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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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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문학과지성사 2025.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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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시인의 말

1부
어떤 그림 | 공원 닫는 시간 | 명령 | 아주 오래전부터 | 언젠가는 알게 될 모두의 것들 | 종소리 | 줄 | 농밀 | 기차표 | 어질어질 | 폭설 | 그런 것처럼 | 오늘의 가능성

2부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 청춘에게 | 시계를 풀어 흔들어줘 | 사랑 | 사랑 | 사람 귤(橘) | 집을 봐드립니다 | 원했던 바다 | 낮달 | 한 달 | 꼬리 | 바람과 봉지 | 나는 압니다 | 상실의 배 | 오래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사이를 유지할 수는 없다 | 완독회 | 과녁 | 몸에게 | 흙냄새 | 장미 나무 그늘 아래 | 물든 잎

3부
킬리만자로의 눈 | 우리는 누구나 바다로 간다 하지만 | 어떻게도 떨쳐낼 수 없이 모두가 그 사이 중간에 있다 | 이면지 뭉치 | 우산의 탄생 | 경력서 | 어린 시인에게 | 멀리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당신에게 |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 한쪽 날개와 반대쪽 날개 | 배역에 대한 고민 | 흰곰이 나타났다 | 기차는 칭다오에서 출발한다 | 친구 | 하산 | 인간은 연습한다 | 내가 소년의 딱지를 뗀 세상의 첫날 | 바싹 자른 연결 부위 | 누가 내게 술 한잔을 사줘도 되느냐고 물었어 | 마음은 꽃게 | 소년에게

4부
해변의 절벽 | 이것도 다 매듭을 풀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 그네 | 어느 가게 유리에 찍힌 이마 자국 | 잠시 커튼 이야기 | 환풍 | 가을의 우체국 | 이삿날 | 재워줍니다 이별은 덤이고요 | 조각들을 좋아해 | 내가 원하는 것 | 안 보고 싶은 마음 | 누락 | 공항에서

해설
사랑한 적, 사랑할 적?·?이광호

저자 소개 1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바다는 잘 있습니다』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가 있으며, 제11회 현대시학 작품상, 발견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순서대로 적어내려가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가 실수처럼 그 길로 접
1967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좋은 사람들」,「그날엔」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힘’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바다는 잘 있습니다』 등과 여행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가 있으며, 제11회 현대시학 작품상, 발견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들을 순서대로 적어내려가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다가 실수처럼 그 길로 접어들었다. 스무 살, 카메라의 묘한 생김새에 끌려 중고카메라를 샀고 그 후로 간혹 사진적인 삶을 산다. 사람 속에 있는 것, 그 사람의 냄새를 참지 못하여 자주 먼 길을 떠나며 오래지 않아 돌아와 사람 속에 있다. 달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진실이 존재하므로 달라지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전기의 힘으로 작동하는 사물에 죽도록 약하며 한번 몸속에 들어온 지방이 빠져나가지 않는 체질로 인해 자주 굶으며 또한 폭식한다. 술 마시지 않는 사람과는 친해지지 않는다. 시간을 바라볼 줄 아는 나이가 되었으며 정상적이지 못한 기분에 수문을 열어줘야 할 땐 속도, 초콜릿, 이어폰 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방적인 것은 도저히 참지 못하나 간혹 당신에게 일방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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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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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50.68MB ?
ISBN13
9788932043814

출판사 리뷰

내디딜 발 하나가 없거나
끌어당길 손 하나가 없어도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시들어 죽어가는 식물 앞에서 주책맞게도 배고파한 적
기차역에서 울어본 적
이 감정은 병이어서 조롱받는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인가 싶었던 적
매일매일 햇살이 짧고 당신이 부족했던 적
이렇게 어디까지 좋아도 될까 싶어 자격을 떠올렸던 적
한 사람을 모방하고 열렬히 동의했던 적
나를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만들고
내가 달라질 수 있다는 믿음조차 상실한 적
마침내 당신과 떠나간 그곳에 먼저 도착해 있을
영원을 붙잡았던 적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전문

사랑에는 인과관계가 없기에 이를 증명하려는 시도 역시 무용한 일에 가깝다. 표제시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의 화자는 사랑이 완성의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이 시리도록 아프게 밝혀내고 있다. 화자가 말하는 무수한 ‘적’(경험)은 이미 지나간 일도 앞으로 닥칠 일도 아닌 그 자체로 존재하는 행위에 가깝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이 시 속에는 그 ‘때’들의 나열만이 있을 뿐 문장은 단 한 번도 완성되지 않”는다며 이 시의 잠재성은 “이미 현실화된 것 사이의 선택의 층위가 아니라 현실화되기 이전의 상태, 무엇이 나타나고 벌어질지 모르는 미지의 사태”라고 했다. 이렇듯 시인 이병률에게 사랑은 “서로에게서 솟아난 영감”이고 “누구도 그들의 엉킴을 풀지 못”(「공원 닫는 시간」)하는 일에 가깝다. “당신 눈 속에 반사된 풍경 안에/내모습도 나타나기 시작”(「농밀」)했다면 이미 사랑은 제 역할을 모두 수행한 것이다. 사랑의 의미를 찾기 전에 “함께 허물어지려고 붙들고 있”(「폭설」)는 것. 내가 붙잡으려 한 영원이 불확실한 미지의 대상일지라도 그 망설임마저 단숨에 폭설처럼 껴안는 것이다.

