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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거울들판 언덕 잠(봄) 언덕 잠(봄)―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항구마을 항구마을―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가을 물 가을 불 가을 물 가을 불―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그래, 그래, 그 잎 그래 그래 그 이파리―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대구 저녁국 대구 저녁국―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달 내음 그때 달은 제2부 새벽 발굴 낯익은 당신 우리는 촛대 해는 우리를 향하여 물 좀 가져다주어요 새벽 발굴 연등빛 웃음 흰 부엌에서 끓고 있던 붉은 국을 좀 보아요 회빛 병원 우물에 그곳으로 빈 얼굴을 지닌 노인들만 그해 사라진 여자들이 있다 오래전에 어떤 왕이 죽었다, 그때, 영변, 갈잎 붉은 후추나무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아침 그곳으로 엄마 시간언덕 그렇게 웃는 날이 계속되었다, 날개를 삶다 제3부 불을 들여다보다 별을 별이 박미자 하나가 흔들리는 의자 음악 선생님 또랑또랑 고요하게 손을 뻗다 달이 걸어오는 밤 기차역 앞 국 실은 차 동그라미 기억하는가 기억하는가 불을 들여다보다 저녁 스며드네 나무 흔들리는 소리 말강 물 가재 사는 물 나무 흔들리는 소리 아마도 그건 작은 이야기 눈 오는 밤 마늘파 씨앗 기차역 제4부 저 물 밀려오면 무너진 조각상 말 한 마리 검은 소 도시 혹은 여행 전에 읽은 여행길 잡이 가운데 『검은 소도시 여행길잡이』라는 책에 관하여 코끼리, 거미다리를 가진, 그 해변에서 달리가 그린, 그 코끼리 물지게 그렇게 조용했어,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려, 배 웃는 소리 여름 내내 기쁨이여 저 물 밀려오면 해설 | 고고학적 상상력과 시·성민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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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래, 그 잎
그 잎 여릴 적, 우리 만나 잎 따서 삶아 밥해주던 할머니집에 앉아 여린 잎에 하얀 밥 싸 먹으며 벙그러지는 입술 오무리며 깔깔거리다가 어머 어머 할머니 설겆이 많겠네, 어쩌나, 그때 그 잎 여려 할머니의 아가 같은 손힘으로도 뚝 뚝 꺾이는 것을, 그 잎 커다랗게 자라 그늘 만들고 그늘 아래 비 그으며 수박 오이가 익는 것 들을 때까지 기다리자, 하며 할머니가 떠 오는 설거지물에 마치 오랜 시간 씻듯 양은 밥주발 씻으며 할머니가 잎 옆에 달린 꽃 머리에 꽂으며 벙그렇게 웃는 것 보며 그래, 그래 저 잎 더 무성해져서 산 덮고 그 산, 잎그늘 아래 축축한 땅의 수줍은 곳 열어 버섯 돋아오르면 그때 또 할머니가 지어주는 버섯밥 먹자, 좋겠네, 저 잎 여릴 때 만나 무성하게 산그늘 될 때까지 붙어 있다가 그래 그래 할머니 머리에 꽂힌 저 붉은 꽃 좀 봐, 무슨 열대 섬 사는 아씨 같은 할머니 좀 봐, 그때까지 설거지 물에 담긴 양은 주발 새로운 시간처럼 씻으며, 그래 그래, 저 잎 그래 그래 그 이파리 ―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그 이파리 아가 적, 우리 보굴랑 이파리 따 삼군 밥 더머기던 할매 저방에 앉아 아가잎에 흰 밥 싸 무그며 벙그러지는 입술랑 오무리메 깔깔대메 어마시야 할매 설것방 많이나 되것네, 어쩔꼬, 그녘 그 잎 아가여서 할매 아그머치한 손뚝심으로 뚝 뚝 건기는 거슬, 그 이파리 커당게 자라 그늘 맹글고 그늘 비님 그브며 수박 오이 등거는 거 들을 때꺼지 기다리제, 하며 할매 떠오는 설것당물 오랜 시월 씨그듯 양은 밥주발 씨그며 할매 잎 곁에 달린 꽃 머리에 접히며 벙그럽세 웃는 거 볼 새 그래, 그래 저 이파리 무덩허덩허정해져 산메 더푸고 그 산메 잎그늘 메에 처처한 따의 수지븐 데 열어 버섯제기 도다오르메 그녘 또 할매 지어데 주는 버섯제기밥 먹자야 좋것네, 그 잎 아가 적 만나 무덩허덩해져 산메그늘 될 녘까지 어깨 두다가 그래 그래 할매 머리 녘 접한 저 불근 꽃 녘 좀 볼거나 어디 열대 섬 사는 아그 같은 할매 좀 보아, 그때꺼지 설것방 물 담긴 양은 주발 신상신시처럼 씨그며 그래 그래 저 이파리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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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은 ‘시인의 말’에서 언급되었듯, ‘반(反)전쟁시’들로 묶였다. 시인은 이 시편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한 표정으로 고정시키고 싶었”다고 말한다. 먼 이국땅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는 시인이 오래된 지층 사이에서 혹은 현재에도 끊임없이 넘쳐나는 전쟁 소식을 접하며 마치 발굴하듯 모국어로 옮긴 한 자 한 자의 시어는 ‘시’가 ‘역사’를 대할 때 보일 수 있는 한 전범(典範)을 보이며 한국 시의 지평(地平)을 넓혔다.
허수경 시인이 발굴하는 언어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낼 때 따라 나오는 부장품처럼 현재의 시간 위에서 부활한다. 그 시어들은 애잔한 고향 말로 되살아난 기억도 있지만 태반은 인류의 폭력을 고발하는 기억들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의 고고학 현장은 청동의 시간과 감자의 시간으로 층을 이뤄 발굴된다. 과거를 탐사하는 허수경 시인의 시어는 뒤표지 글에 그가 쓴 산문처럼 언뜻 “뒤로 가는 실험”처럼 보일는지도 모르지만 실은 진실을 해부하는 ‘현재의 현장 한가운데’를 꿰뚫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고학적 상상력과 여성성의 시어들로 빚어낸 언어는 다름 아닌 ‘희망’임을 감지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