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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선우 2. 사토시와의 만남 3. 휠체어를 탄 아이 4. 갑작스러운 발작 5. 좋고도 나쁜 6. 보물찾기 놀이 7. 이상한 증세 8. 야마다의 방문 9. 몰라보게 살찐 얼굴 10. 반갑지 않은 손님 11. 사라진 준코 12. 유키코의 실수 13. 세균 만두 14. 선우의 눈물 15. 데쓰오의 부탁 16. 한밤중의 실험 17. 절망 속에서도 희망은 솟아나고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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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선우는 잽싸게 용배의 뒤를 따라나섰다. 자신도 갈 수 있느냐고 물으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가던 걸음을 이내 멈췄다. 물어보나 마나 왠지 안 된다는 답이 돌아올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자신은 힘을 쓸 수 없는 어린이였으니까. 하지만 밤새 배고파 뒤척이는 동생 태우와 명희를 떠올리면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침내 선우는 결심을 굳혔다. 아저씨들을 그냥 몰래 따라나서기로. --- p.15 용배는 얼른 선우를 안아 사토시에게 건넸다. 사토시는 선우를 안고 뒤돌아섰다. ‘그래, 이번 기회에 데쓰오의 병을 낫게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이 아이만 잘 실험해 보면.’ 비쩍 마른 선우는 보기보다도 더 가벼웠다. 덩달아 사토시의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조금 전 실험을 마치고 나오던 무거운 발걸음과는 천지 차이였다. 데쓰오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피곤함을 싹 잊게 했다. --- p.25 선우가 머뭇거리며 인사했다. 눈앞엔 조막만 한 얼굴에 오목조목한 생김새를 한 소년이 있었다. 핏기 하나 없는 하얀 피부와 유난히 까만 머리카락이 대조되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작고 동글한 안경을 뚫고 나오는 눈빛은 날카로웠다. --- p.33 경성에 살던 선우네 가족은 토지 조사 사업으로 인해 논밭을 다 뺏기고 만주로 이주해 왔다. 그런데 만주에서 사는 것은 더 힘들었다. 경성에서보다 더 굶는 날이 많았다. 선우가 굳은 결심을 하고 트럭에 탄 것도 매일 굶주리는 식구들 때문이었다. --- p.38 “참, 네 이름이 뭐야?” 데쓰오는 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 아이의 진짜 이름이 문득 궁금해졌다. “요시히로.” “그 이름 말고 원래 이름 말이야.” 데쓰오의 난데없는 말에 선우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끔뻑거렸다. 지금껏 일본인이 자신의 조선 이름을 물어보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선우. 우리 아버지가 지어 주셨어. 선한 마음으로 베풀며 살라고.” --- p.48 “나 아까 네가 있어서 견뎠어. 네가 있어서 두렵지 않았어.” 데쓰오의 진심 어린 말에 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토시에게 서운했던 감정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아, 배고프다. 뎃짱, 얼른 먹자.” 선우가 일부러 호들갑스럽게 말하자 데쓰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데쓰오는 자신을 배려해 주는 선우가 믿음직스럽고 좋았다. 서로 태어난 나라는 다르지만, 그런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65~66쪽 선우는 목걸이를 데쓰오의 목뒤로 둘렀다. 살집이라고는 전혀 없는 데쓰오의 몸이 가슴께 로 닿자 따뜻한 전류가 온몸으로 흐르는 듯했다. 선우는 잠시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지금 이 순간만은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마음을 나누는 친구만 있을 뿐이었다. --- p.84 데쓰오는 선우를 더는 보기가 힘들어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 같아선 그 누구보다도 선우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선우가 한번 집에 돌아가면 다시는 선우를 보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들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 p.95 데쓰오의 민망함을 눈치챈 선우는 일부러 물을 더 뿌리며 장난쳤다. 그제야 데쓰오도 선우처럼 물을 끼얹으며 놀았다. 