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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백엽상 | 윙스팬(Wingspan) | 가장 높은 곳으로 | 황차의 별 | 유리우주 | 휴무 | 볕을 기르기로 했어 | 물가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 물보라 이후 | 요재지이(聊齋志異) | 나의 모험 만화 | 망상 하천 2부 Act II | 히쓰지분가쿠(羊文?) 보컬과 결혼하려면 | 탕에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 | 장수민해독센터 | 좋은 것만 드려요 | 수련 일지 | 부추와 나 | 성물방 | 슈베르트 방은 말한다 | 백봉령 버터 박물관 3부 딸기의 고장에서 태어난 사람 | 바티칸에서 온 사람 | 무국적 발자국 | 겨울 나라에서 | 다 뜻이 있겠지 | 물에 빠지는 이 모든 | 폴란드식 기념품 | 차이나타운 | 눈송이를 위한 자장가 4부 첼리스트 | 걸어도 걸어도 | 스위트 나이트 | 공휴 | 토마토를 골라줘 | 여름 느낌 단편 | 상자 놀이 | 봄꿈 | 천도복숭아 나올 무렵 | 음양 자르기 5부 꼬리 연습 | 여기 지팡이 있어요 | 춘일광상(春日狂想) | 「미친 봄날 생각」 | 서칭 포테이토칩 | 십번기 | 재단사는 떠난다 | 30분째 개구리를 보는 사람 | 여름방학 | 무한 타월 | 현관을 열고 해설 미친 봄날의 끝말잇기?·?홍성희 |
김보나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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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안에 잠시 차오르는
서늘하고 부드러운 세계” ―모험 퀘스트: 세상을 입안에 넣고 굴려 맛보시오 우리 앞엔 저마다의 이랑이 숨 막힐 만큼 새빨간 딸기가 펼쳐져 있다 언젠가 찾아오는 겨울을 제철이라 믿으며 발버둥 치는 딸기, 겨우내 무르익은 못생긴 딸기, 물크러진 딸기, 작거나 멍든 딸기가 이곳에서는 전부 나의 것이다 제일 못난 딸기를 따서 가장 빨간 부분을 베어 문다 그리고 딸기의 일부가 내게 스며들게 놔둔다 ―「딸기의 고장에서 태어난 사람」 부분 『나의 모험 만화』에는 아이스크림, 팝콘, 토마토, 맥주, 감자칩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등장한다. 러닝 액션 게임의 캐릭터가 중간중간 아이템을 획득해가며 앞을 향해 달리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안고 씩씩하게 걸어가는 김보나의 모험 만화 주인공은 시집 갈피마다 숨어 있는 먹을거리를 챙겨 먹으며 여정을 이어나간다. 김보나의 시에서 무언가를 씹어 삼키는 행위는 새로운 경험을 마주하고 그것을 체화하는 방법이다. 시 속 인물들은 “말라붙은 찻잎에 끓어오르는 물을 부”어 마시며 “속에서 불씨가 타오르는”(「황차의 별」) 느낌을 감각하고, 망개떡 파는 소리를 들으며 “보얗고 차갑고 설겅거리는” 하얀 떡처럼 “손아귀에 끈기 있게 엉겨 붙던 마음”(「망상 하천」)을 떠올리고, 버터를 만들며 자신에게 내재된 “젖 먹던 힘”(「백봉령 버터 박물관」)을 깨닫는다. “타오르는 솥 안에서 익어가는” 만두송이들을 바라보며 “한 사람이 가진 천 개의 얼굴”(「차이나타운」)을 헤아리기도, “외국 사람이 손질한 게를 받아”든 채 “처음”으로 “자기만을 위해 소복한 흰밥을”(「눈송이를 위한 자장가」) 지으며 누군가를 살피고 기다리는 일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인상과 풍경이 제 몸에 “스며들게 놔”(「딸기의 고장에서 태어난 사람」)둠으로써 그들은 조금 더 강하고 용감해진다. “서로의 언어로 끝말잇기를 시작해요” ―모험 리워드: 경계(境界)와 경계(警戒)가 해제됩니다 한 사람이 곁에서 걷고 있었다 나는 산을 오르고 있었다 산악인이 아니어도 산을 즐겨 오를 수 있듯 나는 사랑의 전문가가 아니면서 한 사람의 손을 잡기도 했다 땅거미가 찾아오고 박쥐 무리가 날아가는 저녁 시력을 포기했으니까 박쥐는 어둠을 헤쳐나갈 초음파를 얻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어둠 속을 같이 걷고 싶은 사람에겐 이렇게 말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 같이 진화하자 ―「윙스팬(Wingspan)」 부분 김보나의 시 속 인물들은 모험 중 맞닥뜨리는 수많은 장소 앞에서 홀홀 경계(境界)를 넘으며 나아가고, 그 너머에서 마주하는 이들에게 “알알이 쌓아”온 “한 사람만을 위한 고백을”(「여름 느낌 단편」) 건넨다. “곁에서 걷고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서, “같이 진화하”여 함께 “어둠 속을 같이 걷”[「윙스팬(Wingspan)」]자고 속삭인다. 이 고백이 사뭇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까닭은 단순히 그에 어려 있는 진심 때문만은 아니다. “받은 모든 편지를/과일 상자에 보관하는/그런 사람”(「여름 느낌 단편」), “마음에 드는 낱말을” 차근히 “채집”(「여름방학」)하여 자신만의 사전을 꾸릴 줄 아는 사람, 늘 상대에게 “더 좋은 말을 주고 싶”[「히쓰지분가쿠(羊文?) 보컬과 결혼하려면」]어 하는 사람이 정성껏 골라낸 말들은 무게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홍성희가 짚어내고 있듯이, 김보나의 시 속 인물들은 언어에 대한 깊은 이해 아래 함부로 “믿음의 언어와 공동의 언어를” 허물지 않는다. 언제든 “진심에 대한 단정하고 다정한 가정이 깨”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이 통하기를 희망하는 바람으로 ‘사각사각’ 자신의 “언어를 더”할 뿐이다. 그 간절함을 통해 ‘당신’과 ‘나’는 “하나의 문법을, 활자를, 시공간을 공유하지 않아도” “하나의 규칙을 넘어” 연결된다. “늘/먼저 고백하는 사람으로 자”(「「미친 봄날 생각」」)라온 이 모험 만화 주인공의 단단한 전언은 낯섦으로부터 오는 경계(儆戒)를 누그러뜨린다. “타인이 건네는 목소리를/두려워하지 않아도”(「무국적 발자국」) 된다는 안도감이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음을 느끼며 “서로의 언어로” “로/로/로//노래”[「히쓰지분가쿠(羊文?) 보컬과 결혼하려면」]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시인은 더 많은 말풍선을 함께 채워나가자며 펜을 쥐여 준다. 마치 “이 모험의 끝은 친구를 만드는 일이라는 듯”(「나의 모험 만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