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나이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페릭티오네는 입법가 솔론의 후손이었고, 외삼촌 카르미데스와 친척 크리티아스는 훗날 삼십 참주정에 가담한 인물들이었다. 젊은 시절 시와 비극을 습작하며 문학적 재능을 빛내던 그는 스무 살 무렵 소크라테스를 만나면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후 8년간 소크라테스 곁에서 철학을 배웠고, 기원전 399년 스승이 아테나이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독배를 마시며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본 사건은 그의 사상 전체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다.
스승의 죽음 이후 그는 메가라, 이집트,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 등지를 두루 여행하며 피타고라스 학파와 교유했다. 기원전 387년 무렵 아테나이로 돌아와 최초의 대학 격인 ‘아카데메이아’를 세우고, 이후 약 40년간 강의와 저술에 몰두했다.
그의 저작은 대부분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대화편 형식을 취하는데, 그 가운데 『국가』(Πολιτε?α)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해 이상 국가론과 이데아론, 혼의 삼분설을 하나로 엮어 낸 그의 최고 대표작으로 꼽힌다.
플라톤은 자신이 그린 이상 국가의 실현 가능성을 시험하려는 듯 세 차례에 걸쳐 시칠리아 시라쿠사를 방문해 참주 디오뉘시오스 부자와 그 처남 디온을 상대로 철인정치를 설득하려 했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다. 만년에는 아카데메이아에서 후학을 기르는 데 전념했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이 훗날 그를 비판적으로 계승한 아리스토텔레스였다.
플라톤은 기원전 348년 또는 347년 아테나이에서 여든 무렵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훗날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사 전체는 플라톤에 대한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평했을 만큼, 그는 이후 서양의 모든 사상과 문화에 가장 깊고 거대한 영향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