튀어 오르는 물방울 사이로 데쓰오와 선우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 사람의 목에 걸린 은빛 목걸이가 햇빛에 유난히 반짝거렸다. --- p.114 사토시는 선우가 건넨 서류봉투를 받아 들고 다시 회의에 집중했다. 고맙다거나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는 사토시에게 선우는 잠깐 서운함을 느꼈다. “뭐 하나? 얼른 가 보지 않고.” 선우는 얼른 인사를 하고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두 사람의 모습을 가만 지켜보던 유키코의 마음에 씁쓸함이 번졌다. 건물을 빠져나가려는 선우를 유키코가 불러 세웠다. --- p.1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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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만주 731부대,
거대한 폭력 아래 만난 두 소년 작품의 두 주인공인 선우와 데쓰오를 얼핏 보면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선우는 조선인이고 데쓰오는 일본인이며, 넉넉한 돈과 좋은 집, 먹을 것에 언제나 간절한 선우와 달리 궁전 같은 집에 사는 데쓰오에게 그런 것들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모두 시대와 이념으로 인해 만들어진 것뿐,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소년 모두 상대방과 진심을 나눌 줄 아는 순수한 어린이다. “참, 네 이름이 뭐야?” “요시히로.” “그 이름 말고 원래 이름 말이야.” -본문 48쪽 뇌전증을 앓기 시작하면서 타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린 데쓰오는 선우의 천진하고 다정한 모습에 마음을 열고, 일본인 앞에 서면 늘 경직될 수밖에 없던 선우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궁금해하는 데쓰오에게 믿음을 갖는다. 그때부터 두 소년은 ‘친구’가 된다. 함께 밥을 차려 먹고, 몰래 선물을 준비하고, 뜨거운 여름날 물을 튀기고 놀며 진심 어린 우정을 나눈다. 그러나 바깥세상은 두 소년의 우정을 자꾸만 위협한다. 작품은 731부대에서 자행한 폭력을 주변적으로 서술하면서도, 이야기의 한가운데에 선우와 데쓰오의 애틋한 우정을 배치함으로써 이념보다 앞서야 했던 인간다움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세상에 맞설 줄 아는 어린이의 용기 어린이를 외면하지 않는 어른의 양심 친구가 된 선우와 데쓰오는 세상에 맞설 줄 아는 강인한 마음을 갖게 된다. 먼저 데쓰오의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몸이 약한 자신을 괴롭히는 동급생 이시카와였다. 데쓰오는 이시카와 때문에 학교에도 잘 나가지 않았지만, 선우와 함께 지내면서는 자신들에게 시비를 붙여 오는 이시카와에게 큰소리로 대항할 수 있게 되었다. 선우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인들이 일본어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당하던 시대이지만, 데쓰오를 못살게 구는 이시카와에게 선우는 몸으로 맞서 싸우며 친구를 지킨다. 우정에서 시작된 용기로 강해진 두 소년은 역사의 그림자 아래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잔혹한 세상을 버텨 내고 성장한다. 한편, 두 소년이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어른으로 간호 장교 유키코가 등장한다. 유키코 역시 731부대에서 근무하는 일본군이지만, 인간성과 도덕성을 상실한 다른 군인들과는 달리 유키코만은 선우와 데쓰오를 인간으로 바라본다. 국가와 이념을 떠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킬 줄 아는 어른은 어린이에게 분명히 필요하다. 유키코의 도움으로 선우와 데쓰오는 둘만의 방식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게 된다. 그해 선우는 데쓰오에게, 데쓰오는 선우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작품은 전쟁과 폭력의 실상을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실제로 벌어진 일을 담담하게 서술하기에 선우와 데쓰오의 우정이 더욱 가슴 아프다. 그해 선우는 데쓰오에게, 데쓰오는 선우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선우와 데쓰오가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서 만났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시대와 이념보다 앞서야 마땅한 인간다움에 대해, 오늘을 살아가는 어린이 독자가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