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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 '시장'에 대한 기만과 착각
2. 한국 대학교수들의 정치참여 방식 -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 3. '단순무지'가 정치 상품이 되는 세상 - 한나라당 국회의원 박종웅의 '엽기 코미디' 4. 나의 제정신을 묻는 그에게 되묻는다 - 김동길은 제정신인가? 5. 우리는 '입장주의'의 포로들인가? - 소설가 최인호의 '두 얼굴'에 대한 단상 6. 과연 누가 '개혁'을 죽였는가? - '언론개혁' 논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7. 시장은 누구의 것인가? - '개혁 상업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8. 소비 자본주의와 문화적 도그마의 불륜 - '대중적 글쓰기'와 소비 자본주의 9. 김대중 정권, 신자유주의, 그리고 『한겨레』 - '친DJ' 딱지의 폭력성을 고발한다 10. 어느 냉소주의자의 사대주의 비판 - 김성기의 홍세화 비판, 해도 너무한다 11. '학문 신비주의'라는 지식폭력 - 반경환은 '지식폭력'의 희생자인가? 12. '독설'이 문제인가, '성실성'이 문제인가? - 윤평중의 반론에 답한다 13. '자기 성찰'은 비판의 생명이다 ① - 글쓰기에서 '감정 드러내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14. '자기 성찰'은 비판의 생명이다 ② - 권성우와 강준만의 비판관의 차이에 대해 그간 『인물과 사상』에서 다른 인물들 |
康俊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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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市場)'은 수구기득권 세력만의 것인가?
그간 '시장'과 관련된 논의는 극단적인 '옹호'와 극단적인 '반대'만이 있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시장과 시장논리를 배격·비판하는 주장조차 시장을 통해서 얻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따라서 약육강식형 시장논리라 할 수구기득권 세력의 '시장 만능주의'도 문제지만, 시장의 장점을 인정하지 않는 개혁진보 세력의 '시장 배격주의' 역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대립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유리한 건 당연히 '시장'에서 기득권을 쥔 세력이다. 이러함에도 일부 비판적 지식인들은 시장과 시장논리를 악이요 적으로 간주하여 대중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조차 상업주의로 비난함으로써 시장을 수구기득권 세력에게 통째로 넘겨주는 결과를 불러온다. 그러나 이제는 '사상의 자유시장'에서만큼이라도 이런 어리석은 게임을 끝내자는 게 저자 강준만의 주장이다. "시장을 수구기득권 세력과 이윤추구에만 혈안이 된 사람들에게 헌납하지 말고 일정 부분 시장을 이용하자!"
물론 이는 무조건 시장(자본주의)을 껴안자는 게 아니다. 어떤 분야와 사안이냐에 따라 시장논리가 선일 수도 있고 악일 수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시장 차별화')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개혁 세력의 투쟁이 현실 공간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행위엔 온갖 문화적 '아우라'를 씌워가며 거대 극우매체와의 포옹도 마다않으면서 여전히 시장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일부 비판적 지식인들의 이중성이야말로 최소한의 상도덕도 없는 파렴치한 상업주의에 다름 아니다. "진정 시장을 적으로 간주하겠다면 시장을 파렴치하게 이용하는 세력의 가슴에 안기거나 그 등에 타는 행위도 중단하라." 진정 '자본과 함께 살면서도 자본을 넘어설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지식계에서만큼은 '사상의 자유시장'에 대한 고루한 시각을 재검토해야 할 때가 아닌가.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 최근 펴낸 『노무현과 국민 사기극』을 통해 우리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를 공개적으로 적극 지지하는 저자는, 교수들의 정당가입의무화법을 만들자는 파격적인 주장을 통해 그 동안의 지식인들의 투명하지 않은 밀실거래식 현실 참여 방식을 문제 삼고 있다. 겉으론 무이념·무당파성을 내세우며 특정 정당에 조언을 하는 사회참여적 지식인들의 '밀실 구조'를 타파하고, 정당을 투명한 시장판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밀실의 생리가 그렇듯 밀실에서의 거래는 그 익명성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자신의 발언과 행위에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성과 아마추어리즘을 낳는다. "한국 정치가 그렇게 개판이라면 정치를 '시장'에서 저주하고 '밀실'에서 껴안는 이중성을 보일 게 아니라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당파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언론개혁' 논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번 언론사 세무조사 사건은 '언론 길들이기'요 '언론 장악 음모'다? No! 「빅3 언론사들, 생존 위해 정권교체 나설 것」이란 기사에서 보듯, 그렇게 함으로써 정권으로선 치명적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동기의 순수성'이 의심스럽다? No! 권언유착의 구도에서 보자면 이번 사건은 '권'의 내부고발인 셈인데, 그렇게 '권력 대 신문'이라는 '2자 게임'이 아니라 여기다 국민까지 포함시킨 '3자 게임'으로 이 문제를 보면 간단히 정리된다. 그 내부고발로 인해 누가 덕을 보느냐, 즉 국민이 덕을 본다면 '동기의 순수성'이란 별로 중요치 않게 된다. '개혁 상업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상업주의를 혐오하는 문화 때문에 시장 속에서 검증받기보다 개혁 대상인 극우매체와의 평화공존을 통해 이들을 개혁에 이용하겠다는 '기생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학자 이데올로기'를 고수하고 있는 교수들이 언로(言路)를 장악하고 있어 지식인들은 장식(裝飾)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기득권 보호와 이윤 추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수구세력들처럼 개혁적·진보적 메시지를 널리 전파하는 '개혁 상업주의'를 통해 사상의 자유시장을 열어보려는 노력이 시급히 요청되는 때이다. '대중적 글쓰기'와 소비 자본주의 소수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난해한 글이야말로, 대중에게 영합하지 않는 글이야말로 좋은 글이라는 고정관념은 왜 재생산되고 있는가? 대중적 글쓰기 방식에 선정주의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대중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것은 문화적 기득권에 대한 완강한 고수가 아닐까. 대학 교수들이 한국 사회의 언로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는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