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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물빛 다 돌려놓고 별처럼 잠길 때면
각시수련/ 우산 섬/ 비상벨/ 삭정이로 타올라/ 한 번쯤은 구르프족/ 뒷주머니 처방전/ 포대기 포개기/ 꽃밥놀이/ 구석 증후군/ 큰꽃으아리/ 못갖춘마디/ 행운을 흥정하다/ 서툰 손수건/ 팀파니/ 서랍 속 쪽지 시점/ 빨간 볼펜 이후 2부 짧은 볕에 풋 익어 미숙인 줄 알았던 늦은 배웅/ 사과 몇 채 도착했다/ 모둠전의 온도/ 별 하나 달고나/ 풀의 주문/ 벙어리매미/ 달이라는 치즈/ 소한/ 이름 없는 이름에게/ 실뜨기 시뮬레이션/ 청귤의 시간/ 연緣 당기기/ 어떤 기대/ 뽕브라/ 벽돌책/ 코르크 조각 3부 햇살 한 줌 받아 둔 내일 이른 동백/ 허기도 특종이 되나요/ 포노사피엔스/ 순번 대기표/ 멸치 한 마리/ 잔혹 동화/ 딴생각 중/ 흰소리 쓰임새/ 뒷담화 쟁탈전/ 그리움을 넘기다/ 행진, 등 하나만 굴곡진/ 이런 메아리/ 병원 앞 우산꽂이/ 오래된 주전자/ 돌돌이 행진곡/ 누수의 저쪽/ 칼집의 말 4부 꽃불을 달아 줄까 빙벽/ 냅둬라 밥벌이다/ 사드리 헵번/ 그럼에도 달려가馬/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개근 거지/ 재개발 예정지/ 폐업기념일/ 휴지심도 이토록/ 8과 ∞/ 금연 건망증/ 막상 가보니/ 대한大寒 플랫폼/ 어쩌면, 맛집/ 한 여름밤의 수박/ 나무 인형 만들기 해설 _ 탄력tension과 부피volume의 시 김효숙(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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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속 구설만은 들키지 않으려고
멀찍이 떨어져서 쓸쓸을 죄던 잠이 해마다 벼르고 벼른 고백임을 증명해요 ---「각시수련」중에서 피 한 방울 투명조차 검게 변한 시간이 내려앉은 마디 따라, 가야만 하는 길 그것이 불덩이 되어 누구든 지핀다면 ---「삭정이로 타올라」중에서 늦여름 털어내며 땀을 닦는 어느 카페 몇 사람 없는데도 다 구석에 앉아 있다 구석이 구석일 수 없게 창 하나 피워낸다 ---「구석 증후군」중에서 환해서 더 저린 갈채, 아는지 모르는지 ---「큰꽃으아리」중에서 멍으로 물든 나는 꽃이 되자 다짐했어 꽃도 나도 이슬 먹는 새벽은 똑같은데 꽃은 꽃, 풀은 풀 되어 가는 길이 달랐어 ---「풀의 주문」중에서 짧은 볕에 풋 익어 미숙인 줄 알았던 나 여름이 지나고 나면 노랗게 될 수 있을까 함부로 벗겨지는 동안 모두가 의심했다 ---「청귤의 시간」중에서 한 핏줄로 묶였던 매듭 잔꾀처럼 부풀어서 탱탱해진 꿈이라도 흐늑흐늑 풀어지면 싼 티로 들떴던 바람, 눈치껏 사라졌어 ---「뽕브라」중에서 빗장 풀린 우쭐함이 먼저 목을 타서일까 언제나 그렇듯 금맥같이 쌓아 놓은 끗발이 꼬여버렸다 그 글재간 참, 뻣뻣하다 ---「잔혹 동화」중에서 행여라는 말을 물고 그 사람 서 있을까 은근한 바람으로, 볕 드는 맹지로 ---「그리움을 넘기다」중에서 어쩌다 달빛 흘러 달달해진 온도가 물을 반쯤 채워 놓은 누운 풍경 가질 때 휘파람 다시 돋아나 나는 또 적셔진다 ---「오래된 주전자」중에서 몇 겹씩 벗겨지던 감정을 자르는 건 내 몸을 덮고 있던 텁텁함이 드러나는 것 쓸모를 찾을 때마다 내 반경은 줄어든다 ---「휴지심도 이토록」중에서 무딘 손이 문질러도 펴지지 않는 주름 기다림을 파내어 무늬를 찾아낸 후 조금 더 잡아두고픈 세상을 파고든다 ---「나무 인형 만들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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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중에서]
