ 돌담 돌고 돌아 핀/ 민낯의 시골 아낙 같은/ 풍경, 하나도 버릴 게 없는/ 바람의 어깨가 봉긋한/ 울지 않는 종 해설 _ 불교적 사유와 수행으로서의 시쓰기 161 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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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보다 더 큰 입이 어디에 있으랴! 하늘로 향하면 욕심이 커질까 당초문 치맛단 아래 없는 듯 숨기고 세계를 품는다
--- 「범종」 중에서 피안교,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강폭이 딱 이만큼인가? 큰 걸음으로 예닐곱 떼어놓으니 저쪽인가 싶은, --- 「천년의 하루 -내소사」 중에서 격해진 숨 돌리자 미처 다 토해내지 못한 생각이 다시 꼼지락거려 찬물 한 바가지 들이켜 눌러 앉힌다 --- 「가을 타는 전각 -상원사 적멸보궁」 중에서 모나지 않은 안녕이고 위로입니다 넓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머니 뱃속입니다 떠도는 수증기였다가 잎사귀에 맺힌 새벽이슬이었다가 허공을 씻기고 빗질하는 빗방울입니다 --- 「싱잉볼」 중에서 경계에 갇히었던, 오래된 물음은 더 큰 물음이 되어 바다로 가는 --- 「관음의 흰 옷자락 같은, -정방폭포」 중에서 바다를 건너오며, 산을 거슬러 오르며 숨소리마저 버리고 왔는지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의 완성을 위해 속눈썹에 매달렸다 떨어지는 적요처럼 나도 가쁜 숨을 참겠습니다 --- 「산사에 내리는 눈 -강화 보문사」 중에서 아! 하는 탄성 스민 눈빛으로 우러러본 것만으로도 더는 두 손 마주하지 않아도 되겠다 --- 「부처 품에 부처 안겼으니 -해남 두륜산 대흥사」 중에서 까맣게 덮어오는 비구름 같은 생각 웃음으로, 눈빛으로 지울 수 없기에 우매한 염려로 더는 절벽이 아닌 절벽이 되었으니 --- 「낮달도 머물렀다 가는 -골굴사 마애여래좌상」 중에서 목숨도, 지혜도 헤아릴 수 없는 늪이다 바라볼수록 아득하게 빠져드는 --- 「오방색은 늪이었으니」 중에서 바람을 생각하다 바람길로 접어들었다. 내 바람은 늘 상투적이고 내 것이 아니라 낯설어 문장이 되지 못하였으므로 곁에 두지 못했다. --- 「운문사 바람길」 중에서 꿈도 마음이라 꿈으로 시작해 꿈처럼 이루었으니 가피와 인연이 하나 되어 꽃으로 피었으나 청이는 없고 --- 「바람의 어깨가 봉긋한 -해남 달마산 도솔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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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시편들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경계의 감각이다. 「천년의 하루」에서 화자는 피안교를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건너야 할 강폭이 딱 이만큼인가?”라고 묻고, “큰 걸음으로 예닐곱”이면 닿을 것 같은 거리로 피안을 재구성한다. 해탈이 먼 곳이 아니라 인식의 전환에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곧바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음인가 헛되다”라는 자책이 따라붙는다. 사찰은 자동으로 마음을 정화해 주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내가 가져온 번뇌를 더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이 지점에서 순례는 풍경 소비가 아니라 자기 점검이 된다.
이 시집의 미덕은 바로 그 ‘자기 확신을 의심하는 능력’에 있다. 「꽃살의 숨결」에서 화자는 꽃살 무늬를 보며 “눈먼 물고기”가 되어 “이슬과 이슬 사이”를 잰다. 절집의 장식은 장식이 아니라, 찰나의 틈을 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 더 나아가 “극락도 속세처럼 빛이 닿지 않는 곳이 있음인가?”라고 묻는 대목은 신앙의 약화가 아니라, 정토를 도피처로 절대화하지 않으려는 자세이다. 그 전환이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이 「부처님도 비켜 앉은」이다. “있어야 할 분이 안 보여” 문틈을 더듬는 마음은 사실 부처를 확인 가능한 대상으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다. 시는 그 욕망을 무너뜨리기 위해 부처를 ‘비켜 앉게’ 한다. 정면으로 붙잡으려는 순간, 진리는 한 발 옆으로 물러나며 “붙잡지 말라”는 방식으로 현현한다. 시집 곳곳에 등장하는 ‘업을 씻는다’는 주제는 물과 씻김의 이미지로 반복된다. 「백제의 미소」에서 “저 웃음만으로도… 모든 죄업 씻기고도 남겠다”는 말은 씻김의 주체가 내 노력보다는 마주침이라는 사건에 있음을 말해준다. 또한, “씻고 씻어도 씻기지 않아… 온전히 물을 맞는” 행자의 모습은 수행이 성취의 과시가 아니라 견딤의 자세임을 보여준다. 그렇게 경계가 느슨해질 때 “경계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한, 이 시집은 정토를 멀리 두지 않는다. 「정토淨土」에서 정토는 장소의 특권이 아니라, 자아를 내려놓는 순간 드러나는 세계의 다른 얼굴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재래시장에서 만난 관음보살」이다. 난전의 할머니 좌판이 “법당”이 되고, 구겨진 신문지 위의 삶에서 “자비”와 “경전”이 읽힌다. 시집 『닿은 연만으로도 한 생이 환하겠다』가 독자에게 남기는 것은 교훈이 아니라 여운이다. 범종이 밤새 품었다가 새벽에 풀어놓는 소리처럼, 이 시집은 마음 안쪽에서 어떤 감각을 오래 숙성시킨다. 거대한 계시가 아니라 ‘닿은 연’ 같은 작은 밝음, 문틈과 이슬 사이를 더듬는 시간, 비켜 앉은자리에서 확신을 내려놓는 순간이 한 생을 조용히 환하게 만든다고, 이 시집은 시인의 감각으로 증명한다. 시인의 말 그저, 오방색이 좋을 뿐 당신의 마음밭에 손 모은 기원처럼 근간에는 꿈에도 안 오시는 엄니! 올해도 단풍빛이 참 곱네요 해설 중에서 시인은 산사와 그곳의 풍경, 절집의 단청, 돌과 나무와 물을 지나며 무엇인가를 설명하기보다 몸으로 알아차리는 쪽에 더 가까이 있다. 그래서 이 시집은 순례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감각의 수행록이며, 더 정확히는 “닿는 연緣”이 어떻게 한 생을 밝히는지에 대한 집요한 실험이다. 인생을 바꾸는 것은 거대한 계시가 아니라 “닿은 연만으로도” 가능한 작은 밝음이다. 손가락을 다 벌려도 가늠되지 않던 적막의 두께를, 문틈과 이슬 사이를 더듬으며 견디는 시간, 그 시간이 한 사람의 내면을 조용히 환하게 만든다. _황정산(시인, 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