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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I 부록/내가 늘어났다/과일들/벤딩 엄마/생선이라는 증거/깨부수기/돼지가 산다/바코드/연습과 운동/도서관 사용법/오늘은 필리핀/함묵증/간단합니다/코끼리는 잘 알아/프리마켓/생각 침입자/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느낌의 문제 II 기린이 아닌 부분/스툴과 자세/차가운 귤/궁금 나무/무서운 이야기/건축 두부/꿈속에서도 시인입니다만/개와 오후/개와 수박/모르는 것/한옥순/빈티지인 이유/I can do this all day/미래의 식탁/소년 주머니/낱말 케이크/토토 메리 찰스 다다 III 론리 푸드/오늘을 여름이라 부를 수 있을까/돼지로 카드 쓰는 법/자동 조정 장치/코가 하나 눈이 두 개/일요일/탕탕 튕기자 휙 튀어 오르는/피망/기분의 도서관/그럴 겁니다/회전문/테이크아웃 잔을 들고 넘어진 사람을 본 사물들의 대화/검정 비닐/도로 주행/존재 핥기/구성원/콩나물/식물에 가까운 책 해설 범람 ? 장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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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을 무너뜨리는 명사의 도미노
『무구함과 소보로』에는 다양한 명사형 시어가 등장한다. 이들은 낱낱으로 해독되기보다 하나의 맥락으로 연결되어 독특한 영향을 주고받는다. 마치 도미노처럼 하나가 넘어져 다른 하나의 상태를 완전히 전복하는 방식으로 연쇄되는 것이다. 필통에 코끼리를 넣고 다녔다“필통”과 “코끼리”는 현실에서 거의 무관한 명사이다. 그러나 임지은의 시에서 코끼리는 필통에 넣고 다닐 수 있는 존재가 되며, 어느 순간 “보이지 않”는 대상으로 변한다. 눈여겨볼 점은 이러한 진술들이 “거짓말”이라는 명사를 통해 모두 지워지고 “오렌지”로 새롭게 등장하는 과정이다. 임지은은 당장의 진술이 바로 다음 순간에 거짓이 될 수 있다는 것, 현실에서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대상은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듯 보인다. 결국에는 필통, 코끼리, 오렌지가 바로 다음 연에서 “나”라는 일인칭으로 수렴된 뒤 “노랗게 터져”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시인은 명사가 지닌 확실성을 역으로 이용하여 현실의 모호성을 환기하고, 차곡차곡 이해를 쌓아가는 기존의 독법에 낯선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 꿈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시인은 단지 현실의 견고함을 뒤흔들고 그 불확실성을 지적하기 위해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일까. 꽃.임지은에게 시는 “쌓고 쌓는 것”이며 “쌓고 무너뜨리는” 동시에 “토닥거리는” 방식으로 씌어진다(「건축 두부」). 그가 이러한 무화의 글쓰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안과 밖’의 경계를 지우기 위함이다. “끝”이 “잘못”을 거쳐 “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얼핏 무관해 보이는 존재들이 실은 무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독자들을 생경한 지점에 옮겨놓는 것이다. 이렇듯 시인은 수많은 명사가 기존에 부여받은 의미로부터 벗어나 뜻밖의 자리를 찾아 나서길 소망한다. 모든 존재가 “긴밀하게 부서지”(「구성원」)고 변환되는 상상의 과정을 거쳐 “더 이상 갈아입을 몸이 없”(「존재 핥기」)어질 때까지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이러한 요청은 임지은이 세상에 던지는 질문인 동시에 자신의 시 쓰기를 끊임없이 담금질하는 각오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를 문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