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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의 온기
김혜진
창비 202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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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시/희곡 88위 소설/시/희곡 top10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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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 한마디

소설이 전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온기
김혜진 소설 같은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차별, 타인의 냉대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의연한 선의로 이 세계를 대하는 곧은 자세. 여섯 편, 어느 것 하나 가릴 수 없이 훌륭하다. 우리 안의 무뎌진 마음을 녹여줄 명작.
2026.04.07. 소설/시 PD 김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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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관종들
빈티지 엽서
푸른색 루비콘
하루치의 말
우연의 직조
우리와 우리 아닌 것
달걀의 온기

해설 | 정주아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저자 소개1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치킨 런」이 당선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2013년 장편소설 「중앙역」으로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을, 2018년 장편 소설 「딸에 대하여」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빈티지 엽서』로 김승옥 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관종들』로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축복을 비는 마음』,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경청』 『오직 그녀의 것』, 중편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 짧은 소설 『완벽한 케이크의 맛』 등이 있다. 제12회,
1983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치킨 런」이 당선되면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2013년 장편소설 「중앙역」으로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을, 2018년 장편 소설 「딸에 대하여」로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빈티지 엽서』로 김승옥 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관종들』로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축복을 비는 마음』,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경청』 『오직 그녀의 것』, 중편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 짧은 소설 『완벽한 케이크의 맛』 등이 있다. 제12회, 제13회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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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04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52g | 128*188*20mm
ISBN13
9788936439934

책 속으로

그들은 아이들을 생각하고 불안과 걱정을 나누는 데 시간과 마음을 썼다. 그건 정해가 출퇴근길에 정자를 일부러 지나가는 것처럼, 영기가 산책 삼아 잠깐씩 정자 근처를 배회하는 것처럼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 중 하나였다. 최소한의 일.
--- pp.28-29 「관종들」 중에서

긴 세월의 흔적이 남은 이국의 엽서, 누군가의 성격과 습관이 스며든 필체, 지금은 세상을 떠났을 게 틀림없는 수신자와 발신자, 그들 사이에 오고 간 애틋하고 다정한 언어, 그리고 그 언어 아래 흐르는 뜨거운 마음. 그녀 내면의 뭔가를 깨운 건 일상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그런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상상력인지도 몰랐다. 그 엽서들의 주인, 남자의 존재가 아니라.
--- p.60 「빈티지 엽서」 중에서

그는 생각했다.
아내는 아무도 만날 수 없고, 만날 필요도 없는 곳으로 간 거라고. 마침내 홀로 머무를 수 있는 먼 곳으로 떠난 거라고.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삶에서 놓여나 휴식과 평안, 안식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 거라고.
그는 빈 컵을 감싸쥐고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연둣빛 이파리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가지 사이를 통과한 햇살이 그의 얼굴에 따뜻하게 와닿았다. 그곳의 풍경은 처음 왔을 때와는 달라 보였다. 컵을 만지작거리면 입안에서 달콤한 내음이 감돌았고, 나른한 졸음이 밀려왔다. 그 순간이 그에게 잠깐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남자를 만난 이후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한 미약하고도 충분한 보상처럼 느껴졌다.
--- pp.99-100 「푸른색 루비콘」 중에서

그녀는 사는 동안 수없이 오답을 적어냈던 문제의 해답을 비로소 어렴풋하게나마 찾은 것 같았다.
애실은 다 기억나지도 않는, 이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매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적응하는 일. 말들이 튀어나오거나 새어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하는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일.
--- pp.133-134 「하루치의 말」 중에서

그날 저녁, 우나는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안지일의 작품 「눈동자」에서 출발했으나 그것과는 무관한, 그러니까 이전까지는 정물에 불과했던 눈동자가 우나에게 막 전해주기 시작한, 오직 우나와 눈동자 사이에 속한 이야기였다.
--- p.169 「우연의 직조」 중에서

그가 이 게임에서 승리할 확률은 희박했다. 그 자신조차도 이길 거라는 확신은 가져본 적이 없었다. 삶이 그에게 가르쳐준 건 탈락하는 법, 낙오하는 법, 패배하는 법, 낙담하는 법이 전부였으니까. 아버지가 질책하던 나약함, 겁약함, 자기연민을 극복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것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한번쯤 이기는 경험이 필요했다. 자신의 삶에도 어떤 행운이, 긍정이, 너그러움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이 절실했다.
--- p.187 「우리와 우리 아닌 것」 중에서

