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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농담 한 송이 그 그림 속에서 이 가을의 무늬 이국의 호텔 베낀 포도나무를 태우며 네 잠의 눈썹 병풍 2부 딸기 레몬 포도 수박 자두 오렌지 호두 오이 포도메기 목련 라일락 3부 동백 여관 연필 한 자루 우연한 감염 문득, 너무 일찍 온 저녁 죽음의 관광객 내 손을 잡아줄래요? 나비그늘 라디오 온몸 도장 아침식사 됩니다 돌이킬 수 없었다 아사(餓死) 나의 가버린 헌 창문에게 우산을 만지작거리며 4부 수육 한 점 사진 속의 달 발이 부은 가을 저녁 방향 우리 브레멘으로 가는 거야 루마니아어로 욕 얻어먹는 날에 매캐함 자욱함 운수 좋은 여름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유령들 빙하기의 역 가을 저녁과 밤 사이 너, 없이 희망과 함께 지구는 고아원 푸른 들판에서 살고 있는 푸른 작은 벌레 겨울 병원 5부 눈 엄마와 나의 간격 네 말 속 지하철 입구에서 가짓빛 추억, 고아 설탕길 카프카 날씨 1 언제나 그러했듯 잠 속에서 카프카 날씨 2 카프카 날씨 3 밥빛 나는 춤추는 중 해설 | 저 오래된 시간을 무엇이라 부를까 | 이광호(문학평론가) |
허수경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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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이라도 단 한 빛으로 모둘 수 없어서”
생과 죽음을 넘어서는 깊고 오랜 시간의 감각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시인의 말)은 어쩌면 내 삶에서조차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하여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으로 우리 모두의 채우지 못한 마음의 공동(空洞)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한때 생생했던 그 모든 생과 기억도 시간의 힘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고, 남아 있는 우리가 그 의미를 알아내기란 영영 불가능할 터. 시인은 “토해놓은 사랑과 죽음으로도 돌이킬 수 없던”(「나의 가버린 헌 창문에」) 생에 대한 감각을 다시 시간의 감각으로 옮겨놓는다. 삶도, 사랑도, 기억도 “모든 죽음이 살아나는 척하던/지독한 봄날의 일/그리고 오래된 일”(「오래된 일」)이라고. 남은 우리는 그 ‘오래된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름 불러야 하는지, 또 무엇으로 남아 현재의 시간을 비추고 있는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고. 눈앞에 타들어가는 포도나무를 바라보며 오래된 시간에 대한 상상과 뼈아픈 시간에 대한 쓸쓸한 질문을 보태는 일이 ‘장례’와 ‘애도’ 그리고 ‘어루만짐’의 시간이 될 수 있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잘 가, 라고 말하는 순간” 깊숙한 고요와 오래된 시간을 품은 영혼의 이름들 차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시인의 상상력은 그의 실존적 몸과 영혼의 기억을 한껏 확장시켜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를 한데 불러 모은다. 그렇게 ‘내 속의 할머니, 아주머니, 아가씨, 계집아이와 고아’, 다시 ‘내 안의 노인과 신생아와 태아’의 중얼거림이 “고요한 연”처럼 이어지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며 “기별의 기척”을 건네고 헤어진다.(「빙하기의 역」) 시간의 지도를 그려볼 수 있는 여러 겹의 계절을 소환하는 일도 허수경의 시에서는 독특한 이름과 무늬를 낳는다. 밤과 새벽의 틈새에서 열매 맺은 모든 “당신이 나에게 왔을 때”(「딸기」), 시인은 ‘아주 영영 익어버린 환한 봄빛’을, ‘손바닥처럼 구겨지며 몰락해가는’ 지난여름의 꿈을(「레몬」), ‘익은 속살에 어린 단맛으로 눈치채는 말 이전에 시작된 여름’을(「자두」), 그리고 ‘그대 영혼 쪽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싶어 한 욕망과 가을의 살빛’(「호두」)을 동시에 꿈꾼다. “아무도 그 심장을 거두지 않던 오후여” 삶의 지반을 뒤흔드는 이상하고도 불안한 날씨 한편, 이방인의 운명을 타지에서의 실존의 삶으로 이어가는 시인에게 모국어만큼이나 절실하고 그래서 의지하게 되는 것이 모국의 존재였을 것이다. 때문에 세월호의 유가족들, 정권의 폭력에 희생된 시민들, 하루하루 알바를 전전하며 불안한 미생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국가의 보호는커녕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불순 세력’으로 전락하고 고국 안에서 또 다른 ‘이방인’으로 내몰리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충격이 되고 말았다. 이는 마치 이국의 거리에 선 그가 눈앞에서 목도하는 풍경, 전쟁과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중부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행렬과 그들 앞에 국경의 빗장을 내건 유럽국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이 “이상하고도 불안한 날씨” 속을 걸어가는 시인이 계속해서 ‘무엇이었을까’ 묻고, 살아남은 우리만이라도 쉬지 않고 ‘기별의 기척’을 건넬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늠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당신과 내가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일은, 남아 있는 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서로를 베끼는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이 시작된다면, 그 상상력조차 이런 질문의 일부가 될 수 있다. [……] 위로는 불가능하지만, 불가능에 대한 노래는 다른 시간의 잠재성에 가닿는다. 시는 그 시간이 다시 올 거라고, 당신과 내가 다시 만날 거라고, 혹은 오래전 그 순간이 영원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오히려 저 뼈아픈 불가능 속에 남아 있는 오래된 시간의 영혼을 대면하게 한다. 영원성은 미리 주어져 있지 않으며, 시간을 지배하는 단일한 영혼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오래된 시간의 영혼은 시적인 이행의 순간 탄생한다. 또 다른 시적인 시간이 도래하는 그 순간, 시간에 대한 날카로운 애도는 시간의 고독을 둘러싼 미래가 된다.” ―이광호(문학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