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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 /인간의 교실 /기시감이라는 설명서 /축제의 인상 /인공과 호흡 /외출 /외출 /모든 것의 근처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 /밸브 /인공과 호수 /인과 /많은 믿음 /조경사 /햇볕에 비춰진 먼지가 빛나고 있었다 2부 풍경의 표현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 /가상의 침묵 /필체의 뇌 /호수의 공원 /눈사람이 어는 동안 /문구文具 /인간의 가벽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 /방향 3부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생동 /설명의 마음 /풍경의 표현 /고통의 영상 /바람 없는 추위 /모드 /미스트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 /미간의 희망 /옥상에서 내려오는 동안 해설 김종훈 어두운 기도의 형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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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른다’라는 사건의 발생
전모를 알 수 없는 흐릿한 형상 ‘내’가 ‘너’를 부른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쉽게 ‘너’를 부르는 ‘나’의 얼굴도, ‘내’가 부르는 ‘너’의 얼굴도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 총 아홉 번에 걸쳐 등장하는 제목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이라는 구문에서 독자는 ‘나’ 혹은 ‘너’라는 존재를 빠르게 떠올릴 수 없다. 누가 누구를 부르는 것일까. 그 누군가를 찾는 누구는 또 어떤 이란 말인가. 누군가 대답을 한다 네가 사라지기 전에도누군가 주위를 둘러보고 또 누군가 그에 대답을 하는 시적 공간이 있다. 그런데 그 공간엔 아무도 없다. 누군가 있었던 공간이었던 것도 아니다. “네가 사라지기 전에도” 너는 없었던, 빈 공간일 뿐이다. 누군가를 부르는 말이 있었던 것 같지만 사실 부른 사람도, 불린 사람도 불명확하다는 것이 이 시집의 공간성이다. 이 모순된 공간에서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즉, 부른 사람을 찾는 ‘얼굴’은 사실 텅 빈 기표에 가까운 것이자 명확하게 말할 수 없는 뚫린 구멍에 가까운 형태에 불과한 것이다. 구워지지 않는 쿠키의 타는 냄새 모순된 시공간 주변을 맴도는 언어 시인이 ‘부른다’라는 사건에 관해 반복적으로 쓴 것은 아마도 ‘부른다’는 행위가 가지는 중요성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선 우리에게 특정한 대상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과거에도 있었을 테고, 현재에도 미래에도 명확한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너는 누군가 쿠키를 구워 선물한다면 거절하겠다고 한다획일하게 진행되는 시간, 축적되는 시간이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시간이라면, 최정진의 시에선 그 개념이 달라진다. “누군가 쿠키를 구워 선물한다면” 너는 그 쿠키를 거절할 생각이다. 거절을 하기 위해선 쿠키가 구워지고 있다는 것이 전제일 테지만, 그다음 시인은 곧바로 “쿠키가 구워지지 않”는다며 전제를 부정한다. 굽지도 않았는데 “쿠키 타는 냄새”는 또 무엇인가. 구워지지도 않은 쿠키의 타는 냄새가 맴도는 공원에서 시적 화자는 “쿠키를 구울 반죽을 해야 한다고 중얼거린다”. 결국 시간은 공원을 맴도는 냄새처럼 돌고 돌아 반죽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쿠키를 굽는 시간, 쿠키가 타는 시간, 쿠키를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시간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반죽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렇게 최정진의 시에서 시간은 “축적된 시간을 지닌 여느 시와 달리 홀로 동떨어진”(김종훈 문학평론가) 것으로 현재에 머문다. 다시 한번 ‘부른다’라는 사건에 대한 애기를 해보자. ‘부른다’는 것은 흐르는 시간 위에서, 과거에서 미래까지 쭉 진행되는 곳에서 가능한 개념일 것이다. 반복적으로 현재로 복귀하는 시간, 부른 사람도 불린 사람도 특정할 수 없는 시공간에서 상상할 수 있는 사건은 아닌 것이다. 최정진 시집의 시공간은 결국 ‘부른다’라는 서술어의 대상이 되는 언어를 명확히 지시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정박하지 못한 모습으로 대상의 주위를 맴돈다. 마치 구워지지 않은 쿠키 타는 냄새처럼 말이다. 진리에 다가서는 시가 아니라 “중심을 향하되 그 근처에” 머물며 “모든 것의 근처를 제 시의 터전”(김종훈)으로 삼는 시가 바로 최정진의 시가 놓이는 바로 그 장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