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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위스키봉봉 007
아빠는 비엘을 읽지 않는다 037 룸■룸 071 그만한 하루 101 연휴 129 거울 나라가 온다 151 속삭이던 별들은 사라지고 181 해설 ∥ 성현아(문학평론가) 고통의 벽지화 227 저자 후기 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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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는 챗지피티와 주고받은 문답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회사 서비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계가 어려워 앱에 의존하고, 마음이 어려워 AI에 의존하고. 상황에 맞는 매뉴얼이 항상 있으면 참 좋을 텐데…….
--- 「챗위스키봉봉」 중에서 해가 바뀌도록 동규 씨는 계속 웹소설을 읽었다. 윤서는 이번에는 로맨스를 보관함에 내려받았다. 동규 씨가 한동안 건드리지 않아 역시 싫어하나 싶었는데 며칠 뒤에 읽은 흔적을 발견했다. 주인공이 여자라도 판타지기만 하면 좋아하는구나. 가부장제를 전복하는 내용이라도 재미만 있으면 꺼리지 않는구나. 연애 장면이 길어지면 싫어했지만, 문장이 수려한 소설은 완독하기도 했다. 동규 씨의 취향은 생각보다 폭이 넓고 유연했다. 그 포용력을 왜 일상생활에서 발휘하지 못한 걸까. --- 「아빠는 비엘을 읽지 않는다」 중에서 팬지는 봄에 피어난다. 유리병에 팬지와 레몬을 담아 설탕물을 붓고 며칠 기다리면 투명한 물이 연분홍색에서 자주색으로 변한다. 원액에 얼음을 넣고 탄산수를 부으면 팬지 에이드가 된다. 풋내가 날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달달하니 맛있어서 봄을 기다리게 되었다. 여름마다 꾸역꾸역 울어대는 매미가 대견해지기 시작했다. 가을에 빨갛고 노란 단풍잎을 주워 다이어리를 꾸미는 데에 재미 들였다. 함박눈을 보며 마시는 와인이 그리 맛이 좋았다. 그러니 훔쳐야지. 삶이 죽음을 침범하거나 죽음이 삶을 침범하기 전에. --- 「그만한 하루」 중에서 “누가 버튼을 눌렀을까.” 그는 혼잣말인 것처럼 중얼거린다. 규이가 입에 든 걸 삼키고 얼른 대꾸한다. “전부요.” “전부?” “네. 다들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었나 봐요.” --- 「거울 나라가 온다」 중에서 이담 이해해요. 세율 이해해요? 이담 저도 무뎌지고 싶어서요. 하지만 목격해버렸는걸요. 세율 무엇을? 이담 아무도 사과하지 않음을요. 여자가 찻잔을 들어 올리다가 멈칫한다. 이담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어요. 명칭만 바뀌었어요. 스페이스 데브리에서 낙하물로, 데 브리 충돌에서 낙하 사고로. 어쩌면 교통사고도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사실은 모든 게 그런 식이었는지도 모르죠. 방구석에 쓰레기를 밀어 넣듯이 슬슬 미래로 밀어 넣어버린 거예요. 덕분에 쓰레기 속에서, 쓰레기를 먹으며, 쓰레기에 맞아 죽을 걱 정을 하며 살아야 하죠. 세율 비관적이네요. 이담 어떻게 낙관적일 수 있겠어요. 세율 호모콰렌스잖아요. --- 「속삭이던 별들은 사라지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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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날 사랑하지 않지.” (〈아빠는 비엘을 읽지 않는다〉)
실패가 예견된 소통의 매개 두꺼운 벽을 더듬는 간절한 손길 경쾌한 리듬과 정제된 문장이 빚어낸 굴곡을 타고 여울지듯 스며드는 7가지 이야기 고민실 소설 속 인물들은 동시대의 매개를 경유해 타자와 접촉한다. AI, 웹소설, CCTV 등 비대면 도구로 이루어지는 교류는 점차 그 한계를 드러내며 오늘날 우리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 표제작 〈챗위스키봉봉〉의 주인공 선우는 직장 상사와 데이트를 즐기고 호감을 느끼지만, 그에게 적극적으로 연락하는 대신 챗지피티에게 상대방의 마음에 관해 물어보고 조언을 구한다. 달콤한 편의와 과도한 의존에서 오는 섬뜩함. 달달한 초콜릿 속에 알싸한 위스키를 넣은 디저트 ‘위스키봉봉’처럼 양가적 감각을 불러오는 AI를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아빠는 비엘을 읽지 않는다〉의 윤서는 8년 전 이혼한 아빠 집에 얹혀살게 되며 무뚝뚝한 그와의 소통을 고민한다. 