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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공원 설계 도면 | 내일은 말고 어둠만 오라 | 장소력(場所歷) | 덜미 | 계단참 | 식물 식별 의지 | 식물 식별 능력 | 물고기는 알아서 한다 | 사생활과 동거 감각 | 우리가 가까이 산다면 수박을 반 덩이씩 나눠 가질 수 있을 텐데 | 번성 | 손다운 손 | 내밀의 빛 | 적응 | 일조권 사선제한 2부 독도법 | 주소력(住所歷) | 녹천 | 야영장 설계 도면 | 정전 설계 도면 | 미술관 관람 속력 | 절화 꽃다발 | 결계 | 해로운 장난 | 이로운 농담 | 연대 | 신앙 | 평택 안정리 양장점 | This video is playing in picture in picture | [1보] [9보] [12보] | 청진 | 폐곡선으로 닫기 3부 여우의 귓바퀴 | 인터로킹 | 거리 감각 | 모과 | 조계지 | 증축 | 과일을 나눠 먹는 사이는 정해져 있다 | 운동회 | 방학식 | 풍경을 흘겨보기 | 객토 | 해발 | 해루질 | 프로토콜 | 우전 4부 물수제비뜨기 좋은 돌 | 외연 | 대체 가능한 사람 | 투명도 | 윤곽 해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 ·?하혁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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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소는 사람과 같아서 떠나야 할 때를 인정해야 해”
더는 ‘나’가 아닌 무수한 ‘나’를 사랑하기 위하여 새집을 향해 선선히 걸음을 옮기는 오늘의 성장한 ‘나’ 조그만 사람에게선 갖은 애를 쓴 냄새가 난다. 초등학교와 유치원, 작은 보습 학원이 줄지어 있다. 하교 시간에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이 지나가면 햇볕 냄새가 났다. 타향이 고향이 되는 거야. 어지럽게 짐이 펼쳐진 거실 마루에 앉았다. 반나절 만에 다른 곳으로 왔구나. 달라지기보다 달라지기를 결심하는 시간이 길고. 본가가 어디냐고 물으면 태어난 곳을 말해야 할지, 자라온 곳을 말해야 할지, 부모님이 계신 곳을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한 사람의 생애를 요약하면 장소들이 남는다. 잘 자라다 가요. ―「주소력(住所歷)」 부분 장소마다 아이가 있습니다. [……] 기억 속에 없는 장소에서도 아이는 자라났을 것입니다. 비지땀을 흘리며, 갖은 애를 쓰며. 제가 경험해본 타자는 이 아이들이 전부입니다. 한때 나였으나 더 이상 내가 아닌, 작은 사람. ―2023년 『현대문학』 신인추천 당선 소감에서 이번 시집의 제목을 품고 있는 데뷔작 「주소력(住所歷)」을 비롯한 그의 시편들을 두루 살펴보면 “봉주연의 시적 주체에게 존재의 ‘자리옮김(deplacement)’, 즉 이사(移徙)는 필연한 운명”(하혁진, 해설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지」)임을 알 수 있다. 다양한 관계와 기억이 쌓인 터전을 떠나는 일은 힘들기 마련이므로 우리는 늘 지금 서 있는 “이곳은 나를 밀어내지 않았으면”(「물고기는 알아서 한다」) 하지만, “한곳에서 시작된 불씨는 그 장소에서 끝이 나야”(「일조권 사선제한」) 하므로 기꺼이 미련의 불을 꺼뜨리고 길을 나서야 한다. 그 어떤 머묾도 결국 긴 여정의 일부일 뿐, 영원한 잔류란 불가하다. “집을 옮기면 새로운 버릇을 만들어야”(「적응」) 하므로 이동은 반드시 적응을 요하고, 적응은 곧 성장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봉주연의 시 속 인물들은 떠나온 장소마다 남아 있는 ‘나’가 아닌 ‘나’들을, 새로운 도착지에 알맞도록 몸과 호흡을 바꿔온 아이들을, “달라지기를 결심하”고자 “갖은 애를 쓴” “조그만 사람”들을 특별히 기특하게 여기지도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보지도 않는다. ‘성장력(成長歷)’이 된 자신의 주소력을 더듬어 내려가며 “잘 자라다 가요”[「주소력(住所歷)」]라는, 차분한 온도의 말 한마디를 건넬 뿐이다. 