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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꽃눈을 달아서 불을 밝히고
묵화/ 유성의 품, 뒤란/ 화분/ 나머지의 이력/ 수평선 당기기/ 침묵에는 씨앗이 자란다/ 예쁜 치매 입은 할미/ 사과나무 가지치기/ 아직도島에서 이순신이 쓰다/ 비대칭 전력/ 땅콩이 보낸 편지/ 집터를 닦다/ 복수초 2부 사과꽃 향기로 무르익은 노을을 던져 영산홍의 설법/ 골목을 팔다/ 한 생으로 건네는 온기/ 그녀의 뒤에는 나이테가 있다/ 병산, 갈참나무 아래에서/ 은은하거나 따뜻하여 오히려 서늘한/ 택배 상자는 집이 없다/호빵과 아버지의 온도/ 혼밥이 아프다/ 각질/ 사랑이라는 게/ 그루터기에 앉아/ 그 길에, 아들이 있었다 3부 은빛마저 버리고 저녁으로 흘러가는 물끄러미와 우두커니 사이/ 무섬을 여미다/ 등골 바라기/ 심장에도 통풍이 있다/ 구석 증후군/ 복고풍으로 노래하다/ 초롱꽃등/ 꽃일 확률/ 꽃병/ 환히 눈빛을 걸고/ 누이의 49재/ 몸에 핀 연꽃 4부 몸으로 바람을 다시 읽으니 섬과 섬 사이에는,/ 바람이 뼈를 지날 때마다/ 시, 몸으로 품다/ 산/ 꼰대/ 한때를 버리다/ 거기, 흰빛으로/ 둥긂을 위하여/ 산행을 하면서/ 투발루 섬/ 어느 술집의 독백/ 거룩한 궁핍/ 패랭이꽃 해설 _ ‘뒤란’을 위하여 전해수(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시인은 구석에 놓인 부서진 것과 습한 것들이 저무는 시간의 그림자를 따라 ‘어둠’의 풍경이 되는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며, 시를 쓰는 일도 이러한 뒤쪽의 것들을 시인 스스로 자신의 곁으로 불러들여, “빛나게 반짝이는 사물보다는 뒤쪽에서 수런거리는 것들을 (자주) 보”려 한다. 무릇 김신중 시인에게 이 ‘뒤란’은 이번 시집을 통해 “빗자루를 만들어 삶의 마당을 쓰는 일”을 시 쓰는 일로 여기는 시인 의식을 잘 드러내면서, 주변의 소외된 삶을 적시하고 그와 기꺼이 동행하고 있다. 김신중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시의 거처를 이루는 뒤란의 생명들은 시 「패랭이꽃」에 새겨진 구절 “영원이/시작된다”는 시인의 좌표를 통해 혹은 “별”빛처럼 오래도록 비추는 들꽃의 생명성에 의해 기록되고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김신중 시인의 『무섬에 밤이 오면』은 들꽃의 작은 생명이 빛을 발하며 이룬, 뒤란의 세계라 할 수 있다. _ 전해수(문학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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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머지가 인생에서 없으려나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철이 들어서도 나머지로 거리에 섰다 --- 「나머지의 이력」 중에서 기울어진 자세로 벼랑을 버티는 비대칭의 전력이 마침내 몸을 세우는 것이었다 --- 「비대칭 전력」 중에서 순리로는 피울 수 없어 칼바람 불고 폭설이 차오를 때 비로소 노란 불을 켠다 --- 「복수초 」 중에서 가끔은 사과꽃 향기로 무르익은 노을을 던져 함께 어울려 서로 감싸는 그것 또한 부석사의 사랑입니다 --- 「은은하거나 따뜻하여 오히려 서늘한」 중에서 그리고 마침내 말이 닿지 못한 자리에서 하나의 숨이 풀잎처럼 흔들리고 --- 「물끄러미와 우두커니 사이」 중에서 외나무다리에 앉아 있으면 사랑도 저만큼 떨어져 더하지 않고 이별도 삭아서 마음을 가리지 않는다 --- 「무섬을 여미다」 중에서 내 얼굴에 대고 꽃 검색을 하니 일치하는 꽃이 없단다 --- 「꽃일 확률」 중에서 중도는 구석과 구석을 연결하여 다리를 놓으려고 하지만 다릿발을 세울 땅조차 없다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 중도여 --- 「섬과 섬 사이에는,」 중에서 몸보다 늘 마음이 먼저라 이마에 번쩍, 하고 번개가 일어도 아픔을 참으면서 마음으로 시를 읽으니 이렇게는 시를 읽지 않으련다 --- 「시, 몸으로 품다」 중에서 이제 곧 산호 뿌리 하얀 외로움 그 깊은 곳에 닿을 것 같다 --- 「투발루 섬」 중에서 무의식 안에 부는 외로운 바람 소리만 술병에 떨어졌다 현실과 몽상의 들판을 끊임없이 다니면서 ‘외로움’을 매개로 끊어졌다 연결되다가 술에 취해 각자 몽상 속으로 떠났다 --- 「어느 술집의 독백」 중에서 모든 것이 살아나는 그때에 아무도 보지 못하는 곳으로 버림받는 텅 빈 몸 --- 「거룩한 궁핍」 중에서 작아서 별로 뜨고 낮아도 하늘에 닿을 영원이 시작된다 --- 「패랭이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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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 시인의 시선은 늘 사물의 앞면보다 뒤편을 향한다. 빛나는 것보다 그늘진 것, 온전한 것보다 부서지고 기울어진 것, 중심에 놓인 것보다 구석으로 밀려난 것들이 이 시집의 시에 주로 등장한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앞쪽에서 빛나게 반짝이는 사물보다는 뒤쪽에서 수런거리는 것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무섬에 밤이 오면』을 관통하는 시적 태도이다. 김신중의 시는 삶의 환한 표면을 지나 그 이면에 쌓인 고통과 외로움, 가난과 상처의 흔적을 살핀다.