독립과 이혼으로 멀어진 부녀간 거리는 윤서가 웹소설 사이트 아이디를 공유해주며 조금씩 좁혀지는 듯 보이지만, 무협과 비엘처럼 너무도 다른 취향이 오히려 서로의 간극을 부각한다. “재미있게 읽던 소설을 불편한 표현 때문에 포기한 경험”도, “소설 속 주인공들이 모두 자신과 다른 성별이라는 데에서 오는 괴리감”도 없을 아빠와 윤서는 다시 가까워질 수 있을까. 점차 더 좁은 공간으로 짓눌리는 현대인을 그린 단편 〈룸■룸〉에서 ‘나’는 건물 출입구에 설치된 CCTV 화면을 통해서만 이웃의 동향을 읽는다. 생활고로 인해 비좁은 방을 넘어 장롱으로까지, 기록될 수조차 없는 어두운 공간으로 구겨진 좌절은 끝내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고 사그라진다. “너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어. 죽음이 아니라 장례까지가 너의 책임인 것만 같아서.” (〈그만한 하루〉) 고립된 개인이 공허한 미래에 가하는 서늘한 균열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직장인, 정신이 온전치 못해 자꾸만 길을 잃는 노인, 글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어린아이 등 고민실은 신뢰할 수 없는 화자를 내세워 공허한 미래를 향한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납치되거나(〈연휴〉), 방치되거나(〈그만한 하루〉), 취조를 받는(〈거울 나라가 온다〉) 이들이 노출된 폭력적 상황엔 붕괴할 조짐을 보이는 사회가 담겨 있다. 〈연휴〉의 ‘나’는 자기 이름조차 흐릿하고 납치까지 당한 난감한 상황에서도 의미 없고 반복적 노동만 강요하는 직장에서 해고당하지 않을지 걱정한다. “더 나은 기술이 더 멋진 세상으로 데려다”준다는 광고 문구를 “더 멋진 세상으로 데려다주지 않으면 후진 기술”이라고 비튼 ‘나’의 독백에는 기술 발전과 인간 삶의 윤택이 비례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내포되어 있다. 〈그만한 하루〉는 인지저하증에 걸려 안락사 캡슐을 살 돈을 훔치려는 ‘나’와 ‘너’의 여정을 그린다. 캡슐 사용법을 되짚는 사이에도 침범하는 과거의 죄책감과 기억에 끝내 또 다른 “하루를 더” 사는 ‘나’의 모습엔 죽음을 선택하는 행위에 따를 책임과 무게가 묻어난다. 밤나무에 돋아난 버튼을 눌렀더니 겨울만 계속되는 세상이 찾아왔다는 SF적 상상력이 빛나는 소설 〈거울 나라가 왔다〉에서 버튼을 최초로 목격한 아이 ‘규이’는 ‘겨울 버튼’을 홀로 ‘거울 버튼’이라고 읽는다. 규이의 가정에 반복되던 폭력을 묵인하던 어른들과 규이의 ‘오독’은 올바른 세상과 성장이라는 개념에 균열을 가한다. “커다란 주걱으로 세상을 푸스를 수만 있다면.” (〈아빠는 비엘을 읽지 않는다〉) 애써 일구어야 겨우 마련되는 평온한 일상을 위하여 좌절에 무뎌지는 대신 더욱 벼려내는 집요한 물음들 고민실의 소설은 제목이나 설정에서 유발되는 발랄한 분위기와 달리 밝지 않은 예지와 날카로운 질문으로 점철되어 있다. 201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평에서 “알려지지 않은 것, 은폐된 것, 금지된 것을 말하려는 용기”를 가진 작가가 되리라는 평가와 기대를 놓지 않고 끝없이 골몰해온 결과이리라.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 《영의 자리》 《홈 가드닝 블루》 등 오랜 시간 천착해온 외면받는 존재들을 향한 관심은 그들이 발 딛고 선 세상으로 한층 그 영역을 넓혀 전개된다. 저자 후기에서 “숫자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경험이 곳곳에 묻어 있다”라고 밝혔듯, 고민실은 어두운 미래에 대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포기하거나 절망하는 대신 결연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언젠가 익숙해질 재난만이 반복되는,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 세상을 그린 소설 〈속삭이던 별들은 사라지고〉에서 수천 조각 퍼즐처럼 제각각인 증언이 쏟아져도 한 사람을 기억해내려는 이담처럼, 고민실은 오해와 오독을 감수하고서 묻고 또 물을 것이다. 요동치며 격변하는 세상에서 소설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증명하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