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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빈방의 빛/인간의 소리/목소리/그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움직임/창문을 열어놓을 때 곳에 따라 비/이윽고 겨울밤/눈 내리고/자장가/안개비/이후 2부 공터를 통해/흰 개를 통해/흘러가본 거울 또 거울을 흘러가서/백설/풍등/열린 창과 열린 문/동행을 따라다니는 풍경/구름과 생물/말/심을 수 있는 마당/방죽으로/호수 눈/더 깊은 숲으로 3부 산책했죠/그 편지를/영상 밖에서/들풀 향기/가을이 오고 있었고/그리고 나는 어떻게 되었지?/물레로/여생 4부 집에서 시퀀스를 연습하세요/귀여움을 잘 아는 친구에게/이국 정서/시산제/사위는 것들 사위어가고/하루/휴일/미래는 수영장/여름을 떠올릴 수는 있었지만……/어느 주말에 이르러 침대와 의자/편지에 대해 편지 쓰는 사람을/행인들 묘사 계절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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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산책자
안태운에게 ‘나’는 한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시집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모든 대상을 아우르는 텅 빈 기표에 가깝다. 무엇도 아니기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주체인 것이다. 이러한 설정은 시인 특유의 유려한 문체와 맞물려 독특한 전이와 확장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나는 흰 개마저 잃어버렸네. 옆 사람은 나를 쓰다듬었지. 상심하지 말라고, 엎드려 흰 개의 흉내를 내며. ―「공터를 통해」 부분 나는 옆 사람과 흰 개와 함께 공터 바깥을 산책하던 중 흰 개를 잃어버린다. 그러자 옆 사람은 나를 쓰다듬으며 “상심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심지어 “엎드려 흰 개의 흉내를” 내기까지 한다. 여기서 ‘쓰다듬다’라는 동사는 하나의 통로로써 역할한다. 옆 사람이 쓰다듬는 대상인 나의 위치를 슬며시 흰 개의 자리로 옮겨놓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이 개가 될 수 있음을 넌지시 암시하면서 옆 사람이 흰 개처럼 변모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설득적으로 바꾸어놓는다. 이처럼 안태운은 개별의 차이를 부드럽게 지우고 존재와 행위를 일련의 동일성으로 연결 짓길 반복한다. 이러한 전개의 예측할 수 없는 흐름을 좇아 새로운 아름다움에 가닿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끝에 이르러 한 번 더 내딛는 발걸음 시인의 산책은 경이로운 장면 앞에서 멈춘다. 그 이미지는 “빈방, 그 사이를 통해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리”(「빈방의 빛」), “침묵 뒤 웃음. 끝없는 인간의 소리”(「인간의 소리」)처럼 공허한 여백을 채우는 음성과 함께 현현한다. 건너편 천변을 바라보게 되었다. 큰언니와 어린아이가 함께 걸어가는 장면을. [……] 언니들에 둘러싸인 채 아이는 사방을 올려다보고 조잘거리고 조잘거림을 듣고, 그럴 때 어떤 기분일까 어떤 충만함일까, 나는 그게 마냥 이어지기를 바랐는데, 그 장면은 떠나가고 어느샌가 나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계절 풍경」 부분 봄을 맞아 외출한 화자는 아지랑이, 물비늘, 푸른 하늘을 구경하다가 천변에서 여자아이들을 발견한다. 그중에서 가장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자신을 둘러싼 이 세계를 낯설게 올려다본다. 그것은 어떤 “기분”과 “충만함”일지 정확히 가늠할 수 없으나 “마냥 이어지기를” 바라게 되는 “조잘거림”의 “장면”이다. 그렇지만 충일의 순간은 내가 붙박여 있고자 해도 내 곁을 떠나간다.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처럼 간직할 수 없는 풍경으로 사라진다. 그러므로 『산책하는 사람에게』를 읽는 일은 끊임없이 흘러가버리는 이 세계의 아름다움 속에서 차마 잊을 수 없는 장면들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어제 본 풍경”이 덧없이 지나가버리더라도 그것이 “내일 볼 풍경”으로 다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을 회복하는 일이 될 것이다(「물레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