이를테면 「유성의 품, 뒤란」에서 뒤란은 그러한 시선이 머무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부서진 것은 죄다 뒤란에 모인다.” 부러진 상다리와 못 쓰는 호미, 야단맞고 마음 한쪽이 떨어져 나간 아이와 훌쩍이는 누이동생까지 모두 뒤란으로 간다. 뒤란은 쓸모 잃은 것들이 내몰리는 어둡고 습한 장소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눈물겹도록 별이 많았”고, 마침내 뒤란은 “꿈꾸는 마당”이 된다. 시인은 버려진 자리의 어둠을 오래 응시함으로써 그 안에 남아있는 빛을 발견한다. 시집에는 몸의 쇠락과 늙음, 가난과 가족의 기억도 자주 등장한다. 「화분」에서 폐경운기 위에 들꽃이 피고, 화자는 얼굴의 검버섯을 바라보며 자신의 몸도 “산이 되고 화분도 되어” 낮은 들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화는 쇠퇴의 징표이면서도 오랜 삶이 만든 새로운 풍경이다. 「호빵과 아버지의 온도」에는 가난했던 학창 시절과 무뚝뚝한 아버지의 사랑이 서려 있다. 차갑게 식은 호빵은 따뜻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표현되지 못한 서툰 아버지의 온기가 남아있다. 시인은 차가운 호빵에서 오히려 더 깊은 사랑의 체온을 읽어낸다. 김신중의 시는 비루하고 약한 존재들을 향한 연민을 가지고 있다. 「혼밥이 아프다」의 혼자 칼국수를 먹는 노인, 「택배 상자는 집이 없다」의 버려진 상자들, 「각질」의 떨어져 나온 굳은살, 「구석 증후군」의 다리 부러진 의자는 모두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존재들이다. 시인은 이들을 감상적으로 아름답게 과장하지 않는다. 외로움과 피로, 버려짐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 존재들은 시인의 시선을 통해 한 생의 이력과 존엄을 얻는다. “쓰레받이” 위의 각질조차 “한 생을 버텨온” 시간의 흔적이 되며, 기울어진 의자는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받아주는 자리가 된다. 이 시집의 중요한 미덕은 상처와 결핍을 삶의 실패로 단정하지 않는 데 있다. 「비대칭 전력」에서 태풍에 부러지고 뒤틀린 나무는 오히려 옹이의 단단함으로 도끼날을 튕겨낸다. “기울어진 자세로 벼랑을 버티는/비대칭의 전력”이 몸을 세운다. 삶은 균형과 완전함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상처와 비틀림, 기울어짐이 때로는 존재를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사과나무 가지치기」에서도 잘려나간 가지의 상처 사이로 햇살이 길을 만들고, 가지치기는 꽃눈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 된다. 고통은 삶을 훼손하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빛이 들어오는 통로가 생기기도 한다. 표제작인 「무섬을 여미다」에서 시인은 저무는 무섬과 외나무다리 앞에 앉아 지나온 생을 바라본다. 사랑도 이별도 세월 속에서 삭고, “은빛마저 버리고 저녁으로 흘러가는” 고요가 찾아온다. 밤이 오자 별 하나가 내려와 “한 점 소금”이 된다. 이 소금은 눈물의 결정이며, 동시에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삶의 작은 의미이다. 이 시집에서 삶의 희망은 밤을 몰아내는 태양처럼 오지 않는다. 깊어진 밤에 별 하나가 내려와 눈물과 상처를 조용히 받아주는 그런 방식으로 온다. 그래서 이 시집을 읽으면 삶의 어둠을 견디는 작은 사물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낮고 약한 것들이 오래 버티며 피워 올린 희망의 언어가,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또렷하게 빛난다. 시인의 말 마른 나뭇가지 끝 가까이에 가 올라 보니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주로 앞쪽에서 빛나게 반짝이는 사물보다는 뒤쪽에서 수런거리는 것들이 보이고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를 쓰는 일이란 무척 의미 있는 일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 싸리비를 만들기 위해 싸리나무를 하러 갔다가 땅벌을 건드려 벌에 쏘이며 빗자루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았다. 시를 쓰는 것도 빗자루를 만들어 삶의 마당을 쓰는 일이다. 내 가슴에서 떠나보낸 시 한 편이 이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을 쓸고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당분간은 살고 싶다. 2026년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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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중 시인의 시는 상처와 결핍을 단순한 슬픔에 가두지 않고, 존재의 깊이와 따스함으로 승화시키는 ‘역설의 미학’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상처 입고 버려진 것들이 모여드는 ‘뒤란’ 같은 세상에서, 시인은 낮고 소외된 존재들의 숨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옹기 위에 떨어진 감잎 하나에 어둠이 쪼개지고, 녹슨 폐경운기는 들꽃을 품어 안아 스스로 화분이 된다. 완벽한 대칭의 삶 대신 뒤틀린 옹이와 비대칭의 기울어진 자세로 모진 바람을 버텨내는 우리들. 시인의 시선은 벼랑 끝 고단한 삶을 묵묵히 버텨내는 연약한 존재들을 향해 있으며, 묵직한 응시 끝에 마침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완성해 낸다. - 김호운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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