김경미의 세 번째 시조집 『동백 긋던 마른 붓질』에서 펼치는 시인의 발랄한 발화는 당찬 표현미학에서 한층 돋보인다. 예리한 직관으로 벼려낸 삶의 문제들을 다층화한 감정으로 버무려내고, 한 방향의 바라보기를 철회하여 다각화한 관점으로 세계를 대면하며, 구체적 경험과 미학적 표현을 동시에 구현하려는 시도를 절제된 언어로 피워 올린다. 문자로 표현된 시를 시인의 정신과 분리하지 못하게 되는데 이는 시인이 시를 씀으로써 내면에 잠긴 감정의 큐빅을 맞춰 보려는 시도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다면체인 감정에 비하여 경험은 구체적이지만 경험의 감정화 단계가 시 쓰기라는 점에서 시는 본질적으로 모호한 장르일 수밖에 없다. 김경미의 단시조는 짧은 형식을 초과하여 삶의 핵심을 관통하는 힘을 지닌다. 이는 경험을 구체화한 활기찬 표현미학으로 가능한 일이다. 그 표현이 단지 기예로 머물지 않고 하나의 미학적 실천이라는 점에서 시적 진실의 가치는 높아진다. 때로는 재기 발랄한 긍정의 언어로, 때로는 풍자로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발화를 이어간다. 그러면서도 아이 같은 마음을 잃지 않으려 하는 시인의 언어에 배인 맑은 슬픔의 정조는 단지 개인의 감정을 발산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사회적 개인으로서 시인의 지향이 얼마큼 넓은 보폭을 지녔는지는 몇 편의 시만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 김경미 시인은 긍정의 언어로 세계의 밝음을 표현하면서도 이 세계의 음지를 찾아내어 풍자하는 감각을 지녔다. 우리가 바라는바 긍정성이나 올바름이란 것이 결코 한순간에 얻어지지 않는 까닭에 이 같은 탐색의 자세가 시인을 생생히 살아 있는 감각의 주체로 만든다. 현상과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에 깨어나는 세계의 면모가 부정적일 때 시인은 그곳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부정성에만 파묻히지는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깊어졌을 때 그는 한 편의 시에 자신의 마음을 옮겨놓는다. 김경미의 시는 직관과 표현 사이에 실재를 들여, 개인의 경험을 시 언어에 이입하면서 감정을 몰아간다. 세상이 급변하더라도 결코 변하지 않을 감정은 물론이고, 감각의 갱신을 거쳐야만 말할 수 있는 대상, 즉 인물이나 사물 등을 망라한 탐구의 과정이 시인 점을 분명히 한다. 이는 수시로 변하는 세계를 대면하는 시인의 감각이 생생히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만큼 그는 시조의 일신에 대한 깊은 고민을 단지 관념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건져 올리고 있다. _ 김효숙(문학평론가) * 시인의 말 너를 틔우다 앓는다. 그러다가 조금은 감싼다. 2026년 9월 김경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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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긋던 마른 붓질』이라는 시조집 제목을 품은 작품 「어떤 기대」에는 시인의 시적 지향과 미학이 촘촘히 응축되어 있다. “동백”으로 대표되는 전통적 서정과 “복제물” 같은 현대적 감각의 어휘를 병치하며 새로운 서정의 지평을 연다. 그 이면에는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위안을 길어 올리는 따뜻한 시선이 자리하며, 이는 구句로 얽고 장章으로 조인 시조 본연의 팽팽한 형식미로 정교하게 구현된다. “달고나”, “구르프”처럼 소박한 일상의 사물에서 삶의 품위를 발견해 내는 김경미 시인의 눈길은 다정하고 미쁘다. 일상과 기억을 매개로 뒤엉킨 삶을 감싸 안는 이 시조집은, 상처를 견디는 일이 혼자가 아닌 다 함께 살아가는 방식임을 깊고 아늑한 울림으로 일깨워 준다. - 문무학 (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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