그들이 과거를 향해 고하는 작별이 단호하고도 다정한 까닭은, 헤어짐의 필연성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태도가 포기나 체념과는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시 속에서 인물들은 “방을 떠난 이후에 방을 실감”(「공원 설계 도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아쉬워하면서도 머물던 곳을 떠나고, “허물기에 크다면 유지하기에도 너무 크다”(「적응」)는 것을 알기에 버거워하면서도 추억이 깃든 장소를 허문다. “내일 현관문을 열었을 때도 오늘과 같이/이 집을 사랑하기 위하여”[장소력(場所歷)], 봉주연의 시적 주체들은 언제라도 “사랑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손다운 손」)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계단이 있다는 것만으로 이곳은 사람을 불러 모으게 될 거야” 나날의 풍경이 다르리라는 믿음으로 오르내리는 계단 그 끝에 둥그런 식탁의 훈기가 기다리고 있기를 [……] 나선계단을 오르면 어느 날에는 레코드 가게가 되었다가 어느 날엔 거실이 되고, 어느 날엔 헌책방이 됩니다. 사고 싶은 책을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꽂아 넣고 다음 날 다시 찾으러 오는 마음. 그러고도 사지 못하고 다시 더 깊은 구석에 꽂아 넣는 것. 그림자는 내 옆으로도, 앞으로도 생겨날 수 있는데 항상 뒤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곡해하며 자라났습니다. ―「계단참」 부분 건물이나 비탈에 붙박인 설비로서의 부동성과 보행자의 움직임을 위한 층층대로서의 이동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는 점. 봉주연의 시 전반에 자주 등장하는 ‘계단’이 곧잘 ‘현재’에 유비되는 것은 이러한 특징과 무관하지 않다. 출발을 위해 발을 뗀 곳과 걸음을 마치고 이를 곳 사이에 자리한다는 점에서 계단은 현재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 불안정하게 놓여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시인이 계단의 비유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따로 있다. 우리는 현재를 한 계단 한 계단 꼭꼭 눌러 밟듯 살아내야 한다는 것. 즉 지금 여기의 “삶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다”(「우리가 가까이 산다면 수박을 반 덩이씩 나눠 가질 수 있을 텐데」)는 것. 오르거나 내리거나. 이 두 방향으로의 이동만을 전제하는 계단은 드라마틱하기보다는 단조로운 우리 삶의 이별들을 닮았다. 따라서 계단을 통해 다다를 곳이 “어느 날에는 레코드 가게가 되었다가 어느 날엔 거실이 되고, 어느 날엔 헌책방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일종의 “곡해”(「계단참」)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시집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하혁진이 짚고 있듯 “이러한 맹목은” “기어코 살아낸 시간과 겪어낸 장소들이 남긴 결과”로서 그 자체로 “삶의 정처가 되어주기도 한다”. “곧이곧대로 믿는” “최선”(「해루질」)으로 순간순간의 감정을 충실히 감각할 수 있다면, 현재에 몰입함으로써 사소한 낯섦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면 계단에서의 이동은 결코 반복적인 움직임에 불과하지 않다. 계단 끝에서 마주할 실제의 풍경이 더는 중요하지 않을 때, 그것이 결국 뻔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언정 우리는 “진심으로 놀랄”(「해로운 장난」) 수 있으며 맹목은 그렇게 진실이 된다. 이주와 정착을 거듭하는 이상 “몸에 계단이 각인되어 있다”(「외연」)고 보아도 무방한 우리의 힘센 믿음은 언젠가 마지막 층계 끝에 서로 잠시간 따스함을 나눌 수 있는 ‘식탁’을 놓아둘 것이다. “식탁에 모여 앉은 어제와 내일과 당신”(「내밀의 빛」)과 함께 “밥을 먹고 나면 손발이 따뜻해져 있”(「절화 꽃다발」)을지 확언할 수 없지만, “정말 따뜻해질까, 알기 위해선 정말로” 그 식탁에 “앉아보는 수밖에”(「프로토콜」) 없다. 끝끝내 찾아올 이별을 유예하며, 하루하루 새로운 마주침을 기대하며,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는 “사람들과 오래 있고 싶어서 아주 느리게, 끝까지 밥을 먹”(「풍경을 흘겨보기」)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