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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묵은지가 청보리를 기다린다 13 일요일이 만난 사람들 15 부탁 하나 18 기적을 보려면 20 평화시장 22 비 그치듯 24 당살미堂山尾 26 다구리 29 땡볕 32 단풍 34 시, 뒷모습이라도 37 이월 쫓는 촉들 40 9월 42 해 지기 전 44 아름이 46 제2부 수선사 51 남새밭 성당 53 함바집에서 56 처형 2 58 소사동 권 씨 60 춘풍이 영감 62 골드라인 64 갓데미산 66 이사하던 날 70 시 72 배웅 75 파란만장 78 제3부 궤도 이탈에 대해 81 춤 82 꽃상여 84 잔업 배 언제 오려나 86 짱뚱네 이야기 90 띠포리 93 오월 96 낡아 가는 시간에 대하여 98 택아, 니 와 전화도 없고, 전화까지 안 받는데 100 봄의 용사들이여 104 북성포구 106 사월의 당신 제삿날에 108 장마 110 제4부 작은 추석 117 남새밭 풍경 119 흉터 121 방목 장터거리 124 공단 가는 길 126 독배 127 둘안 꽃등개 2 128 응답하라, 보트피플 132 파도 134 S.O.S 136 숨 137 내동댁 138 콩대 터는 늦가을 140 해 설 김재홍 우리들 본향으로 가고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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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지가 청보리를 기다린다
늦봄 장독대 김칫독 묵은지 냄새는 엄니 등에 배인 땀 냄새다 어린 청보리 고랑은 이 가난 아직도 주저앉아 고집을 부린다 청보리야, 너는 언제 네 노란 꽃 살찌게 피워 올려 울 엄니 한껏 안아 주려나 붉은 해 뉘엿뉘엿 봉산 제집 들면 종일 달궈진 뒷강 아이들처럼 첨벙첨벙 뛰어드는 식은 보리밥 한 덩이와 띠포리 몇 마리가 작은방 동솥에서 보글보글 끓는다 묵은지 국밥 냄새가 해거름 추녀 밑을 살금살금 기어들면 꾸르륵거리는 배 움켜잡는 저 아이들 다닥다닥 해거름 지붕들도 흙담 기대 눈 붙이려 들면 해종일 지지대던 아이들과 다독다독 토닥이다 같이 조는 엄니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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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공교롭게도 군 생활 끝머리를 베고 누운 모포 속에서 온 젊음 다해 심었던 사제司祭의 싹이 촐랑촐랑 돋아 내밀다 더 자라지 못했습니다 엄니는 몹시 서러워하셨습니다 세상살이에 쓰잘데없는 그간의 공부 내버리려 애써도 달라붙어 옵니다 마치 쇼생크 감옥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린 그 자유가 생경한 바깥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죄인 같았지요 갇힌 세상에서 별안간 쫓겨나와 너른 세상 틈새만 헤집다 낡아버린 날들이 아마 시집 지을 서까래가 되었나 봅니다 새 세상 보려 어린 시들이 막 꼼지락거리니 벅차오릅니다 한 홉, 한 홉, 세상 바람 가쁘게 마시는 아름이에게 제 어린 시들을 엄니, 대신 안겨 주려고요 저 산과 들에 숨어 버린 분노들이 뛰쳐나와 내 가난한 시집 속에서라도 언 손발 녹히고 싶은가 봐요 옛적에 자라다 말고 시들어 버린 내 어린 사제의 싹처럼 이 아픔들 보듬어 키워보려고요 2026년 정월 윤혁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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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혁재 시인의 시편들을 읽으며 나는 절로 백석 시들을 떠올렸다. 물리적 시차를 떠나 두 시인 간 끈끈한 정서적 유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백석 시들이 대체로 ‘외롭고 높고 쓸쓸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정서의 음역을 드리우듯 윤혁재 시인의 시들 또한 그러한 정서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백석 시인의 시들이 지난 연대의 북방의 풍속과 정서를 대변하고 있다면 윤혁재 시인의 시들은 시인이 나고 자란 남쪽 지방의 생활 풍속과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백석의 시들이 독특한 방언의 질감으로 인간의 근원적인 정과 공동체의 기억을 환기하고 있듯이 윤혁재 시인의 시들은 고유한 부족 언어의 질감으로 사람살이의 따뜻함을 전달해 주고 있다. 그의 첫 시집 『늦봄』의 내용을 관통하는 것으로 나는, 서사 충동으로 충만한 시 「일요일이 만난 사람들」을 주목하였다. 이 시편은 시대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서민의 생활 세목이 전경화되어 있다. 시의 전언처럼 나날의 일상에서 반복 순환되는 희노애락이야말로 숨길 수 없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진실 아니겠는가. - 이재무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