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의 말
1부 이곳은 아름다운 곳이고 선생님이 없어요 더 멀고 외로운 리타 | 왼손에 돌멩이 | 극적인 삶 | 내 생물 공부의 역사 | 깊은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 보기 | 개 이전에 짖음 | 친척과 풍력발전기 | 변절자의 밤 | 무지의 학교 | 적응하는 사람 | 월요일의 귀 | 히치콕의 밀도 | 신경정신과에서 살아남기 2부 양을 세다가 양을 세다가 이상한 노래를 기도의 탄생 | 슈게이징 포에트리 | 인과관계가 명확한 것만을 적습니다 | 내가 저질렀는데도 알지 못한 실수들 | 편지가 왔어요! | 전 세계적인 음악의 단결 | 장미에게는 왜가 없다 | 적 | 일말의 진실 | 닮은 사람들 | 양의 밤 | 뇌의 혈류량 | 폭풍의 언덕 | 몽두 3부 누구의 왕도 누구의 하인도 아닌 지혜와 거리 두기 | 우리 동네 | 거북의 살을 먹는 들개의 살을 먹는 호랑이의 살을 먹는…… | 스틸 라이프 | 농담 | 정오의 신비한 물체 | 아무도 어리석은 삶을 원하지 않는다 | 누구의 토끼 뿔 | 소문과 장례식 | 악마는 디테일 | 죠스 | 겨울의 높이 | 아이슬란드에 흥신소 | 우주 공간이 아니라 발자국 4부 쉿! 잠깐만, 잠깐만, 너는 아직 아무것도 못 들었다니까 무기여 잘 있거라 | 대관람차 | 적의 위치 | 해변과 영혼 | 의심하는 마음 | 소염제 구입 | 수도승의 숲 | 뼈의 도서관 | 반딧불이 전화를 | 용서하기는 불가능 | 불규칙하게 도래하는 것들의 폭설 | 방학 숙제 | 새로운 공산주의의 새로운 과거 | 재즈 싱어 후기 postscript 빗소리 수많은 각자의 시간들이 떨어지는 빗소리?·?이장욱 |
Lee, Jang-wook,李章旭
이장욱의 다른 상품
|
시인의 꿈에는 시제가 없고
사랑하지 못한 리타만이 남아 있다 만나러 와주어요. 여기가 불가능한 곳이라도 만나러 와주어요. 나의 먼 꿈속으로 북극에 내리는 뜨거운 비 열대우림에 쏟아지는 폭설 이곳에서 새들은 헤엄치고 펭귄은 날아다니죠. ―「더 멀고 외로운 리타」 부분 인간 무의식의 발현인 ‘꿈’은 이장욱 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이다. 이때 꿈은 시공간을 구분 짓거나 그 자체만으로 어떠한 기능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에서의 ‘꿈’은 인간세계를 초월한 또 다른 현실, 즉 이데아(idea)에 가깝다. 이때 시 속의 화자는 “불가능한 세계”에서 기꺼이 “시제가 없는 편지”(「깊은 어둠 속에서 휴대전화 보기」)를 적어 내려가며 과거, 현재, 미래 순으로 흐르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리움의 대상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사라진 이후에도 “북극에서/수유리에서/내 귓속에서” 시를 읽는 “더 멀고 외로운 리타”는 시인이 “대학 시절에 쓴 소설의 주인공”이자 이 세계가 아닌 불가능한 곳에서라도 한 번쯤 마주치고 싶은 존재이다. 시인은 자신의 귓속을 맴도는 그를 바라보며 “자가 격리 시절은 영영 끝나지 않”았고, “리타는 여전히 먼 데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후기」)을 것임을 짐작한다. 시인 백석에게 영원토록 사랑한 ‘나타샤’가 있다면, 시인 이장욱에게는 끝끝내 사랑하지 못한 ‘리타’가 있는 것이다. 이장욱 시의 문장이 아득하고 쓸쓸한 까닭은 “꿈이 괴로워서 꿈에서 계속 자살”(「무기여 잘 있거라」)을 하거나 “꿈에 나타나 백 년 후의 아침을 보여”주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건 꿈속에서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불렀을 때 아무래도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으면 “이것은 저주입니까” 아니면 “구원입니까”(「기도의 탄생」) 하고 묻는 화자의 애달픈 목소리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시인의 말에는 쉼표가 있고 최초의 목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슬프지. 슬프죠. 어디선가 옛 노래가 들려왔는데…… 낯익고 그리운 음색이었는데…… 속삭이는 목소리로 가수는 검지를 세워 코 위에 올린 채 내 귀에 대고 말했다. 들릴 듯 말 듯 머나먼 목소리로 쉿! 잠깐만, 잠깐만, 너는 아직 아무것도 못 들었다니까. ―「재즈 싱어」 부분 이장욱 시 속의 화자들이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에도 독자는 산만하다거나 수다스럽다는 인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구체적인 청자를 염두에 두지 않은 독백은 팽팽하게 감아둔 태엽이 점차 느슨해진 오르골처럼 한 음 한 음 연주를 이어나간다. 최초의 유성영화 「재즈 싱어」(1927)의 대사처럼 시의 화자는 누군가를 호명할 때에도, 그 사람에게 인사를 건넬 때도, 그러다 서로를 영영 잃은 후에도 쉼표를 사이에 두고 천천히 말을 잇는다. “하지만 이봐요,”(「더 멀고 외로운 리타」) “내가 아니라 내 사랑,”(「내 생물 공부의 역사」) “다 녹아버린 팔을 흔들며 안녕,”(「개 이전에 짖음」) “그런 건가요,”(「악마는 디테일」) “아, 그런, 것이군요,”(「재즈 싱어」). 이때 쉼표는 앞뒤 문장을 연결하는 것 이상으로 지금의 순간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시의 탁월함은 작품의 ‘완결성’이 ‘가변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쉼표는 언제든지 그 의미가 달리 해석될 수 있기에, 그건 철저히 시인이 아닌 독자의 영역으로 접어들기에 우리는 그토록 그의 여섯번째 시집을 기다려왔는지도 모른다. 잘 벼려낸 문장으로 축축한 외로움을 해부하면서도 위트를 잃지 않은 채로 가장 먼 곳의 소리부터 귓속에 내리는 겨울비까지 듣는 시. 우리가 이장욱의 시를 사랑하는 이유다. 599번. 숫자가 마음에 들었다. 600번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 어딘지 불균형한, 위태위태한, 한끝이 모자란, 그런 숫자다. 한때는 시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599번처럼 위태로워야 한다고, 한끝이 모자라야 한다고, 그렇게 안타까운 것이 있어야 한다고. ―「문학과지성 시인선 통권 600호 기념―축하합니다」, 『문학과사회』 2024년 봄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