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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소문들 군입 소문들 - 짐승 소문들 - 유파(流派) 소문들 - 권법(拳法) 소문들 - 진법(陣法) 소문들 - 전술(戰術) 소문들 - 성좌(星座) 언제 새어 나갔는지 혹은 새어 들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알 리도 없으니 소파의 기하학 심장은 통통배처럼 오늘의 운세 1 오늘의 운세 2 집으로 가는 길 사생활의 역사 네거리의 불가지론 가정요리대백과 - 숟가락 가정요리대백과 - 그릇 가정요리대백과 - 밥상 제2부 야생동물 보호구역 적어도 한번은 우리가 만났다 - 야생동물 보호구역 1 첫사랑 - 야생동물 보호구역 2 노인들 - 야생동물 보호구역 3 입맞춤 - 야생동물 보호구역 4 질투 - 야생동물 보호구역 5 나무인간 1 나무인간 2 사춘기 - 야생동물 보호구역 6 마다가스카르가 떠다닌다 밀월(蜜月) 기다림 - 야생동물 보호구역 7 고백 - 야생동물 보호구역 8 버려짐 - 야생동물 보호구역 9 바이칼 - 야생동물 보호구역 10 외전 십이지(外傳 十二支) 제3부 드라마 별사(別辭) 귓속의 알리바이 또 다른 고백 나는 전설이다 - 드라마 1 순수의 시대 - 드라마 2 개와 늑대의 시간 - 드라마 3 예고된 죽음의 기록 - 드라마 4 그의 심장은 목덜미 어디쯤에 있었다 강변 여인숙 1 강변 여인숙 2 에덴의 동쪽 - 드라마 5 분노의 포도 - 드라마 6 소호강호 - 드라마 7 슬픈 일 반죽 이야기 와중(渦中) 우로보로스를 생각함 숙맥(菽麥) 제4부 불멸의 오랑우탄 허기 불멸의 오랑우탄 필멸의 고릴라 독순술 하는 밤 노모 1 노모 2 트렁크처럼 너는 혼자였다 흘수선(吃水線) 앞에서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 멜랑콜리아 1 회전문에 두고 온 손가락 하나 - 멜랑콜리아 2 잎은 소수(素數)로도 돋는다 - 멜랑콜리아 3 물로 된 사람 - 멜랑콜리아 4, 고 박찬 시인께 환희라는 이름의 별자리 기록보관소 - A구역 기록보관소 - B구역 기록보관소 - C구역 기록보관소 - D구역 해설 : 생활 세계와 기호계의 시적 동기화 / 조강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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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들―짐승
1 창피(猖披)란 짐승이 있어, 무안(無顔)과 적면(赤面) 사이의 좁은 골짜기에 산다 야행성이라 잘 눈에 띄지 않지만 간혹 인가에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진다 팔다리가 가늘고 귀가 뒤로 말려서 비루먹은 곰처럼 생겼다 산정을 좋아해서 오르다가도 꼬리가 무거워 늘 골짝으로 떨어진다 이 짐승의 가죽을 얻으면 얼간망둥이를 면할 수 있다 2 낭패(狼狽)는 이리의 일종이다 낭은 뒷다리가 짧고 패는 앞다리가 없어서, 길을 가려면 반드시 두 마리가 짝을 이뤄야 한다 전하여 서로의 배필을 찾지 못했을 때를 낭패라 하고, 동성의 짝을 만나 겹으로 쓸모를 잃었을 때를 낭낭패패라 한다 이 짐승을 달여 먹으면 어지자지가 떨어져 한 몸이 둘이 된다 3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말이 있으니 이를 무족마(無足馬)라 한다 인적 끊긴 지 오래인 인가의 굴뚝을 끌어안고 살다가, 성체가 되면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긴 혀로 수염에 붙은 침이나 귓속의 귀지를 핥아 먹는다 한 마리에 천 냥이나 하는 귀한 짐승이어서 특별히 이 짐승 기르는 일을 업으로 삼은 자를 말전주꾼이라 부른다 4 암상이라고도 부르는 질투(嫉妬)는 암컷이고, 수컷은 따로 시기(猜忌)라고 부른다 떼를 지어 다니며 사람을 잡아가서는 벼랑 위에서 밀거나 동굴에 가둔다 육질을 연하게 하거나 소금물에 재워두기 위해서다 송곳니와 어금니가 두루 나 있어서 고기를 자르거나 으깰 수 있다 구들직장이 아니고서는 이 짐승의 눈을 도무지 피할 수가 없다 5 외설(猥褻)은 사면발이의 한 종류다 눈이 작고 앞니가 돌출해 있어서 서생(鼠生)을 닮았으나 그보다도 작고 바글바글하다 어느 구멍이든 파고들기를 