선희는 지갑을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가며 청란을, 그 청란이 품고 있는 온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왜 그것이 돌연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지, 왜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오는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 pp. 233-234 「달걀의 온기」 중에서

출판사 리뷰

햇살처럼 찾아와 잠깐의 평화를 누리게 하는 이야기들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를 증명하는 김혜진 세계의 깊이


『달걀의 온기』 속 작품들은 타인과 상처를 주고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려 애쓰면서도 결국은 타인에게 손을 내밀고야 마는 이들의 “과묵한 선의”(추천사)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각 작품은 단절된 개인들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서로의 삶에 개입하며 만들어내는 미세한 파동을 통해 굳게 닫혀 있던 내면이 조금씩 열리고 그 틈으로 온기가 스며드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관종들」의 ‘정해’와 ‘영기’ 부부는 평소 타인의 무질서에 서슴없이 목소리를 내 눈총을 받곤 한다. 싸늘한 주변의 시선은 그들마저 “자신을 위한 것도 아니고 남들도 반기지 않는 이런 일은 이젠 진짜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19면) 생각하게 만들지만, 막상 어느 추운 겨울날 길에서 떨고 있는 아이들을 목격하자 그들은 주저 없이 경찰에 신고하기로 결심한다.
남편과 자전거가게를 운영하며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는 「빈티지 엽서」의 화자 ‘나’는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의 부탁으로 그가 수집한 외국의 빈티지 엽서들을 읽어나간다. 이 과정에서 ‘나’의 일상은 조금씩 빛을 되찾아가지만, 어느 순간 사람들이 남자와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며 균열이 발생한다.

이어지는 「푸른색 루비콘」과 「하루치의 말」 역시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맞닥뜨림으로써 일어나는 생의 파동에 집중하는 작품들이다. 김유정문학상 대상작 「푸른색 루비콘」의 화자 ‘나’는 아내와 사별한 뒤 다니기 시작한 교회에서 추레한 행색의 한 남자를 만나고, 그의 부탁으로 허름한 양봉장에 차를 몰고 가게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일이 꼭 필요한가”(94면) 자문하던 ‘나’에게 남자와 보내는 시간은 진창에 빠진 차를 하릴없이 건져올리는 일이나 다름없지만, 그 모든 시간이 지난 뒤 남자가 내어준 꿀물 한잔에 ‘나’는 뜻 모를 평화를 느낀다.

그런가 하면 타인과의 접촉이 언제나 온기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직이 상기시키며 서늘한 음영을 남기는 작품들도 있다. 어머니의 이불가게를 물려받게 된 「하루치의 말」의 화자 ‘애실’은 놀랄 만큼 말이 잘 통하고 배울 점도 많은 손님 ‘현서’와 가까워진다. 그녀와 함께하며 애실의 일상도 점차 변해가기 시작하는데, 이 달가운 변화를 만끽하던 애실에게 어느 날 사람들이 찾아와 묻는다. “애실씨, 혹시 걔한테 돈 빌려줬어?”(127면)

