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밋밋한 해안선과 돌아누울 때마다 팜트리
전희진 저
파란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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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나는 나의 정확한 태초를 모른다
바닥에 떨어진 귀 - 11
프라도 섬에서의 여름 - 12
모나크 나비의 꿈속에 있었네 - 14
프리지어 멜랑콜리아 - 16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심장 - 18
죽음의 상자를 전시하는 사람 - 21
냉장고 - 24
중세 그림자 - 25
나는 미지의 행성에 착륙했다 - 26
불의 집-2025년 1월 7일, 이튼캐년 산불 - 28
하나의 죽음과 허공과 오래된 목 - 30
기원전 - 32
기원후 - 34

제2부 판타 레이
잠과 바람 - 39
첫,-터치 - 42
광어 - 44
무서운 속도로 귀가 자라는 집 - 45
미덕 - 48
그림자놀이 - 50
경계인 - 53
질 나쁜 소문 - 56
하품 - 58
서울, 꽃들의 지하 - 60
잭 - 62
사족들처럼 앉아 있는, 일 이 삼 - 64
그림이 있는 복도 - 66
전희진 씨는 무작정 걸었다 - 68

제3부 그들은 나를 마더퍼큐라고 불렀다
나는 거짓말을 쓰고 싶었습니다 - 73
이방의 봄 - 74
체리 나무 한 그루의 저녁 - 76
무화과 숲으로 가는 사람들 - 78
기린과 아카시아 - 80
친절한 사람 - 82
그래피티 - 83
큐 - 84
Holy Fully - 85
그들은 나를 퍼큐라고 불렀다 - 88
비 올 확률이 오십 프로인 일요일 오후에 대하여 - 90
달의 얼굴이 주차장 차단기처럼 밝아지고 - 92
어쩌다 여름 - 95
라 캄파넬라 - 98
팔월이 한 줌의 햇살을 들고 날 찾아왔다 - 100
옛집에 샹들리에를 두고 왔다 - 102

제4부 빈 주머니 속으로 모르는 계절이 쏟아져 들어왔다
흰 - 107
악몽들 - 108
내가 행복했던 곳으로 가 주세요 - 110
G선상의 마리아 - 112
살 만한 새해 - 114
꿈 - 116
그녀는 분노하지 않는다 - 118
그는 상자 속 사과였다 - 120
레이나 - 122
달 속의 여자 - 124
스패니시 모드 - 126
변두리에 사는 사람은 변두리를 모르고 - 128
꽃들의 어카운트 - 130
계절의 끝 - 131
나는 혼자인 걸 견디죠-트럭 - 132
허니문의 방 - 134

해설 조동범 우리 모두의 기원전과 기원후와 그 모든 애초를 향하여 - 135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6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150쪽 | 128*208*20mm
ISBN13
9791194799498

책 속으로

바닥에 떨어진 귀

소리가 미리 도착해 있었다
감각 하나가 빠져나와 집요한 길을 내고 있었다
무성영화는 멀어지고
그림자만 내게 남았다
나는 그림자를 접어 옷걸이에 걸어 두었다
숨을 할딱이며 복도 끝까지 따라온 그림자였다
허름한 일을 끝내자 창밖 빗줄기를 닫고 나는 책상에 앉았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손톱 깎는 소리
그 소리는 나를 끈질기게 따라다녔다
지친 귀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나는 현관에 멈춰 서서 떨어진 나의 귀를 줍다 말고 발을 내려다보았다
짐승의 발
세상이 한 번도 꺼내 보지 못한 야생의 문장이었다 ■


모나크 나비의 꿈속에 있었네

한낮이었네 미열이 올랐네
북쪽으로, 북쪽 어딘가로 가고 있었네
한 무리도 두 무리도 아닌 무리 무리 무리 무늬 무늬 무늬
팔랑거림의 일단이 어지러워 어지러워서
한쪽으로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태양
아케디아 소도시의 뜨거운 뒤뜰이었네
타는 듯한 갈증으로 풀장 위를 낮게 비행하던 나는 잠시 비틀거렸네

무엇을 본 것일까
수많은 무리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후다닥 나는 순간이 있었네 차고 문을 열고 집 밖으로 황급히 뛰어나가는 여자의 뒤를 쫓던 나는 그만 작은 돌 더미에 나를 놓아 버리고 말았네

