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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어떤 말은 그대로 몸속에 머물렀다
목덜미 /강둑에서 /아침이 오면 그곳으로 갈 수 있을까 /아름다움에 대하여 /밤마다 나는 /그런 날이 계속되었다 /동백 /어느 날 저녁 /여수 여관 /우리들의 올드를 위하여 /문 /사이 /강 /겨울 /숟가락질하다 /모자 /저녁에서 밤으로 흘러들었다 /수목원 2부 정작 너무 흰 것은 마르지 않는다 죽은 별에게 /외삼촌 /흰 벽 /안녕 /푸른 집, 그 바람 /가지를 삶으며 /물방울의 여름 /후회 /창문 /누가 입을 데리고 갔다 /담쟁이 /기억은 한동안 /응달의 눈 /사랑 /2월과 3월 /장례식 /머루 /북극성 /공휴일 3부 아름다운 것을 품으면 모든 게 사라져도 사람은 남는다 저녁이면 돌들이 /키스 /영혼이 내게 말했네 /연못 /동백, 휘파람 /바다 /중앙 /흰 눈 /흰 돌 /하늘 /나중 오는 것들 /그늘의 저쪽 /성산 일출봉 /그 집 앞 나무 /거리 /숲속의 작은 불빛 /노래 /호양나무 /그런 날이 계속되었다 해설 “붉은빛”에서 “호양나무”까지 · 김영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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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말은 그대로 몸속에 머물렀다”
발화되지 못한 채 흔적으로 남은 시간들 물살을 거스르던 청년들이 강의 이쪽과 저쪽을 건너는 사이누군가는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선택을 내리고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며, 종종 후회하고 다시 돌아보기도 한다. 그런데 또 다른 누군가는 어떠한 선택도 내리지 않은 채 현재의 자리에 그대로 머문다. 마치 박미란의 시적 화자들처럼 말이다. 물살을 거르며 “강의 이쪽과 저쪽을 건너는” 청년들을 우리는 그저 바라보고 있다. “밤마다 송충이들이 짓무른 몸으로 기어가는 것을” “임신한 고양이가 몰래 집 나가는 것을”, 산당화가 “꽃잎 붉게 하려고 손가락 넣어 토하는 것을” 나는 밤마다 바라보기만 한다. 변화/변태를 선택한 다른 존재들 앞에서 나는 “안간힘 쓰며//제 몸 지키는 일에” 몰두할 뿐이다(「밤마다 나는」). 다른 선택을 내리지 못한 우리의 마음엔 어떤 감정이 남았을까. 후회 혹은 미련? 그리고 언젠가 ‘그때 선택을 내렸어야 한다고’ 한숨 쉬며 말할 날이 오는 걸까. 하지만 박미란의 화자들은 그마저도 행하지 않는다. “맘속엔 수많은 총알의 흔적”들이 있지만, 총알이 스치면서 만들어낸 삶의 흔적들을 굳이 꺼내놓고 싶지 않다(「우리들의 올드를 위하여」). “그대로 몸속에” 머무는 말들. 선택의 길목에서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자들은 그저 맘속에 하지 못한 말들, 그것이 무엇이든, 그 말들을 자기 안으로 함몰시킨다. “끝까지 버티었으니 바싹 타들어갈까 해요” 마음속 차디찬 것들을 녹여내는 버팀의 시간 당신을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후회한다는 걸 알아요 어떤 말은 비참해서 입술에서 나가는 순간 얼음이 되어요 어느 때부턴가 차가움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소음이 심한 냉장고의 커다란 얼음덩어리에 힘들었던 적 있어요 어떻게 그걸 안고 살아왔는지 몸속의 종양 덩어리를 뱉어놓은 듯 냉장고는 멈추었어요 이제 당신을 만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차가운 당신, 당신이라는 환상을, 견디기 싫어졌어요 마음의 얼음덩어리를 들어내면 또 후회하겠지만 녹는 순간을 지켜보던 마지막 천사처럼 우리의 느닷없는 밤도 흘러갔어요발화되지 못하고 몸에 남은 것들을 화자는 그대로 얼린다. 꼭꼭 언 “얼음덩어리”로 만든다. 마치 “몸속의 종양 덩어리”처럼 냉장고 안에 놓인 거대한 얼음덩어리. 어떤 미련도 후회도 새어 나오지 않도록 영원히 보존하려는 듯 마음을 차갑게 식힌다. 하지만 그 자리를 견디고 있는 화자에게도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다. “어떻게 안고 살아왔는지” 알 수조차 없는 얼음덩어리이자 그때의 그 “환상”을 ‘나’는 더 이상 견디고 싶지 않다. 화자는 차디찬 덩어리를 녹여 밖으로 흘려보낸다. 마치 영원할 것 같았던 마음의 짐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과정은 나에게 후회를 안겨줄 수도 있겠지만, 화자는 말한다. 이러한 “느닷없는 밤도” 흘러갈 것이라고 말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듯 울부짖곤 했지만” 지나가는 시간 안에서 그리 애썼던 마음은 힘을 잃고 “시시한 일”(「겨울」)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세월에 굴복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는 동안 스스로를 단단히 버티게 해주었던 힘, “부동(不動)의 마음”(김영임) 덕분이다. 시인은 말한다. 말 못 한 것들이 마음에 쌓여 이도 저도 하지 못한 채 이 자리에 머문다고 해도, ‘아무렴 어떠냐’고. “너무 애태우지” 말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