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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 개혁의 사회심리학
2. "지식인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행위?" / 진중권, 정운현, 김동춘에 대해 3. 자신부터 실천하지 않는 이론은 기만이다 / 『당대비평』에게 묻는다 4. 권성우의 비판에 답한다 / 이원 패거리와 대의 패거리 5. 언론학은 언론권력의 시녀인가? / 고려대 임상원 교수께 드리는 글 6. 진중권의 '엑스리브리스' / 황태연과 '춤추는 반공' 7. 류동민 교수의 주장에 답한다 / '미사일 단추' 신드롬 8. 윤평중 교수의 주장에 답한다 / '일상적 파시즘'과 '부드러운 파시즘' 9. 역지사지는 불가능한가? / 김영건의 김영민 비판에 대한 반론 10. 고종석의 '테마 에세이' 4 / 제비뽑기의 정치학 11. 탁석산의 <한국의 주체성>을 읽고 / 민족주의에 대한 잡념 12. 최준식의 <한국인에게 문화가 없다고?>를 읽고 / '한국인 피판'을 어떻게 볼 것인가? 13. 정치권력과 언론권력 / 전여옥은 '여자 돌쇠'인가? 14. <조선일보>의 방송 보도, 해도 너무한다 / 개혁을 죽이면서 팔아먹는 법 14. 권혁범의 비판에 답한다 /상파 지식인들 |
康俊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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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우리 사회에 떠돌아다니는 여러 담론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이 '권력 비판의 권력화를 우려한다'거나 '권력 비판은 또 다른 권력 만들기'라는 식의 '냉허주의(냉소주의+허무주의)'라고 생각한다. 더욱 기가 막힌 건 그런 냉허주의는 주로 제법 진보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에 의해 발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p.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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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경제와 문화가 분업 체제에 의해 각자 나누어 따로 다룰 수 있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한국 지시계의 잘못된 분업시스템은 그러한 분리를 당연하게 보고 있지만, 나는 이건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경제에만 주목하는 사람들은 문화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만을 분리시켜 다룬다 하더라도, 최준식의 문화관은 논란의 소지가 있을 듯하다. 최준식의 문화관은 논라의 소지가 있을 듯하다. 문화를 중앙집권적인 정책의 대상으로 삼는 게 온당하냐 한느 건 학계와 문화계의 해북은 쟁점 가운데 하나였으므로 최준식의 문화관에 시비를 걸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독특한 문화관에 근거해 다소 비분강개하는 점이 없지 않아 있으므로, 이 점에 관한 한 좀더 차분한 논의를 해보는 게 어떻겠는가 하는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 --- p.2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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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개혁의 사회심리학'을 말해야 하는가?
정작 개혁을 외치는 사람들의 오도된 일상적 심리와 관행에 의해 개혁의 화살이 수구기득권 세력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차단되고 있다는 절박한 현실진단에서, 저자 강준만은 그간의 개혁을 위한 노력에 '사회심리학적 고려'가 거의 없었다는 취약점을 새롭게 지적하고 나섰다. 이는, 개혁지향적이라는 '명분'과 보신(保身)이라는 '실리'를 동시에 얻고 있는 이들이 수구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방패가 되어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구 세력의 대표격인 {조선일보}를 상종하는 좌파·진보 지식인에 대한 실명 비판이 개혁 진영 내부에서조차 반발을 사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편가르지 마라" "줄세우기 하지 마라" "성채 쌓지 마라" 등으로 표현되는 소위 평화지향적(?) 주장들, 일상적 파시즘의 징후니 집단주의적 광기니 패거리주의의 폐해니 하는 이론적 비판장치들 속에서 저자는 일상적 차원의 '좋고 싫음'에서 비롯되는 반감, 특히 내부 비판의 활성화를 봉쇄하는 우리 지식계의 집단이기주의를 날카롭게 갈파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을 통해 '정서'가 또하나의 아젠다로 떠오르지 못하는 한 개혁은 결국 좌초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개혁의 사회심리학'은 개혁 진영 내부의 잘못된 정서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개혁과 관련한 정서의 검증을 통한 개혁 논의의 재구성'에 대한 절실한 요구에 다름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