좋아해서 한번 자리를 잡으면 색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하나를 잡으면 둘이 나타나고 둘을 죽이면 넷이 나타나, 마침내 온 집을 가득 채운다 더러우니 먹어선 안 된다 6 개차반 있는 곳에 파리가 있으나 개중에는 군집을 싫어하는 놈들이 있어서, 이를 청승(靑蠅)이라 한다 볕 잘 드는 곳에서 눅눅한 날개 말리기를 좋아하는데, 그러다 간혹 날개가 바싹 말라서 굶어 죽기도 한다 몸 전체가 푸른빛이어서 청백리들이 좋아한다 처마 밑에서 겨울을 나지만 뇟보나 계명워리가 드는 집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 p.12~15 첫사랑―야생동물 보호구역 2 1 파라과이의 사막에 사는 풍선개구리(Lepidobatrachus laevis)는 쓰고 버린 개짐이나 퍼질러놓은 똥처럼 생겼다 짧은 우기가 왔을 때 물을 빨아들이기 위해서다 미안하지만 버려진 것은 눈물을 삼켜도 버려진 것이다 생리나 설사를 기록해둔 첫날밤이란 없다 그는 가끔 뒷발로 서서 몸을 부풀리며 소리를 지른다 변심한 애인의 집을 찾아가…… 운운하는 주인공을 따라하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운명극이 아니라 풍선 터뜨리기 놀이다 한번 터진 풍선은 다시는 터지지 않는다 2 슬로베니아의 동굴도룡뇽(Proteus anguinus)은 오천만 년 전 대륙이 갈라질 때 북미에 사는 다른 도룡뇽과 헤어졌다 이제는 눈도 잃고 피부색도 잃고 차가운 물에서 아주 조금만 먹으며 산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걸칠 옷도 없다 그의 속살은 아프다기보다 무섭다 그에게는 방귀도 신물도 제행무상(諸行無常)도 없고 소문도 곁눈질도 호접몽도 없다 그것은 비애극이 아니라 무성영화다 다른 도룡뇽들은 오천만 년 전에 그와 헤어졌다는 것을 잊었고 이제는 그를 잊었다는 사실마저 잊었다 --- p.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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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와 의미의 울창한 숲에서의 숨은그림찾기
익숙한 어휘로 다가오는 낯선 ‘소문들’ 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권혁웅이 전작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이후 3년 만에 펴낸 신작 시집. 사물의 안팎을 두루 살펴 미적으로 투시하고 조형했던 첫 시집, 소시민층 문화의 근간을 이루었던 만화적 코드와 성인물 코드 등 7,80년대 문화적 코드를 통해 우리가 지나쳐온 시절의 아픔을 애잔하게 전달한 두번째 시집, 그리고 켄타우로스, 늑대인간, 유니콘, 강시 등 국적과 종을 구분할 수 없는 다양한 신화적 소재들로 연애시에 이야기와 상상력을 불어넣어 풍부하고 깊은 세계관을 보여준 세번째 시집까지, 매 시집마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권혁웅이기에 독자들은 더욱 큰 기대와 궁금증으로 그의 네 번째 시집을 기다려왔을 것이다. 익숙한 어휘 ‘낯설게 하기’ “소문(所聞)이란 숨기면서 풀이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숨은그림찾기 식의 글쓰기가 필요했다”라고 시인이 밝히고 있는바, 이번 시집에서 접하게 되는 “소문들”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익숙한 그림(기호) 속에 전혀 낯선 모습으로 숨어 있다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창피” “낭패” “질투” “시기” “외설” “청승” 등의 익숙한 단어들이 낯선 “짐승”이라거나, “삼성” “워커힐” “하얏트” “자금성” “대성” “롯데” “육사” “금성” 등의 특정 기업 혹은 집단을 지칭하는 명사가 “성좌”라는 식이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조강석은 “한쪽에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행태가 또 다른 한쪽에는 주로 한자의 독음을 통해 익숙한 어휘를 음차한 기표들이 자리”하는 이 「소문들」 연작이 단순한 말놀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어휘에 한자 독음을 붙여 일종의 ‘낯설게 하기’를 수행함으로써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여러 행태들을 일종의 관습적 규약으로 받아들이는 행태에 대해 (독음 차원에서) 익숙하면서도 (한자의 의미와 시각적 효과 차원에서) 생경한 기호 체계를 적용해봄으로써 일종의 관습적 의사소통의 재의미화 작업을 꾀하고 있다”고 설파한다. 