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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거울 들판 언덕 잠(봄) 언덕 잠(봄)-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항구마을 항구마을-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가을 물 가을 불 가을 물 가을 불 -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그래, 그래, 그 잎 그래, 그래, 그 이파리-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대구 저녁국 대구 저녁국-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 달 내음 그때 그 달은 제2부 새벽 발굴 낯익은 당신 우리는 촛대 해는 우리를 향하여 물 좀 가져다 주어요 새벽 발굴 연등빛 웃음 흰 부엌에서 끓고 있던 붉은 국을 좀 보아요 회빛 병원 우물에 빈 얼굴을 지닌 노인들만 그해 사라진 여자들이 있다 오래전에 어떤 왕이 죽었다 그때 영변, 갈잎 붉은 후추나무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아침 그 곳으로 엄마 시간언덕 그렇게 웃는 나날이 계속 되었다 날개를 삶다 제3부 불을 들여다 보다 별을 별이 박미자 하나가 흔들리는 의자 음악선생님 또랑또랑 고요하게 손을 뻗다 달이 걸어오는 밤 기차역 앞 국 실은 차 동그라미 기억하는가 기억하는가 불을 들여다보다 저녁 스며드네 말강 물 가재 사는 물 나무 흔들리는 소리 아마도 그건 작은 이야기 눈 오는 밤 마늘파 씨앗 기차역 제4부 저 물 밀려오면 무너진 조각상 말 한 마리 검은 소 도시 혹은 여행전에 읽은 여행 길잡이 가운데 검은 소 도시 여행길잡이라는 책에 관하여 폭풍의 밤 코끼리, 거미 다리를 가진 그 해변에서 달려가 그린, 그 코끼리 물지게 그렇게 조용했어,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려 배 웃는 소리 여름 내내 기쁨이여 저 물 밀려오면 해설/ 고고학적 상상력과 시- 성민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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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상상력과 여성성이 빚어낸 희망의 언어
허수경 시인 네번째 시집 출간 ‘동서문학상’ 수상작인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이후 4년 만에 허수경 시인의 네번째 시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발간되었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독일에 건너간 지 햇수로 14년, 그의 시어는 이제 어둡고 쓸쓸한 느낌 혹은 고독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보다 근원적이고 거시적인 상상력을 발동한다. 고향인 진주 말을 살려 쓴 제1부의 ‘진주 말로 혹은 내 말로’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의 상상력’이라면 그의 전공인 ‘고대동방고고학’을 연구하며 발굴 현장에서 발로 쓴 내용들을 담은 제2부 ‘새벽 발굴’의 시편들은 시공을 넘나드는 ‘거시(巨視) 상상력’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은 ‘시인의 말’에서 언급되었듯, ‘반(反)전쟁시’들로 묶였다. 시인은 이 시편들을 통해 “우리 시대의 한 표정으로 고정시키고 싶었”다고 말한다. 먼 이국땅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는 시인이 오래된 지층 사이에서 혹은 현재에도 끊임없이 넘쳐나는 전쟁 소식을 접하며 마치 발굴하듯 모국어로 옮긴 한 자 한 자의 시어는 ‘시’가 ‘역사’를 대할 때 보일 수 있는 한 전범(典範)을 보이며 한국 시의 지평(地平)을 넓혔다. 허수경 시인이 발굴하는 언어는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낼 때 따라 나오는 부장품처럼 현재의 시간 위에서 부활한다. 그 시어들은 애잔한 고향 말로 되살아난 기억도 있지만 태반은 인류의 폭력을 고발하는 기억들이다. 이번 시집에서 그의 고고학 현장은 청동의 시간과 감자의 시간으로 층을 이뤄 발굴된다. 과거를 탐사하는 허수경 시인의 시어는 뒤표지 글에 그가 쓴 산문처럼 언뜻 “뒤로 가는 실험”처럼 보일는지도 모르지만 실은 진실을 해부하는 ‘현재의 현장 한가운데’를 꿰뚫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고고학적 상상력과 여성성의 시어들로 빚어낸 언어는 다름 아닌 ‘희망’임을 감지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