왜 하필 그녀가 그때 내 앞에 나타났는지
내가 이 절대적 혼란의 무리 속에 있는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녀는 한쪽 발에만 신발을 걸친 채 무인도 적막에 표류한 사람의 표정을 지었네
휴대폰 카메라의 앵글이 절로 넓어지고 있었네
나의 미래와 과거들이 누누이 누설되고 있었네

몇 해 전 겨울
바닷가였네
밋밋한 해안선이 긴 허리를 돌아누울 때마다 팜트리 하나씩 밀려오고 밀려갔네 얼굴이 검게 그을린 마야 여인네들이 행운을 가져온다는 구슬 팔찌를 팔고 있었네 가난한 하루해가 이마 정면에 쏟아지고 있었네 나는 그곳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네 그녀가 어느 소년의 뺨을 후려치고 있었네

물결처럼 밤이 밀려왔네
이런 밤이면 그녀와 그 겨울 남미의 수정처럼 맑은 보석 알갱이들이 바닷물에 싸랑싸랑 씻겨 나가는 소리를 들었네

열여덟 첫 키스였네
햇볕의 테두리였네
산타모니카로
산타바바라로
로스 오소스로 나는 다시금 날고 있었네 ■


기린과 아카시아

어쩌다 보니
창가에 앉아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독된 성별
나는 미래의 어떤 고통과 관련이 있음이 틀림없다

열차 속
누가 누구를 찌른다 한들
수긍할 수밖에 없는 무더위

내가 울면
기린이 아닌 사자의 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으로 빠져나온
기린의 긴 목이 아카시아 연초록빛 그늘에 걸려 있었다

내가 꿈꾸는 세계는 기린과 아카시아
나는 실로 높은 심장을 가졌지

수국역을 지나
장미역

기린에서 아카시아로 이어지는
저 선이 내 것이었으면!

장미들은 내게서 얼굴을 돌렸다

꿈속에서 나는
긴 혀로 아카시아 가시를 더듬었네

붉은 뾰족구두를 신은 장미들이 뒤뚱거리며
지구 반대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는 모습이라니!

웃는다는 것이
으르렁 소리로 번졌다

아카시아 숲 그늘에 구멍이 뚫렸다 ■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새벽에도 강물이 흘렀다
강물은 끝내 미시시피를 향해 흘러갈 것이다
떠날 때쯤이면 하늘이 조금 가까워져 있을까 누군가 오래 비워 둔 방 같았다
그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들판은 끝없는 들판을 키우고 있었다
아이오와 강가, 코튼우드 나무에서 날리던
흰 솜털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가끔 기적 소리가 들려왔다

추천평

“나는 나의 정확한 태초를 모른다”라고 스스럼없이 선언하는 시인, 그러니까 기원(起源) 미상인 시인, 그래서 오히려 기원(紀元)을 창안하고 갱신할 수 있는 시인, 그렇기에 기원전과 기원후를 넘나드는 시인, “계속해서” 태어나는 시인, “소멸”하지 않는 시인, “태어날 수 없으면” “남의 몸을 빌려서라도 다시 태어”나는 시인, “물의 기원전으로 태어”나고 “잠으로 태어”나는 시인, 그리하여 “영원히 잠들지 않는” 시인, “당신이 나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심장”이자 “뼈도 근육도 없이 떠도는 것”, “세상이 한 번도 꺼내 보지 못한 야생의 문장”이면서 “동공처럼 텅 빈 흰, 억류된 슬픔”, 기어코 “뿌리 없는 채로 자라는 것”, “저 맹목이” “달리는 일만이 나를 이끌었으므로” “여전히 먼 설원의 허공을 달”리고 달리는 시인, 그러니 끔찍하나 마땅하게도 “뒤를 돌아보면 거긴 아무”것도 없을밖에, 그러니 내처 참담하게도 “나는 십 년 전에 죽었다”고 “내 문장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고 자인할밖에, 다만 만물은 유전할 뿐(Panta Rhei), “폐허가 된 새소리와 기적 소리 강물 흘러가는 연민에 대해” “거짓말을 쓰고 싶었”지만 결코 거짓말을 적지 않은 시인, “산타모니카로/산타바바라로/로스 오소스로”, “독립문로 4길 26-4” “내가 살던 서대문 옥천동 126번지”로 수천 킬로미터 대륙을 “다시금 날고 있”는 모나크 나비처럼 자신의 “미래와 과거”를 “무작정” “단숨에” 횡단하는 시인, 마침내 “사람과 신의 경계에서 물결”치는 시인. -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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