한편 「우연의 직조」의 화자 ‘우나’는 저명한 미술가 ‘안지일’의 전시장에서 관람객의 반응을 기록하는 일을 하던 중 안지일이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하는 이를 맞닥뜨린다. 이 소설은 표절 논란과 그에 쏟아지는 비난마저 자신의 작품으로 흡수해버리는 미술가의 행위 앞에서 우나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담담히 따라간다. 「우리와 우리 아닌 것」 역시 개인의 삶을 뒤흔드는 욕망의 정체를 조용히 들여다보는 작품으로, 삼년 전 경도인지장애 판정을 받은 아버지로부터 과거 절친했던 ‘희래 삼촌’에게 땅을 빼앗겨 물려줄 것이 없다는 말을 들은 ‘나’의 혼란을 그려내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세 작품을 거치며 서늘해진 마음의 온도가 마지막으로 다다르는 곳은 소설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표제작 「달걀의 온기」이다. 투자 사기를 당한 뒤 아버지가 살던 고향 집을 처분하러 내려온 ‘선희’는 마을에서 어린 여자아이 ‘민지’를 자꾸만 마주친다. 버려지듯 조모에게 맡겨진 뒤 그곳에서 자라온 민지는 혼자 닭을 키우고 주변 어른들에게 달걀을 팔며 살아가고 있는데, 선희는 계속해서 눈에 밟히던 그애의 다부진 태도가 실은 “자신의 처지를, 바꿀 수 없는 자신의 태생을 인정하는 데서 오는 일종의 체념에 가까운 감각이라는 것을, 어린 시절 자신이 내내 움켜쥐고 있다가 이곳을 떠날 때 미련 없이 내던져버린 뭔가와 닮아 있다는 것을”(211면) 깨닫는다. 오랜 자기연민에 빠져 타인을 원망하기 급급했던 선희는 한발짝 떨어진 곳에서 민지를 지켜보기 시작하고, 이는 점차 스스로를 돌보는 데까지 이어지며 끝내 하나의 달걀처럼 “자기 세계와 바깥 세계가 만나 이루어지는 아름다운”(해설, 정주아) 균형을 이루게 된다.

연약한 껍질 속에서 지켜온 마음을 건넬 때
시린 손바닥 위로 가만히 번져가는 다정한 온기


나를 지키기 위해 삼켰던 고독한 말들이 타인의 어깨를 다독이는 진심 어린 손길로 치환될 때, 『달걀의 온기』 속 인물들은 비로소 자기만의 성벽을 허물고 세상 밖으로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디딘다. 타인의 고통에 함부로 뛰어들어 손쉬운 위로를 건네기보다 스스로 진창을 딛고 일어설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키는 김혜진 특유의 신중하고 사려 깊은 방식은 지금 우리 시대에 소설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고요히 증명해 보인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아주 조금의 틈을 내어주기, 빛을 비추어 그 밖에도 세상이 있음을 넌지시 일러주기. 그 “최소한의 일”(29면)이 남기는 “미약하고도 충분한”(100면) ‘달걀의 온기’는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 마음속에 깃든 온기 역시 결코 쉽게 식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우리는 그 온기와 함께 비로소 각자의 삶을 씩씩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작고도 귀한 용기를 나누어 갖게 될 것이다.

작가의 말(부분)

언젠가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이 쓴 소설 속 인물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 같냐고.
소설을 끝내고 나면 그다음에 관해선 거의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만 그땐 이렇게 답했다. 내가 잘 지낸다면 그들도 잘 지낼 것이고, 내가 행복하다면 그들도 행복할 것 같다고. 왜 그런 답을 했는지 깊이 고민해보진 못했다.

돌이켜보니 그건 쓰는 이의 상황에 따라, 또 읽는 이의 형편에 따라 소설은 얼마든지 달리 쓰이고, 다시 읽힌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엔 ‘읽는 나’와 ‘쓰는 나’, ‘사는 나’가 아주 가깝게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2026년 봄
김혜진

추천평

김혜진 소설 속 인물들은 과묵하다. 그들의 내면엔 타인에게 오해와 상처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안전한 평판과 작은 일상을 지키기 위해 발화하지 못한 말들의 무덤이 무수하리라. 그러나 그들은 결국 손 내미는 사람들이다. 정체 모를 꺼림칙한 사내에게, 길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에게, 심지어 사기를 치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시절의 인연에게. 생색 없이, 불안과 억울함을 감수한 채, 결국 빈손으로 돌아서리란 걸 예감함에도. 대신 그들은 패배와 낙오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손을 잡을 자격을 스스로 찾아간다. 관심은 병으로 취급받고 손해는 죄가 되는 세상에서 김혜진이 꾸준히 보여주는 그 과묵한 선의는 소심함을 뛰어넘는다. 곧음이고 순수이며, 나아가 사람을 향한 애정이다.

오랫동안 김혜진 소설을 따라 읽어오며 그가 직조해낸 우직한 인물들에게 위로받았다. 『달걀의 온기』는 그가 가닿은 문학이 얼마나 소박하게 빛나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인다. 우리는 김혜진의 소설을 더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귀한 세계 하나를 지켜내는 것과 같다. - 조해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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