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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프에 애플을 더하면 덜 무서울 테지
이은형 저
파란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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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목각 인형 - 11
전지적 관찰자 시점 - 12
소문 - 14
퍼즐 오브 크래커 - 16
자객 - 18
나이스 샷 - 20
그레이프에 애플을 더하면 덜 무서울 테지 - 22
한밤 - 24
황홀한 미식 - 25
달빛 - 26
낡은 꽃무늬 스툴 - 28
샤파 - 30
복개천 - 32
호우 - 34

제2부
첫 키스 - 37
일방통행로 - 38
홍역 - 40
첫사랑 - 42
자주색 티셔츠 속의 여자 - 44
지폐, 만원 - 46
속도위반 - 48
개미 - 50
우리 기쁜 월요일에는 - 52
예방접종 - 53
늙은 처녀 - 54
내일이 시작되는 하우스 - 56
짙은 안개로 가시거리가 매우 짧습니다 - 58
파업 - 60
싱싱한 아침 - 62

제3부
병목구간 - 67
실직 - 68
몽유 - 70
서울 앤초비 - 72
폐차 - 74
블랙아웃 - 76
마이그레이션 작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77
자원봉사 - 80
가발 - 82
자매 - 84
청년 인턴 - 86
태앵초 태양초 - 88
Shot & shot - 90
아일랜드 음악교습소의 검거나 하얀 건반들 - 91
잊을 수 없는 먼 곳도 있어서 - 94

제4부
리모델링 - 99
원글이 삭제된 답글 - 100
일본 가정식 - 102
사월마을 아이들 - 104
부표 - 106
수면 마취 - 108
SNS - 110
부고 - 112
없는 사람 - 114
텐동 식당 - 116
가상현실 - 118
모든 길은 동십자각으로 통한다 - 121
사각지대 - 124
덤불 - 126
누가 흔든 것도 아닌데 - 128
내일, 지연 - 130

해설 이병국 ‘작은 나’로 잇는 마음들의 연대 - 132

저자 소개 1

2022년 [시사사]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그레이프에 애플을 더하면 덜 무서울 테지]를 썼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28*208*20mm
ISBN13
9791194799528

책 속으로

목각 인형

사각, 사각, 자작나무의 살점을 발라내는 소리가
바람 속에 머물다 흩어진다

나를 파낸 토막으로 더 작은 나를 만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로운 내가 된다

작아진 나를 당분간 내 안에 넣기로 한다

내가 세상에 고개를 숙일 때마다
깊은 곳에 숨겨 둔 작은 내가
입술 밖으로 드나들었다 ■


그레이프에 애플을 더하면 덜 무서울 테지

애플,
오렌지와
파인애플

내가 잡은 건, 그레이프의 보랏빛 뺨

빨대를 꽂으면
고막과 목젖을 지나
잎들과 바람과 햇살이
푸른 난타의 들판을 마구 두드려 댄다

너의 부재를 아흔 모금쯤 마신다

애플과 파인애플은 왜 애플인 거야

마주친 적은 없지만
파인과 애플은 함께라서,

서로를 붙잡으면 추락도 달콤할 텐데

포도알들이 절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
들리는 목소리
네가 복화술을 하는 것처럼

모퉁이를 돌며 그레이프를 한 모금 삼킨다
네 맛이 아닌
포도밭에 머물던 먹구름 맛이 난다
그래도 너를 한 모금,

한 모금 더 ■


짙은 안개로 가시거리가 매우 짧습니다

그 길은 영화 속의 괴기한 나무들처럼
뻗어 있었다
고라니의 상냥한 두 눈도
식물들의 무수한 심장도
안개에 갇혀 있는 아침

차를 몰아 길을 달리면
앞차는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진다
아무리 빨리 쫓아가도 끝내 보이지 않고

다리를 받치는 기둥과 강물은 사라지고

아파트와 건물들
공중에 떠 있다

두 팔로 핸들을 움켜쥐고
눈만 깜빡이며
안개 속을 달려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나의 하반신도 서서히 흐릿해졌다 ■

출판사 리뷰

[시인의 말]

피오르의 빙하가 녹는 어느 아침

절벽으로 폭포가 쏟아진다

차디찬 물에 젖는다

다알리아가 붉은 눈물을 흘린다

어느 육지의 꽃들은 지고

포기한 안녕으로부터

눕는다

망망대해

추천평

피오르를 날고 있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아, 느리고 고요하겠구나. 우리의 만남이 그랬고 깨지 않는 꿈처럼 서늘한 날갯짓이란 걸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지금 은형시 은형로에는 은형 씨가 없다는 것도요. 세종에서 인천으로 구월에서 여주로 소금꽃도서관에서 우리 기쁜 월요일까지. “나를 파낸 토막으로 더 작은 나”를 만들어 “입술 밖으로” 드나드는 시를 어디선가 쓰고 있을 테지요(「목각 인형」). 은형 씨의 시는 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길은 ‘나’를 떠나 ‘너’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기도 하지만 ‘너’를 떠난 ‘나’의 기억이기도 해서 ‘우리’는 늘 헤어집니다. 은형 씨의 시집에서 ‘길’은 ‘우리’라는 기억을 시공으로 흩뜨려 놓으며 이어집니다. “시월의 달빛”(「달빛」), “17분/60분/137분”(「내일, 지연」), “자두의 어제와 나의 내일이/숨어 있다”(「첫사랑」), “하수도로 떨어지는 물방울들의 소리에”도(「실직」) 사라지는 기분을 느끼는 건 우리를 흔드는 슬픔이 곳곳에 흘러넘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더 작은 ‘나’들의 토막 난 목소리로 슬픔을 견뎌 내려 합니다. “내 머리에 둥지를 튼 깃털들에서 이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블랙아웃」), “어떤 눈동자는 펄럭이는 깃발 같아서” “어떤 물결은 온통 당신들의 숨소리 같아서”(「모든 길은 동십자각으로 통한다」), “우리라고 쓴 것 같은데/아득이라고” 읽히고 마는 건(「수면 마취」) “하필 눈이 내렸고/어떤 구름은 끝내 그치지 않고 길을 지워 버”리기(「일본 가정식」) 때문입니다. 때론 전속력으로 달리는 열차에서 바라보는 풍경 속으로,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가 춤을 추는 환상 속으로 은형 씨의 시는 우리를 옮겨 놓습니다. “나에겐 착한 내일이 멀다”는 오늘의 불안이기보다 내일의 시를 쓰겠다는 시인의 선언입니다(「내일이 시작되는 하우스」). “내가 나 밖으로 나온 것을 알아채지 못하도록”(「없는 사람」), “축포가 터지듯 팔뚝의 통증이 솟구”치는 것을 우리가 자각할 때까지(「예방접종」), 어두운 밤 길모퉁이를 도는 복화술처럼 그레이프에 애플을 더할 때까지. 피오르에서는 흰꼬리수리도 은형 씨도 날갯짓을 멈추지 않을 겁니다. - 황정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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