특히 앞서 언급한 「소문들-성좌」의 양상은 “말놀이가 주는 재미 이외에도 기호의 지시 대상과 기의의 실정성 사이의 표리부동을 시의 전면에 노정함으로써 삶의 운행이 별자리의 진행처럼 자명하고 이치에 닿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기호들과 의미들의 울창한 숲 이번 시집의 두드러진 특징은 연작시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표제인 「소문들」 연작을 비롯해서 「가정요리대백과」 「야생동물 보호구역」 「드라마」 「멜랑콜리아」 「기록 보관소」 등, 총 68편의 시가 4부에 나뉘어 실린 이 시집에서 적게는 두 편, 많게는 열 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시가 40여 편에 달한다. 이렇게 권혁웅이 이번 시집에서 여러 형태의 연작시를 선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 조강석은 “시작(詩作)이 상식과 자명함의 베일이 덮어둔 토양 속으로 의미의 파종을 하는 행위라면 그렇게 탄생된 시편들은 기호와 의미의 나무라고 할 수 있으며 그런 시편들로 묶인 연작시들은 기호들의 숲을 이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집에 실린 여러 형태의 연작시들은 바로 이 기호들과 의미들의 울창한 숲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가정요리대백과」는 실제 요리 과정과는 상관없는 ‘숟가락’ ‘그릇’ ‘밥상’을 부제로 하고 있는데, 불행한 가정사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한 이야기 속에서 그 도구들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모종삽이 되거나 영혼을 담을 수 없거나 엎어버려질 위기에 처하는 등 해체된 가정의 모습을 담고 있고, 「야생동물 보호구역」 연작에서는 ‘첫사랑’ ‘노인들’ ‘입맞춤’ 등의 어휘들이 ‘풍선개구리’ ‘바늘방석아귀’ ‘미라빌리스’ 등의 낯선 야생동물로 고유명사가 되며, 「드라마」 연작에서는 제목과 상반되는 내용을 통해 표리부동한 상황에서 생기는 의미의 낙차를 보여주는 식이다. 권혁웅이 보여주는 이러한 시도는 언어에 입체감을 조성할 뿐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자명한 기호들의 베일, 어쩌면 이 세계를 덮고 있는 베일을 벗기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소문들”은 그렇게 왔다가 간다. 이 “소문들”은 “악전고투, 악다구니, 악무한, 악바리 악돌이 악쓴다는 말”을 좋아하는 시인이 개똥밭인 이 세계를 “악머구리처럼” “즐겁게 구르”면서 들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문이란 것이 으레 그러하듯 한바탕 휩쓸고 나면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채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이 세계에 대한 의심과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각도의 시선만은 그 “소문들”에 귀를 기울인 자들에게 깊숙이 남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권혁웅이 전하는 “소문들”은 “없으면서 있고, 없지만 있고, 없어짐으로써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네번째 시집이 힘을 갖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