사랑의 사건이 일어난 것을 몸은 감각하고 있지만 그 내용을 다 알 수 없어서, 망설이고 모호해지고 더듬거리는 말들의 세계가 있다. ‘생의 암호’를 풀 수 없어서 더뎌지는 말들의 세계가 있다. 그러나 그 더딘 말들이 생의 ‘후방’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랑의 리듬을 찾아내는 데에 있어 오히려 기민한 언어들을 넘어설 수도 있다. 그리고 이병률이다. 말이 더뎌지는 순간이야말로 그 마음의 리듬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이광호, 해설 「사랑한 적, 사랑할 적」에서

왜 슬프냐고 당신이 물었다
왜 슬프지 않으냐고 내가 물었다

글로 사랑에 대해 배운 적 있느냐고 소녀에게 묻지 않았다
배낭에 담은 털실을 다시 꺼내 한 발을 이빨로 끊었다
내 손목에 세 번을 감고 묶어달라고 몸짓으로 말했다
털실로 감은 것이 나인지 소원의 뼈인지 몰랐다
소원이 커다란 실뭉치가 되지 못하겠는지 털실 뭉치가 시장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여행하느라 부은 나의 발에다, 어젯밤 총에 맞은 소년병의 두 발을 끌어다 동여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싹 자른 연결 부위」 부분

우크라이나 시장 거리에서 털실을 파는 소녀를 마주친 화자는 이상 기온으로 40도가 웃도는 찌는 더위에 왜 털실을 파느냐고 묻지 않는다. 이웃 나라 그루지야에서 털장갑을 판다는 소녀의 큰오빠를 떠올리며 “털실을 온몸에 감고 날아다니다” “맨땅이 아니라 사람 품” 속에 안착하고 싶다는 되지도 않는 상상을 할 뿐이다. 시인은 “이미 죽어 있는 세상에 와 있”(「나는 압니다」)는 듯한 기분에 휩싸이다가도 다시 칭다오에서 기차표가 없는 모자(母子)의 안위를 곰곰이 살피거나 스웨덴에서 왔다는 낯선 사람을 대신해 그의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러 가겠다고 약속한다. 어딘지 모르게 아파 보이는 얼굴,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순간이면 그 앞에 우두커니 선 채로 여러 번 울컥하는 것이다. “왜 슬프냐고 당신이 물었다//왜 슬프지 않으냐고 내가 물었다”(「해변의 절벽」)와 같은 짧은 문답에는 세상의 모든 이가 귀하고 아쉽기만 하다는 시인의 순하고 담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렇듯 이병률의 시는 어제와 다름없이 사람의 자리를 살피고 그 적적함을 고요히 지킨다. 이국의 땅에서 만난 낯선 이를 경계하기보단 왈칵 믿어버리는 걸 택하는 사람. 그런 시인이 말하는 앞으로의 소망은 자주 길을 잃고, 자주 죽고, 뭔가를 그릇에 담아도 자꾸 새어나가면서 “다시는 생의 낯섦 앞에서 경악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단언하지 않겠다는 겸허한 자세는 자주 사랑을 잃고, 자주 사랑이 죽고, 겨우내 담아낸 사랑이 자꾸만 새더라도 “지금이 언제인지를 잊”(「명령」)겠다는 다짐이 된다.

그렇다면 나의 배역은
날개를 하나로 붙여버린 새

나는 한 사람의 대역이었지요
사람들은 나를 보고 그로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나도 그 사람인 척했지요
싫지는 않았기에

[……]

나는 한 자리에 있었으며 평범에 집중했지만 그마저도 평범했으며 역시 그마저도 지탱할 힘을 잃어 자처한 대역이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
이 알몸으로의 권리와 황홀함을 지속할 수 있을까요
―「내가 원하는 것」 부분

우리는 마치 사랑의 주인인 것처럼 굴지만 영원을 믿는 시인에게는 모두가 사랑의 대역에 불과하다. 그에게 사랑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잠시 수행하거나 내가 아닌 다른 이의 삶을 흉내 내는 일인 셈이다. 사랑이 끝난 후에는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되어”(「과녁」) “그 끝이 언제일까를 다시금 고민하는 배역”(「배역에 대한 고민」)이 된다는 것을 아는 시인은 “사랑을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 어떤 역할도 다 괜찮다는 자세로 사랑의 황홀함을 만끽하는 것이다. 때때로 사랑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계속해서 헷갈려 하다가 이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오해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생의 암호”는 “사랑을 감각”(「언젠가는 알게 될 모두의 것들」)해야만이 풀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병률에게 사랑은 전쟁, 팬데믹, 환경오염, 비난과 증오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된다. 언제 다시 사랑이 문을 두드릴지 모른다는 마음으로 “창문을 열어놓고 한 번도 닫지 않았”(뒤표지 글)다는 시인은 오늘도 “당신이 사는 세상 모든 틈에/열쇠를 하나씩 맞춰”(「환풍」)본다. 사랑에 인색한 시대에서 사랑의 대역을 자처하는 시인 이병률, 그의 날개에 기대어 섬세한 시적 언어들을 되새기다 보면 우리에게도 다시 사랑할 힘이 주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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